때늦은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현관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바닥에서 무거운 뭔가를 질질 끄는 소리. 누가 이 시간에 이렇게 소리를 내나 싶어서 귀를 기울여봤더니 별안간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는 이내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2시 17분이었다. 그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듣자마자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누군가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소리들을 가지고 산다.
이제 이 구역의 새벽 배송을 맡은 기사는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고객에게 그 사진을 전달하면서, 택배가 무사히 전달되었음을 알릴 것이다. 어쩌면 그 사진 한 장은 택배가 분실되었을 때, '적어도 택배기사는 무사히 배달했다'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로도 쓰일지 모른다.
무언가를 끌고 올라왔던 발소리는 이내 계단을 털털 내려가는 소리로 바뀌었다. 곧 집 근처 도로 쪽으로 난 창문에서 들리는 트럭의 엔진 소리도 점점 먼 곳으로 사라졌다. 이제 밤 9시가 넘어가면 유령도시처럼 텅 비어버리는 이 동네를 누군가의 두 발과 타이어 네 짝만이 이리저리 누빈다.
이제 해가 뜨고 아침이 되면, 새벽부터 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상자는 이내 자취를 감출 것이다. 빼꼼 열린 현관문의 좁은 틈 사이로 뻗어 나온 누군가의 손이 그 물건을 재빠르게 채갈 것이다. 그리고 문 앞에는 다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이 문명의 성과물은 취하면서 어째서 이 문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에는 이토록 무지할 수 있었을까. - 홍은전, <그냥, 사람>, 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