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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감자 Aug 29. 2016

다시 희망을 품고 싶을까?

시골감자의 백두산 그리고 연변 이야기

희망을 품고 갔었다.



 올해 상반기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동주>가 소소한 화제를 일으켰다. 시인의 삶을 묘사한 흑백 작품으로 윤동주가 어떻게 '시'를 처절하게 사랑했는지 보여준다. 친구를 향한 질투와 열등감 그리고 일본에서 받았던 억압과 핍박은 어둠 속의 절실함으로 그려진다. 


 윤동주는 '간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마을을 이뤄 한글을 배우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치 청도교들이 신대륙으로 이동했던 것처럼 간도는 조선인들이 일제를 피해 찾아간 땅이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많은 이들의 노력이 더해진 땅이었다. 


윤동주와 친구들


베이징에서 나와 같이 살던 형님은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유년 시절을 연길(연변에 있는 도시)에서 보냈다. 연길을 이야기 할 때마다 달라지는 그의 눈빛과 백두산을 가보고 싶은 나의 마음이 더해져 나는 연변과 백두산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연변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 많이 달랐다. 우선 4월 말, 5월 초였음에도 굉장히 춥고 척박해 보였다. 여기서 '척박하다'라는 표현은 날이 갈수록 성장해가는 중국의 수많은 도시들과 비교해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도시 곳곳에는 포장되지 않는 도로들이 즐비했고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살고 있던 조선족 청년들은 한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도망치듯 나가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지방 농촌을 보는 듯 했다. 


연변에 있는 대학로


나는 사막에 있는 인구 5만도 되지 않는 아라산 좌치라는 도시에 몇 주 묶은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의 사람의 인상, 도시의 모습은 연길보다 역동적이었다. 도시 곳곳에 새로 정비된 도로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정신없이 건설현장에 투입되고 있었으며 나이키부터 미국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새로운 자본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에 반해 연길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중국, 한국, 북한의 관심에서 소외된 것 같았다. 


 베이징에서 연길로 가는 기차에서 우리는 조선족 형님(?)을 만나 같이 맥주를 마셨다. 그는 우리에게 맥주를 사주며 계속 '한민족'의 서러움에 대해 이야기 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서역 개발'을 주장하면서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과 인접하고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이는 옛 간도지역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은행 규모만 따져도 길림성에 자체적인 투자은행은 아직도 설립되고 있지 않고 있다. 한때, 조선인들의 희망을 실어날러주던 땅이 이제는 버려진 터가 돼버렸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겨운 시끌벅적함이 있었다. 


그런 비가 내리고 추운 땅에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겨운 시끌벅적함이 있었다. 처음 보는 나에게 삼겹살을 사주고 연어를 주면서 자신들의 고민과 기도를 나눠줬다. 기분이 정말로 이상했다. 지인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반겨주는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나는 그 동안 어려운 상황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억지로 웃고 있지 않았고 상당히 즐거워보였다. 물론 그 안에서의 어려움은 많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복으로 다가왔고 나에게 계속 질문과 과제를 줬다. 



날 따뜻하게 맞이해줬던 한국인들


백두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계속 발해의 역사가 왜 중국 역사인지에 대해 들어야 했고 백두산은 중국에서 장백산이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한국인보다는 중국인들이 온천을 즐기러 오는 명소가 되어버렸다. 백두산에서 느낀 감정들은 다양했다. 우선 매우 추웠고 바람이 컸다. 그리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천지는 우리를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실은 벅차기보다는 답답함이 풀렸다는 느낌이 맞을 것이다. 10시간의 버스를 타고 도착한 우리를 반겨주는 시원한 바람과 그 장관은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줬다. 


백두산 천지의 모습


결론적으로 희망을 잃은 땅에서 내가 느낀 이상한 감정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나는 그동안 절망적일 때,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애써 웃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따뜻함으로 나를 배려해줬다. 아마 그들이 이런 역경을 극복하는 방식인 것 같다. 중국에서 가장 낙후되어 있다는 이 곳에서도 다시 희망이 올 것이라 그들은 믿고 있을 것이다. 마치 조선인들이 희망을 찾고자 간도를 일궈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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