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영국발 탄소비용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기후통합모델링(Integrated Assessment Model)으로 그동안 과학의 영역이었던 기후변화를 경제적 가치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양한 기후변화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최초의 경제학자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6년 영국의 스턴 경(Lord Stern)은 스턴 리뷰(Stern review)라는 보고서를 발간해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정량적으로 제시했다. 기후변화는 과학적인 현상인데 이를 굳이 왜 경제시스템 안에 해석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들이 이토록 기후변화를 경제적 가치로 증명하고자 했던 이유는 '자본'은 정량적이고 재무적인 가치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덥고, 추운 정도, 에어컨 사용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이 다가 아니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기후변화는 막대한 피해를 야기한다. 그 피해는 단순히 냉난방 시설 사용 증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빈번한 자연재해, 태풍, 해수면 상승 같은 예상할 수 없는 규모의 가치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피해는 우리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겪을 가능성이 높다. 2060년 혹은 2080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현세대의 무분별한 온실가스 배출로 재앙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론이 조금 길었던 것 같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기후변화의 피해를 표현하는 방식이 사회적 탄소비용 (Socail cost of carbon)이라는 것이다. 온실가스 1톤이 늘어났을 때 나타는 피해의 구체적인 대가가 바로 탄소비용인 것이다. 이 탄소비용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경제시스템 안에서 무책임한 경제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현실적인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왜 기후변화를 경제학적으로 풀어야 하는지는 다음 편에 풀어내겠습니다). 그러나 이 온실가스에 대한 책임을 계산하는 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시간적인 문제이다. 지금 배출되는 온실가스 1톤은 다른 시간대에 사는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따라서 그 피해를 현재가치로 환산을 해야 하는데, 어떤 기준을 가지고 환산을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다양한 이론적 근거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통용되는 것은 렘지 룰 (Ramsey Rule)에 따른 할인율이다. 렘지 룰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순수한 자본의 시간 선호도와 경제성장률을 고려한 계산법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순수한 무위험자산의 이자율을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영국은 경제성장률을 더 고려해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은 과연 어떤 할인율을 적용해야 할까? 미국처럼 직접 자본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필자는 평균 경제성장률이 반영된 할인율을 반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할인율이 얼마나 큰 영향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교적 긴 타임라인을 가지는 기후변화 이슈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비용편익 분석에 있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지정학적인 문제이다. 기후변화가 이토록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한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특정 국가에서 큰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으며 각국은 타국가의 배출경로에 무임승차를 하거나, 기후변화 완화 이슈에 리더십을 갖고자 할 것이다. 한국은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다. 산업혁명 이후의 누적된 온실가스 양을 따지게 되면 그 위치는 더욱 분명하지 않다. 분명 세계 13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지만 과연 이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한국에게 물을지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았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 세계 인구로 나눈 것으로 계산해야 할지 아니면, GDP로 나눠야 할지, 어떠한 국제적인 합의점도 현재로썬 부재한 상태이다.
셋째, 기후변화 피해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분명하게 구별해야 할 점은 이는 기후변화 원인이 불분명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자산의 규모도 커질 것이고 어떤 자산이 구체적으로 피해를 받을지가 명확하지 않다. 자산뿐만 아니라, 미래 인구 등등 예상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경로로 배출을 줄일 수 있을지가 확실하지 않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비해 많은 연구기관 및 정부에서는 기후 시나리오를 연구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고려했을 때, 한국은 다소 소극적인 감축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며, 이는 실제 우리의 배출경로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2015년부터 시행된 배출권거래제, 3020 재생에너지 정책, REC, 등등 온실가스 완화 정책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책의 실효성, 그리고 투자 대비 이득이 분명해야 하는 정치적 결정에 있어 기후변화는 지금까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은 다소 의외였지만 중국과 일본의 넷제로 선언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된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빨리 갈수록 비용은 줄어든다
2021년 초 영국 스턴 경이 새로운 보고서를 미국 바이든 정부 대상으로 발표했다. 핵심은 불확실성이 많은 기후변화 피해 분석 대신에 비용효과적인 분석을 통해 탄소비용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2009년 이후로 영국이 적용하고 있는 방식인데, 기존의 피해를 기반한 비용 산정이 아닌 감축목표를 가장 빠르게 도달하기 위한 감축경로에서의 탄소비용으로 이는 한계감축비용 (Marginal Abatement Cost)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때 결과물로 나오는 탄소가격은 기존의 비용편익 분석에 따른 탄소가격보다 훨씬 높게 되며, 영국은 이를 기준으로 2009년부터 모든 에너지, 인프라 사업에 내부탄소가격을 비교해 인허가를 내고 있다.
영국이 가장 빠르게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해상풍력의 확대, 제조업의 아웃소싱 등등이 있겠지만 스턴을 중심으로 한 탄소비용 정책은 많은 에너지 사업에 근간을 흔들었고, 최소 탄소가격제 등 수많은 정책을 이어지게 만들었으며 기후변화 논의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흐름의 뿌리에는 바로 '장기적으로 줄여야 할 온실가스라면, 가장 빠르게 줄이는 것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스턴 리뷰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이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을 연결하는 위치에서 한국은 역할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이제 막 시작한 경제개발에 있어 기후변화 책임을 선진국에 전가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탄소집약도를 비약적으로 비용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경로를 보여줄 수 있다면, 선진국과 개도국 갈등이 첨예한 기후변화 완화 흐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에서 탄소비용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참고: THE SOCIAL COST OF CARBON, RISK, DISTRIBUTION, MARKET FAILURES: AN ALTERNATIVE APPROACH, Nicholas Stern & Joseph E. Stiglitz]
[참고: The economist, 영국은 다른 국가보다 어떻게 온실가스를 빠르게 감축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