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감자 Mar 08. 2024

물건

미니멀리스트를 위하여

물: 물질적인

건: 건방짐


케리어 2개 (기내용 1개 포함). 이게 현재 지금 내 삶의 전부이다. 작년에 여러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삶을 조금 가볍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도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한국에 있으면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없는 짐을 다 처분하고 급하게 한국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짐들을 줄일 수 있었다. 일 년에 몇 번 입지 않은 옷들은 당근마켓에 팔았고, 사용하지 않은 식재료들은 전부 이웃들에게 나눠주었으며 큰 서랍장이나 책상은 당근마켓에 무료로 올리니 하루도 가지 않아 다 사라졌다. 그 결과 나는 몇 개의 겨울 옷, 재킷, 티셔츠, 구두 말고는 큰 짐들은 없었다. 물론 나의 추억이 담긴 액자, 사진, 앨범, 중요한 책들은 부모님 집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두 가방만 있다면 나는 어디든 다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유목민적인 삶

어느 정도의 편리함을 포기하면 의외로 물건을 줄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화려한 옷보다는 단정하면서 소박한 옷들을 선호하게 되었고 물건 값보다는 무게를 신경 쓰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물건들을 가지고 있던지 노트에 정리하고 새로운 물건을 살 때마다 기존의 물건을 처분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물건이 많이 없다는 것은 다이어트만큼이나 삶을 가볍게 만들어주고 자신감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에 내가 20대 때 인상 싶게 읽었던 책 중 하나는 '물건이야기'였다. 지금 읽어도 좋은 통찰력을 제공하는 아주 좋은 책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은 살면서 대부분의 물건의 80%를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얘기하는 "언제가 쓸 때가 있다"라는 말로 우리 자신을 수없이 속이고 있진 않은가? 또 책에서는 물건이 어떤 식으로 폐기되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기후환경 에세이스트로서 환경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환경분야에서 중요한 한 축은 바로 '폐기'이다. 우리는 물건 사용, 간혹 만들어지는 생산과정만을 논의하고 바라본다. 폐기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언제나 불편하다. 누군가 처리해 주길 바라는 마음,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라는 이기적인 본능이 물건의 마지막 단계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물건은 갑자기 '뿅'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물건과 물질은 1) 소각되거나, 2) 매립되거나, 3) 재활용된다. 물론 모든 물건이 100% 재활용된다면 폐기는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다. 그러나 그런 바람직한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간단히 몇 개의 뉴스만 체크해 보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6534#home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1128741.html


두 기사 모두 한 달 이내 작성된 기사이다. 본 글은 가벼운 글이기 때문에 심층적으로 다루진 않겠지만 두 기사만 요약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수도권 매립지 3-1은 곧 끝난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고 추정만 할 뿐이며 비록 3-2가 남아있지만 새로운 매립지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이는 곧 정치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지금 서울시민들이 버리는 쓰레기들은 인천 매립지 노동자들이 온갖 악취를 견디면서 땅에 묻고 있다. 

2. 전 세계적으로 쓰레기양은 급증하고 있지만, 쓰레기 수거, 선별 작업은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며, 노동자들은 착취를 당하고 있다. 반면 쓰레기 처리 기업들은 이익을 얻고 있으며, 사모펀드도 이를 활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3. 정부의 정책은 주로 미관 중시이며,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미흡하며 이러한 구조는 기후변화 문제와도 연결되어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폐기의 문제는 돌아 돌아 결국 정치의 영역이 된다. 우리가 쓰레기를 무심코 버리지만, 누군가는 이를 해결해야 하며 결국 돈이 급한 외국인 노동자들과 정치적 힘이 약간 지역이 희생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재활용과 폐기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취득하기 위한 사모펀드들의 발 빠른 움직임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1인가구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폐기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경제를 회복하는 가장 원론적인 해결책은 소비증진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재활용 기술을 늘리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쓰레기를 원래대로 돌려주는 낭만적인 기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재활용 과정을 거치든 우리는 에너지를 써야 하며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유해물질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원시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인간의 본능을 무시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미니멀리스트로써 살아가는 삶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물건을 줄이게 된 계기는 개인적인 이유였지만 나의 노력이 장기적으로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나의 삶을 조금 뿌듯하게 만든다. 당장 미니멀하게 삶을 꾸린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사회적으로 조금 가치가 있기를 바라본다. 

이전 01화 방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