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라는 안전지대

인생의 다음 챕터를 고민하는 나와 당신

by Jinsylvia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세수만 대충 하고 어젯밤 자기 전 생각해 둔 대로 아이들 아침 식사를 차린다. 지난밤 일기예보를 보고 미리 코디해 놓은 옷을 입으며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운다.

남편에게 저녁에 약속이 있는지 묻고 아이들 아침 식사 어떻게 줘야 하는지 설명한다. 가방과 코트를 손에 들고 신발을 신으려는데 부산한 소리에 깬 첫째가 방에서 나온다. 몽글하고 따뜻한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구두를 구겨신으며 밖으로 나선다.


특별할 것 없는 평일의 아침.

그렇게 평온하고 일상적인 날들이 이어졌다.


감사하다.

큰 불행도 잘 피했고, 삶의 고단함도 적당하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과 친구들이 무탈하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하고픈 걸 누린다.

비교적 “잘 살았다”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들었다.
크게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었다.

다른 재주는 없었지만, 성적이 좋으면 학교생활이 편하고 남들도 인정해 주는 게 좋아 열심히 공부했다.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쓸데없이 더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의심한 적이 별로 없었다. 단체로 체벌 받을때 살짝 억울하긴 했지만 그려러니 하고 이내 잊었다.
가끔 내 욕망과 본능을 따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무던하게' 현실과 타협했다.








소위 말하는 굉장히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다.

주어진 일을 해내면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왔다.

직장에서 열심히 한다, 성실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말은 분명 칭찬이며, 삶에 대한 보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30살이 되니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했다.

마음이 조급해져 소개팅을 매주 했다. 이 레이스에서도 나는 성실했다.
살짝 포기하고 있을 때쯤 비슷하게 성실하고 착한 남자를 만났다. 성실한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4인 가족이 되었다.




일하는 엄마로 살기 위해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하루를 쪼개 쓰는 법을 배웠다.
직장에서도 일 잘하고, 엄마 역할도 잘 해내는,

늘 ‘문제없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다

예상하지 못한 배우자의 해외발령으로

예상하지 못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때


'내'가 찾아왔다.


여유 있는 시간에 나와 놀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었다.



그렇게 달콤한 시간이 흐르고

일상이 가득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성실'한 나로


그렇게 원래의 나로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직장에서도 적절하게 잘하고, 비교적 좋은 엄마로 지내고 있었다.


"쌤은 왜 그렇게 수업을 열심히 하세요?"

"진짜 부지런하신 거 같아요."

"일하면서 아이들 공부도 잘 관리하시네요."

"저녁도 직접 만드시는거에요?"


원래 그러했듯 일상은 성실함으로 채워졌다.

안전한 쪽, 인정받는 쪽, 문제 되지 않는 쪽으로.


그러다 문득

마음에 작은 엑스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삶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넘기기엔 뭔가 마음이 당겼다.
성실하게 살아온 덕분에 얻은 것들이 많은데,
그 성실함 때문에 지나쳐온 감정들도 내 옷자락을 잡는 건 아닐까?




평온함 속에 혼돈

중년의 사춘기인지, 변화의 시점인지

이 성실함을 넘어

다음 챕터를 넘겨야 할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