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해서 뭐해먹고 살려구?

인생의 다음 챕터를 고민하는 나와 당신

by Jinsylvia



수업내내 멍하게 있다가 끝나기도 전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뒤로하고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운동장 끝에 있는 빨간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숨을 고른 뒤,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30여년전 겨울

그때 어떤 상황이였는지는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교실을 나와 다급하게 전화하던 13살의 내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안될것 같은

어린 나의 마음이...



초등학교 6학년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예중에 가고 싶었다.
다들 다녔던 미술학원을 그져 재미있게 다닌다고 생각했던... 아니 사실 미술학원을 얼마나 다녔는지 정확히 몰랐을 내 아버지는 예중 이야기를 꺼내자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씀하셨다.
“그거 해서 뭐 해먹고 살려고?”


세상을 잘 몰랐기에

그 질문에 차마 반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와 예중 입학 시험을 보기위해 열심히 풀었던 문제집들을 한쪽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지원 마지막 날, 수업 중에 교실을 뛰쳐나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빨간 공중전화로 뛰어가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 예중 가고 싶어. 지원해줘요”

"아빠가 안된다고 하셨잖아. 중학교 다니면서 더 생각해보자!"

마지막 기회를 잡고싶었던 어린 나는 전화를 끊고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1년 뒤

미술학원에 있던 나는 갑자기 나타난 아빠의 손에 끌려나왔고

그게 정식으로 그림을 그린 마지막 날이였다.






고3, 후회없이 죽어라 공부했다.
수능 점수는 그때까지 봤던 모든 모의고사 중 가장 잘 나왔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너무나 뿌듯했다.

고등학교 내내 걱정이 많았던 엄마는 처음 본 좋은 점수를 두고

갑자기 '의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역사와 사회, 그림이 좋았던 나는
고고미술사학과를 떠올렸다.
그때 주변에서 모든 사람들이 말했다.
“그거 해서 뭐 해?”


의대는 정말 아니라며 손사래쳤고

결국 어디에나 다 써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영문학과에 들어갔다.
영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문학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영문학과 학생이 되었다.




그래도 스스로 위안했다.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사는 거라고.
나 역시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요인들을 자랑스러워하며

남들이 칭찬과 부러워하는 듯한 시선을 즐겼다.





성공이라고 불리는 모습은,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가려는 사람은 많고,
그래서 경쟁은 치열하다.

그래도 그 경쟁에서 '이기면' 안정과 인정을 얻게되리라 믿으며

보이지 않는 그 틀에 나를 맞췄다.
아주 열심히 조금씩 접고, 구겨 넣으면서.
그러다 보니 원래 내 생긴꼴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반 정도 산거같은데...

인생의 후반전을 앞에 두고 자꾸 마음을 잡아당기는 질문이 있다.

'이게 맞는건가?'

'나는 어떻게 생겼는가?'

'남은 시간에도 그 틀에 나를 맞춰야 하는가?'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때 공중전화 앞에 서있다.

답은 거기에 남아 있는 걸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