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다음 챕터를 고민하는 나와 당신
아침 8시
어린아이들을 집 앞에서 스쿨버스를 태우고 다정하게 손을 흔든다
다시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의무가 모두 끝나고 엘리베이터 속 나는 나만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건물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집에 와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시계는 아직 오전 9시 반이다.
이 시간이 낯설었다.
24살부터 쉬어본 적이 없었는데…
만삭일 때도 뒤뚱거리며 출근했고
100일 된 아가를 열손가락에 반지를 낀 시터에게 맡기고 울면서 출근했다.
당장 가야 할 곳이… 당장 해야 할 급한 건 없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우선순위고 뭐고 늘 코앞에 닥친 일부터 치워내며 살아왔는데
인생의 국영수를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학에 가 전공을 정했고, 직업을 택했고, 결혼을 했다.
좋아서 낳은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데 최선을 다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에는 책임이 따라왔고, 하루는 언제나 빠듯했다.
그렇게 하루살이처럼 눈앞의 일을 하나씩 넘기며 5년을 살았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시간이 주어졌다.
연고지 없는 외국에서 3년을 살게 되었다.
직장은 휴직을 했고, 아이들은 어느 정도 커서 기관에 다녔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온전히 나를 위해 비어 있는 시간
처음엔 어떻게 이 시간을 써야 할지 몰라
집에 있다가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한 아이를 만났다.
아주 오래전
빨간 공중전화 앞에서 울고 있던
어린 날의 나이다.
그래서였을까.
무작정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온라인 수업을 뒤지다가 일상을 그리는 간단한 드로잉 수업을 발견하고 수업을 들으며 작은 스케치북에 일상을 펜으로 끄적였다.
아이들이 하원하고도 나는 그림을 그렸다.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지만, 아이들은 한국 시골 마을처럼 자랐다.
대여섯 명이 떼를 지어 이 집 저 집을 오갔다.
공동 마당에서 풀을 들여다보고, 개미를 쫓아가고, 바닥에 놓인 공을 찼다.
집으로 올 땐 우리 아이들 뿐이었는데
간식을 준비하다 보면 아이들은 5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면 집에 아무도 없었다.
옆집에서 우리 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나는 매일 그렸다.
집에서, 놀이터에서, 길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공간이 허락하는 한 어디든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아이들이 공을 차는 동안,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그리고 또 그렸다.
3년 동안 매일 그렸더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나.
그림을 가르치는 나.
그림을 파는 나.
처음부터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계획한 적은 없었는데
매일 그리다 보니
어느새 '그림 그리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중전화 앞에 서 있던 그 아이가
내게 미소를 보낸다.
매일 실천한 이 일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예측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