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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Dec 30. 2021

애는 내가 낳았는데…   왜 남편을 배려해야 해요?

워킹맘을 디자인해드립니다 (5)


“애는 내가 낳았는데… 왜 남편을 배려해야 해요?”


‘꿀맘’인 현정이 똥기저귀 동그랗게 말아 쓰레기통에 골인시키며 해수에게 말합니다.



해수, 현정, 희수, 미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이지만 조리원에서 인생에서 가장 초췌한 몰골로 2주간 매끼를 같이 먹고 수유도 같이 하다 보니 군대 동기만큼이나 끈끈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출산이라는 대변화를 같은 시기에 겪은 여자들의 우정은 조리원을 퇴소하고도 계속 이어집니다.


조리원 동기 4인방은 오늘 해수의 집에 모였습니다.

아직 누워있기만 하는 아가들을 데리고 집 말곤 갈 곳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아이와 외출하려면 챙겨야 할게 왜 그리 많은지… 또래 아기가 있는 집에 가면 웬만한 건 다 빌릴 수 있어 너무 편합니다.



아기 4명을 거실 가운데 이불 위에 나란히 눕혀놓고 엄마들의 수다가 이어집니다. 같이 먹어야 훨씬 맛있는 떡볶이에 튀김, 김밥을 시켜 함께 먹으며 수다가 끊기지 않습니다.

종일 집에서 아이를 돌보게 된 해수는 어른과의 대화가 그리웠습니다. 남편도 있고 친정 엄마도 들락거리시지만 처음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분과 상태를 이해해 주는 건 조리원 동기들 밖에 없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고 만났던 아이가 없는 친구, 선후배들은 이제 강 건너편에 있는 딴 세상 사람들입니다. 아이가 있다고 해도 시기가 1년만 차이나도 대화의 주제가 완전 달라집니다.


아이들 낳은 지 50일이 다 되어 가는 초보 엄마들의 대화는 남편들에 대한 불만이 가득합니다.

아이는 같이 만들었는데…

육아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업무인 것을 시간이 갈수록 절감하는 4인방입니다.



넷 중 가장 좋은 아파트에 사는 현정은 오늘도 남편 뒷담화가 한가득입니다. 꿀이가 아토피가 있어서 먹는 거나 목욕시키는 것도 엄청 신경 쓰기 때문에 밤에라도 남편의 도움이 절실한데... 동갑인데도 철이 없는 현정의 남편은 아이가 집에 온 후부터 일이 바쁘다며 집에 일찍 오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정은 세탁을 하려고 남편 양복 주머니를 뒤지다가 찜질방 영수증을 발견합니다. 일주일 전 저녁 8시 입실. 그날은 특히 더 힘들어 일찍 와달라고 문자를 보냈던 날이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거래처랑 저녁 미팅이 잡혔다는 말에 홀로 밤새 칭얼대는 꿀이를 돌봤는데…

그 시간 남편은 찜질방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현정은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아무래도 같이 못살겠어요. 내가 이렇게 힘들 때 자기만 살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살아요?”

“에구… 배신감 들었겠네… 근데... 꿀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힘들지 않을까? 남편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봐요”

“아니… 애는 내가 낳았는데… 남자가 뭐가 그렇게 힘들어요? 왜 제가 남편을 생각해야 하죠?”

"같이 키워야 하니깐...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봐야지 않을까?"

"자기는 예민해서 애랑 못 잔다고 따로 자요. 밤새 칭얼대는 꿀이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요.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인 줄 알았으면 결혼하지 않는 건데..."


현정에 이어 희수와 미소도 줄줄이 불만이 쏟아냅니다.


“이 자식이… 애가 나왔는데도 쓰레기 한 번 안 버려요. 한 번은 니가 안 하고 베기냐 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일주일 넘게 집안에 쓰레기가 쌓여서 결국 제가 그냥 버렸어요. 애도 내가 다 보고 집안일도 내가 다하고...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아이가 둘인데 시어머니 저녁 안 챙겼다고… 집에서 하는 게 뭐 있냐며… 저도 능력만 되면 이혼하고 싶어요.”


엄마들 편하게 놀라고 낮잠에 빠진 네 아기들 옆에서 먹다만 떡볶이를 가운데 두고 세 여자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부은 얼굴로 잠에서 깬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즐거워야 할 만남이 눈물의 성토장으로 끝난 후 해수는 저녁을 준비합니다. 쑥쑥이는 엄마 젖을 배불리 먹고 바운서에 누워 요리하는 걸 바라봅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민석의 소울 푸드인 감자가 많이 들어간 된장찌개에 고등어구이입니다. 고등어를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타이머를 돌린 후 민석이 좋아하는 고추 가득 매운 소스도 준비합니다.


‘푹칙푹칙 픽~~~!! 취사를 완료했습니다.’ 밥이 다 되자마자 현관 비밀번호 소리가 들립니다.

“나 왔어~~ 자기 오늘 어떻게 지냈어? 안 힘들었어?”

퇴근한 민석은 바운서에 누워있는 쑥쑥이를 지나 해수에게 먼저 말을 겁니다. 해수의 얼굴을 살피고 나서 종일 눈앞에 아른거렸던 딸을 안고 안방으로 갑니다.



딸을 침대 위에 누이고 눈을 마주치며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민석은 욕실로 가서 목욕 준비를 합니다. 따뜻한 물 넣자 파닥거리는 쑥쑥이의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론 능숙하게 몸을 닦습니다. 살이 접히는 목이나 사타구니도 가재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고 헹굴 물이 있는 작은 대야로 아기를 옮겨 깨끗한 물로 씻깁니다.

“와.. 이젠 혼자서도 잘하네~ 베테랑 아빠 다됐어~”

상을 다 차린 해수가 커다란 수건을 들고 욕실 문 앞에 서서 민석에게 말합니다. 해수가 쑥쑥이의 몸을 닦고 로션을 바르는 동안 민석은 욕실을 정리합니다. 목욕시키는 동안 아기가 파닥거려서 민석의 옷 앞쪽이 흠뻑 젖어 있습니다.



아기를 바운서에 다시 뉘이고 둘만의 식사를 시작합니다.

민석은 찌개 안에서 폭 익은 감자를 오물거리다 잘 익은 고등어를 매운 소스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쑥쑥이가 칭얼대기 시작합니다.


“우리 윤서~ 아빠가 안아줄까? 엥… 그새 응가했네! 크크... 내가 할께~ 너는 얼른 먹어.”


한 명이 얼른 먹어야 다른 사람이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해수는 그대로 앉아 식사를 합니다. 민석이 일찍 퇴근하거나 낮에 친정 엄마가 들르실 때만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뭐라도 먹을라고 하면 왠지 깬 거 같아 잠든 아기를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제대로 차리는 것도 귀찮아 국에 밥을 말아 싱크대에 서서 끼니를 때웁니다. 긴장 속에 밥을 먹다 보니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밤 9시. 윤서를 재울 시간입니다.

아직 밤에 통잠을 자지 못하는 50일 아가이지만 먹고 자는 시간은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수유를 마치자 민석은 아기를 안고 트림을 시킵니다. 10분 뒤쯤 ‘걱~’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바로 가로로 안아 좌우로 바운스를 타며 안방으로 한 발씩 걸어갑니다. 야근이 없는 날이면 민석이 재우기 당번이라 해수에게 유일하게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해수는 얼른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종일 신경 못썼던 얼굴을 확인합니다.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화장은 한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지 그사이 폭삭 늙은 거 같습니다. 얼굴에 에센스를 잔뜩 바르고 요가 매트를 꺼내 팔다리를 늘리며 스트레칭을 해봅니다. 하루 종일 긴장상태로 수유, 트림, 기저귀, 또 수유, 트림, 기저귀… 를 반복하다 보니 목과 어깨가 돌덩이처럼 뭉쳤습니다. 그 커다랗던 배는 어느 정도 들어갔지만 축 처져 있고 다리는 아직도 많이 부어있습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처진 배를 들어 올려 아직도 가끔 콕콕 쑤시는 수술 부위에 전용 연고도 정성껏 바릅니다.



해수는 요가 매트에 가만히 누워 창밖에 떠있는 달을 바라봅니다.

엄마가 된 지 50일.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밤낮으로 돌보는 건 지금까지 했던 어떤 공부나 일보다 고되고 과중합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박사학위를 2~3개는 땄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은 성격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던 육아를 하나하나 배워가며 그런대로 해내고 있지만 정작 가장 힘든 건 마음입니다.


분명 꼬물거리는 딸이 귀엽고 신기하지만 아이가 엄청나게 고귀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습니다. 'to do list'를 하나씩 체크하며 키우고 있을 뿐... 엄마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절대 사랑과 희생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 없이 계속 는 아기를 한 시간 넘게 안고 있거나 새벽에 일어나 비몽사몽으로 기저귀를 갈 때면 이제 막 시작한 엄마라는 이 직책이 그저 무겁기만 합니다.



“엥~엥~”


방 안에서 딸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민석이 데리고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되었는데… 아직도 재우지 못했나 봅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느라 힘들었을텐데… 한 시간 동안 아기를 안고 무한 바운스를 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면서 고맙기도 합니다. 내일은 민석이 항상 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카레를 만들어야 겠습니다.


10분 뒤…

민석이 조용히 안방 문을 닫으며 나와 해수에게 승리의 브이를 날립니다.

"아빠가 재우면 더 빨리 자던데... 팔 엄청 아플 텐데... 힘들었지?

“와… 오늘은 진짜~ 안자더라… 휴~~ 겨우 잠들었어… 자기도 안 졸리면 티비 같이 볼래?”


민석은 소파에 누워있는 해수 앞에서 어깨 스트레칭을 하다가 갑자기 혼자 웃습니다.

“크크...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날 계속 빤히 쳐다보다가 스르륵 눈이 감는데… 너무 귀여운 거 있지!! 크크...”


아무래도 해수보다 민석의 부성애가 더 강한가 봅니다.

민석과 소파에 나란히 누워 티비를 보던 해수는 자신에게 부족한 모성애를 부성애로 채우며 이 길을 계속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다 스르륵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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