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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Jan 03. 2022

워킹맘 살리는 육아 세팅

워킹맘을 디자인해드립니다 (6)

“세팅을 잘하면 워킹맘 할만해.. 잘 세팅하고 나와~”


아이가 둘인 워킹맘 5년 차 이채선 샘의 톡에 복직을 앞두고 머리가 아픈 해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봅니다.



복직 한 달 전.

출산 후 아이만 돌보다 보니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던 해수는 워킹맘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할 때가 왔음을 절감합니다. 육아휴직 요청을 묵인한 직장과 학교에서 배운 남녀평등 따위는 없는 이 사회에 분노만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현실적인 육아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예전엔 해수에게 완전 남에 일이었지만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지인들이 어떻게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합니다.




대학교 과후배인 신지영.

영문과를 나와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한 후 프리랜서 통역가로 일하다 사관학교 출신이 남편을 만나 4년 전에 결혼했습니다. 도와줄 가족이 없고 ‘휴직’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아들이 돌이 될 때까지 육아는 오롯이 지영의 몫이었습니다. 더 쉬다가는 다시는 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14개월 된 아들을 아파트 1층 가정 보육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큰 병 없이 건강했던 지영의 아들은 처음으로 집단생활에 하면서 등원 다음 주부터 온갖 질병에 걸렸습니다. 감기는 거의 달고 살았고 수족구, 독감과 같은 전염성 질병에도 결려 어린이집에 자주 가지 못했습니다. 군인인 남편은 한번 훈련을 들어가면 육아를 전혀 도와줄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아플 때마다 약속한 일을 자꾸 펑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영은 1년간 온갖 민폐를 끼치다가 결국 그렇게 좋아하던 통역일은 포기하게 됩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있는 6~7시간 동안 초집중해서 할 수 있는 번역일만 하다 보니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고 활동할 수 있는 영역도 좁아졌습니다.


고등학교 친구인 박아연은 영어 유치원 교사입니다.

항공사를 다니는 남편과 결혼해 4살 된 딸 하나가 있습니다. 6개월간 아이를 돌보다 복직 후엔 친정 엄마가 육아를 전담했습니다. 대구에서 살던 친정 엄마는 아연을 돕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함께 지내시고 가끔 대구에 내려가셨습니다. 평생 우아한 사모님처럼 살아오신 친정 엄마지만 딸을 위해 밤에도 손녀와 함께 주무시고 집안일도 대부분 직접 하셨습니다. 딸이 매달 주는 용돈 80만원의 대부분은 아이 간식이나 옷, 장난감, 혹은 반찬값으로 쓰셨구요. 친정 엄마 덕분에 출산 후에도 맘껏 일하고 가끔 남편과 저녁 데이트도 즐겼던 아연의 축복받은 삶은 대구에 홀로 계셨던 친정아버지가 쓰러지시면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서울 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는 강나은은 해수의 동아리 선배입니다.

공무원 시험 합격 후 대학교 때부터 사귄 회계사 남친과 결혼했습니다. 친정이 지방이고 시댁에서 사준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출산 후부터 자연스럽게 시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게 됐습니다. 첫째 딸에 이어 2년 터울로 둘째 딸을 낳으면서 시어머니가 육아를 전담하게 됩니다. 1년 육아휴직 후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시터를 고용하지 않은 채 복직을 합니다. 때문에 시어머니는 1년 반 동안 종일 어린 둘째를 돌봐야 했습니다. 둘째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서는 5살이 된 첫째를 사립 유치원으로 옮겼습니다. 시어머니가 각기 다른 두기관에 다니는 손녀 등하원 및 하교 후 육아를 전담으로 맡게 됩니다.

해수가 오랜만에 연락했더니 나은을 육아휴직 중이었습니다. 작년에 시어머니가 디스크 수술을 하셔서 더 이상 아이들을 돌봐주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은 역시 곧 복직을 해야 하는데 남에게는 아이들을 절대 맡길 수 없다며 지방에 계신 친정 엄마를 설득 못하면 일을 그만둘 거라고 합니다.


김선미는 해수의 고등학교 친구로 로봇공학 박사입니다.

학위 취득 후 취업 준비 중에 아들을 출산하고 진로에 대해 엄청나게 갈등 중입니다. 대학원 연구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3개월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해 출퇴근 시터를 알아보고 인터뷰까지 봤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종손은 절대 못 맡긴다는 시아버지의 완고한 태도에 결국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반반씩 나눠서 육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계획과는 달리 복직 후에 조금씩 친정 엄마의 육아 비중이 커졌습니다. 시어머니는 몸이 아프다, 약속이 있다는 등의 핑계로 한번, 두 번 친정엄마에게 미루다가 반년이 지나니 이젠 친정 엄마가 거의 육아를 도맡게 돼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두 분께 같은 금액의 용돈을 드리는 것이 너무도 짜증납니다. 게다가 선미보다 늦게 박사학위를 따고도 선망하는 국책 연구소에서 과장 대우로 일하고 있는 남편까지 꼴 보기 싫습니다.   


대학교 선배인 장은지는 공기업 연구원입니다.

대기업 다니는 남편과의 사이에 7살 아들, 4살 딸을 두고 있습니다. 친정엄마는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시어머니가 10분 거리에 살고 계시지만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육아를 부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출퇴근 전담 시터를 쓰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만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둘이 되자 시터비만 월 200만원에 어머님 용돈까지 챙겨드리면 은지의 월급은 남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이모님을 쓰지않고 유연 근무제를 활용해 남편은 아이들 아침 등원을 시키고 10시까지 출근하고 은지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해서 하원 및 육아를 맡았습니다. 그나마 급할 때 도움을 주셨던 시어머니가 최근 유방암이 재발하면서 내년에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아들의 하원 및 집안일을 도와줄 아주머니를 찾고 있습니다.


변호사인 채송화는 해수의 과동기입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1살 연하의 의사남편과 첫째 딸, 둘째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송화 부부 둘 다 전문직에 업무량이 많아 첫째를 출산했을 때부터 입주 시터를 고용했습니다. 송화네 시터는 조선족으로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만 하루의 개인 시간 외에는 육아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시터 이모님이 편하게 쓰실 방이 필요해서 최근 방 5개짜리 빌라로 이사했습니다. 5년 동안 육아와 살림을 전담해준 입주 시터 이모님이 자기 인생의 최고의 은인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송화는 최근 출산을 앞둔 변리사인 친동생에게 입주 이모님의 고향 동생을 연결해주었습니다.   


송가영은 고등학교 친구로 대기업 인사과 과장입니다.

3살, 4살 연년생 아들 둘이 있지만 미혼일 때처럼 야근도, 주말 워크숍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영이 워킹맘임에도 몰두해서 일할 수 있는 건 전업주부인 남편 덕분입니다. 가영의 남편은 가영이 첫째를 출산 후 복직을 해야 할 때 퇴사를 하고 지금까지 육아와 살림을 도맡고 있습니다. 남들은 전통적인 남녀 역할이 바뀐 가영 부부를 신기하게 보기도 하지만 정작 둘은 서로에게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남편은 ‘살림하는 남편’ 콘셉트의 블로그를 운영 중이며 이를 계기로 최근 전업주부 남편들을 소개하는 아침 토크쇼에도 출연했습니다.




주변에서 한참 육아 전쟁 중인 선후배, 친구들의 육아 방식을 찬찬히 살펴본 해수는 자신만의 육아 세팅을 생각해봅니다. 채선샘의 말대로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따라 워킹맘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주변의 수많은 예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근본적인 대전제부터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계속 일하고 싶은가?”입니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닌 내 정체성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면 일하게 됐을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이나 ‘육아’라는 새로운 업무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내 일’과 맞바꿔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당장 그만두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거죠. 때문에 내 일이 나에게 주는 가치를 저울질해야 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잠시 벗어나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에 스스로 확고하게 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배우자의 직업환경을 고려해야 합니다.

배우자의 업무강도, 출퇴근 시간, 근무시간의 유동성, 육아휴직 여부에 따라 워킹맘의 육아는 많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쉽게 간과하는 것은 ‘육아’에 대한 상대방의 철학입니다. 아이를 몇 명 가질지, 육아에서의 엄마의 역할을 어디까지인지, 아빠로서 어떤 영역을 감당할 수 있는지, 육아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쓸 것인지… 아이가 없을 땐 나눠보지 못한 많은 가치관에 대해 치열하게 나눠야 합니다. 만약 부딪치는 가치관이 있다면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대화하고 싸워야 합니다. 해수는 육아 세팅을 하는 과정에서 민석과 뭐든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아이 목욕을 시키면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면서, 때로는 친정엄마 찬스를 쓰고 둘만의 외식을 하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부부가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다면 일하는 부모 대신 아이를 돌봐줄 기관, 혹은 가족을 찾아야 합니다. 집 근처에 갈만한 어린이집이 있는지, 등 하원 동선과 어린이집 시설이나 분위기도 미리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부모가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손자니깐 잘 봐주시겠지… 라는 막연한 마음에 조부모에게 온전히 육아를 맡겼다가 온 집안에 불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해수는 주변을 돌아보며 절감했습니다. 어른들의 건강상태나 육아를 해주실 의향이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맡아주실 경우 용돈의 액수나 집안일 여부도 처음부터 분명하게 해야 뒤탈이 없습니다. 만약 어른들이 아이를 봐주시게 된다 하더라도 아이에 관련된 큰 결정이나 교육, 훈육은 전적으로 부모가 맡아야 한다는 걸 미리 못 박아 두어야 하고요.


가족이 아닌 시터를 고용할 경우 좀 더 세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지인으로부터 오랫동안 함께 했던 시터를 소개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전문 업체에 문의해서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 부모의 근무 환경에 따라 출퇴근 시터가 아닌 함께 거주하는 입주형 시터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입주형인 경우 서로 다른 생활 패턴이나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니 사전에 서로 원하는 부분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해야 오랜 기간 함께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나 아이의 정서를 고려해서 시터와 할머니가 함께 아이를 돌보기도 합니다. 이럴 땐 아기 엄마보다는 할머니와 잘 맞을 만한 나이와 성향을 고려 시터를 구해야 합니다. 아이의 부모가 시터와 할머니의 육아 전담 시간을 정확히 정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미리 조율해야 합니다. 이때도 전반적인 양육의 방향이나 결정은 전적으로 부모가 맡아야 잡음이나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해수는 아직 뒤집지도 못하는 딸을 두고 복직을 해야 한다는 착잡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현실적이고 이기적이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주변에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자들이 초반 육아 세팅을 잘못해서 본인은 골병들고 가족 간에 갈등은 심해져 결국 대책 없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민석이 딸과 잠든 저녁…

해수는 몰래 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혼자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이젠 여자가 아닌 엄마니깐… 강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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