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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Jan 10. 2022

퇴사, 이기적이지 않은 엄마의 선택

워킹맘을 디자인해드립니다 (7)


“남에 집 아이들 돌보려고 내 애를 남에게 맡겨야 하나?”


자신만의 육아 세팅을 준비하는 해수는 민석과 동네 어린이집을 방문하러 가는 길에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생후 백일부터 다닐 수 있는 가정 어린이집 0세 반 교실에 들어가니 침대 위에 딸 또래로 보이는 아기 3명이 천정을 바라보며 누워있습니다. 순간 가슴이 꽉 막힙니다. 복도로 나오니 3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구석에 힘없이 앉아 있다 해수를 쳐다봅니다.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원장님에게 급하게 인사를 하고 나옵니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해수도, 민석도... 둘 다 말이 없습니다.


“시터를 구하자…”


민석도 해수와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해수의 친정엄마는 10분 거리에 살고 계시지만 나이가 많으시고 또래에 비해 체력도 좋지 않아 온전히 손녀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해수도 잦은 병치레로 고생하셨던 엄마에게 하루 종일 아이를 맡길 수 없습니다. 시터 이모를 쓰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한국사람일 경우 출퇴근 이어도 풀타임에 200만원은 줘야 한답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아도 교사 월급에서 시터비에 기름값과 보험료를 제외하면 남는 게 하나도 없겠습니다.


시터 비용을 들은 해수의 친정엄마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이 하나를 맡기는데 월급을 거의 다 써야 한다는 사실에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사회생활한 딸이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설령 남는 게 없더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딸이 계속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시터는 오전에만 쓰고 점심 이후에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봐주는 걸로 육아 세팅을 했습니다. 두 돌이 지나면 시터를 그만 쓰고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하고요. 오후에 엄마가 아이를 보기 때문에 해수는 당분간 방과 후 수업이나 기타 보충 수업은 안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야간 자율학습 감독 날에는 남편이 최대한 일찍 퇴근해서 육아를 하기로 합니다.



며칠 후, 동네 아는 분의 소개로 아이를 볼 이모님을 만나게 됩니다. 50대에 지금까지 시터 일을 해본 적은 없지만 딸 3명 키웠기 때문에 아이 보는 건 자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 볼 사람치고는 복장이나 액세서리들이 굉장히 화려하고, 특히 대화하는 내내 거실 이불 위에 누워있는 윤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게 맘에 걸립니다. 하지만 업체를 통해서는 반나절만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고 시간도 촉박해서 할 수 없이 딸을 맡기기로 합니다.


당연히 복직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육아 세팅을 하는 과정에서 해수의 결심이 흔들립니다. 하고 싶은 거 참으며 공부하고, 인터뷰 보고, 철저한 수업 준비에, 반 아이들 상담, 그 와중에 대학원까지 다녔던 시간까지… 그 모든 열정과 노력들이 남의 일처럼 아스라하게 느껴집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는 건데… 대충 살았다면 일을 놓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텐데…

열심히 살았던 지난 과거가 허무합니다.  



복직 전주

해수는 딸의 100일 파티에 초대하려고 근처에 사는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언니는 출산과 함께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7년째 전업주부입니다.


“선택의 문제인데… 그래도 만 3살까지의 육아 환경이 평생의 성격과 인성을 결정한다고 하니... 엄마랑 같이 있는데 좋지 않을까?"

사촌 언니의 진심 어린 조언에 다잡았던 마음이 또 무너집니다. 아이가 생겼는데도 가지고 있는 걸 하나도 놓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엄마인거 같아 해수는 또다시 혼란스럽습니다. 그만두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일단 일정대로 복직하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복직 날 아침.

오랜만에 아이의 스케줄이 아닌 해수의 스케줄에 맞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합니다. 출산 후 살이 많이 빠졌지만 임신 전에 입던 옷을 다시 입기는 아직 무리입니다. 임신 중기쯤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자고 있는 딸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기를 두고 나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10년째 해왔던 걸 계속할 뿐인데… 왠지 아이를 버리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옵니다.


학교로 향하는 나만의 시간

이렇게 이른 아침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게 얼마만인지...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 좋아하는 음악을 플레이합니다. 도로를 달리며 창문을 조금 여니 시원하면서 달큰한 봄바람이 코를 간지럽힙니다. 그 순간 불과 30분 전에 해수를 괴롭히던 죄책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영어과 전해수”


해수는 교무실 문에 쓰여있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반갑습니다.

‘산모님’ ‘어머님’ ‘윤서맘’… 이런 호칭들로 불렸던 지난 몇 달 동안 잠시 있었던 내 이름입니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오랜만에 어른 무리들과 대화를 나누니 예전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고작 3개월 휴직했을 뿐인데… 모든 게 너무 새롭습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문 앞에 2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있습니다. 해수가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들입니다.

“선생님~~~ 와! 대박~ 살 진짜 많이 빠지셨어요!”

“샘~~ 애기가 딸이에요? 사진 좀 보여주세요~”

“까약! 넘 귀여워~~~ 볼 좀 봐~~~”


재잘거리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그제야 교사 전해수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점심 식사 후

해수는 보조 가방을 들고 서둘러 여교사 휴게실로 향합니다.

오랜만에 출근해서 내내 정신이 없는 바람에 유축할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4시간 이상 방치했더니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등까지 아려옵니다. 휴게실 문을 잠그고 가슴 패드를 확인하니 터지기 일보직전입니다. 일찍 복직하는 게 미안해서 모유만큼은 가능한 오래 먹이고 싶어 단유를 하지 않았는데… 일하러 나오니 시간에 맞춰 유축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열심히 유축한 모유를 전용 지퍼백에 담아 유축기와 함께 가방에 넣습니다. 바로 교무실 냉장고 냉장실 한켠에 두었다가 퇴근할 때 가져가야 합니다.



딸과 헤어질 때는 미안하고 슬프다가 막상 출근을 하면 집안일은 생각도 안 나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던 건 단 일주일.

이제 유축 타이밍도 제법 잘 맞추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학교와 학생들은 그대로인데 해수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내고 수업 준비던, 학급 일이던, 학교 행사던… 최대치를 뽑아내던 해수는 이제 없습니다. 계속 졸리고 생각을 확장하는 자체가 너무 귀찮습니다. 일주일 전에 완벽하게 끝냈던 수업 준비는 수업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끝내지 못하는 날이 많아집니다. 급하게 수업 준비를 하는 중에 갑자기 기저귀가 다 떨어진 게 생각납니다. 온라인 쇼핑 장바구니에 기저귀를 담아놓고 다시 책을 들여다보다가 저녁에 먹을 야채가 없다는 게 또 생각납니다. 휴대폰 메모장에 장 볼 물건들을 적습니다.

꼭 해야 할 것이 머릿속에 100개 이상을 떠다닙니다. 머릿속을 정리하며 멍하게 있다가 수업 시작 종이 치자 얼른 답만 체크하고 후다닥 교실로 향합니다.


수업을 마친 해수는 교무실로 바로 안 가고 학교 뒷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들어가 헛소리만 하다 나온 거 같아 찝찝합니다. 임신 전엔 추가 프린트와 화려한 ppt, 역할 놀이 도구, 지루할 타이밍에 터트릴 웃음 포인트까지… 완벽했는데…

양심에 찔리는 엉망진창인 수업 이건만… 그래도 열심히 들어주는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엄마 없이 먹고 자고 놀 어린 딸에게도 미안한데…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주는 학생들에게도 미안하고…


왜 이리 미안한 사람들이 많은지… 해수는 자꾸만 작아집니다.





'저는 이제 일 못하니 다른 분 구하세요.'


여름 방학 한 달을 쉬었던 시터 이모님이 개학을 일주일 남기고 해수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아기를 보러 오는데 너무나 화려하게 치장하고, 출근하는 해수에게 설거지해놓고 가라고 할 때에도 아이를 맡긴 약자의 입장으로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면 어쩌라는 건지… 머리가 띵합니다.

게다가 나머지 반나절 딸을 봐줬던 친정 엄마도 말썽이었던 무릎이 더 나빠져서 앞으론 지금처럼 해수를 도울 수가 없게 됐습니다. 복직한 지 고작 3개월인데... ‘퇴사’라는 선택지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듭니다.





친정 엄마가 갑자기 대구로 내려간 후 해수의 고등학교 친구 아연은 멘붕에 빠집니다. 다급한 마음에 전업주부인 시누이 아이를 돌봐주는 시어머니에게 육아를 부탁해보자고 말했다가 남편과 크게 싸웠습니다. 업체와 엡을 통해 하원 도우미를 찾아봤지만 가격에 흠칫 놀랍니다. 친정 엄마는 딸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부터 하루 종일 육아에 살림까지 해주셨는데도 꼴랑 50만원을 드렸는데...

방법을 못 찾은 아연은 일과 아이 사이를 저울질하는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영어 유치원 부원장을 그만둡니다. 딸이 어린이집을 가는 동안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데 마땅치 않아 3개월째 육아만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인 선미의 아슬아슬한 워킹맘 생활에 곧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옵니다. 시어머니와 반반 육아를 계획했으나 결국 매일 왕복 2시간 거리를 오가는 친정 엄마가 독박 육아를 하게 되면서 일이 터진 겁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간 친정엄마는 대상포진이 머리 쪽에 생겨서 한시가 급하다는 의사의 말에 그날 바로 입원하십니다. 교수님께 사정해서 일주일의 휴가를 얻은 선미는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자 울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약속한 대로 안 하셔서 이렇게 된 거라고 퍼붓는 선미에게 5년 넘게 석사, 박사 시기를 함께 보냈던 남편은 화를 내며 말합니다.

“니가 포닥을 하려고 고집을 부리니깐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너가 이기적인 건 생각 안 해?"

선미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질타에 성장하는 과학자인 선미는 한순간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선미는 포닥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러 교수님을 찾아갑니다.



해수의 과선배 나은은 직장에 다니시는 친정 엄마를 설득하는  실패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월급만큼의 수고비를 줘야한다는 것보다도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아 시터는 고용할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1년 남은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봅니다. 육아 휴직이 거의 끝날 무렵 주말에 시댁에 갔다가 마주친 손아래 시누이가 나은에게 쏘아붙입니다.  

“언니는 엄마면서 애들보다 일이 더 중요한가 봐요?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육아휴직도 다 썼고 더 이상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나은은 7년 동안 공부해서 겨우 합격한 공무원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있으니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주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라고 생각했는데…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 조금 빨리 벌어진 것뿐인데…

결정을 앞두고 해수의 마음은 온통 눈물바다가 됩니다.





“나 수정이.”


베스트 프랜드 김수정이 오랜만에 전화를 했습니다. 복직하고 정신이 없어 통화조차 못한 지 너무 오래됐습니다. 해수의 사정을 아직 모르는데… 마치 친구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대뜸 말합니다.


“해수야… 넌… 절대 그만두지 마… 나처럼 후회하지 마.”


수정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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