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를 위한 작은 위로
고객은 자신이 겪은 불쾌한 감정을 에누리 없이 이자 붙여 되돌려준다. 화난 상태를 혼자 삭히기에 너무 분하다는 듯 쏟아낸다. 속에 담아 두었다간 암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모두 뱉어낸다. 우리는 조직에 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그리곤 장렬히 전사한다.
평소 자신이 자주 처하는 상황이라 생각되나요? 소비자의 힘이 어느 시대보다 커진 지금 고객은 여전히 왕이다. 요즘은 고객의 수퍼 갑질이 이슈화되며 악성고객은 처벌받는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직 존재한다. 질긴 바퀴벌레처럼 멸종되지 않는다.
나는 회사 고객만족센터 전화번호가 폰 액정에 찍히면 긴장한다. 대개 1차 응대에 실패하거나 큰 컴플레인일 경우다. 15년간 밥 먹고 고객 응대했지만 여전히 긴장된다. 직원과 통화하며 목소리는 자연스레 어두워진다. 상황이 파악되면 재빨리 고객에게 달려간다. 늦게 도착하면 고객의 분노가 더 커져 수습하기 힘들다. 신속한 이동만이 고객과의 첫인상에서 점수를 잃지 않는다.
감정노동을 하는 우리는 악성 컴플레인에 상처받는다. 안 받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로봇이 아닌 다음에야 분노의 찬 목소리를 기쁘게 들을 수 없다. 하지만 마음에 상처를 최소화할 방법이 있으니 알려주려 한다. 귀 쫑긋 열고 들어주기 바란다.
나의 필살기는 자아 분리다.
나라는 자아와 책임자라는 역할의 분리다. 고객은 서비스 불만족을 해당 책임자에게 얘기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불만에 대한 보상을 받거나 문제가 개선되길 바란다. 고객은 불만을 들어줄 담당자가 필요하지 그 사람이 정진우라는 것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고객이 나에게 화를 낸다고 생각한다. 이럴 땐 고객의 불만을 들으며 내가 아닌 담당자에게 하고 있다고 의식하게 되면 객관적인 입장이 될 수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회사의 누군가는 고객 앞에서 불만을 들어야 한다. 그 누군가의 역할을 내가 대신할 뿐이다.
텍사스 소떼처럼 달려드는 고객을 앞에 두고 이런 의식의 전환은 쉽지 않다. 하지만 화를 내는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어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 본질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다. 컴플레인 처리 시 의식하면서 응대하면 곧 익숙해진다. 훈련의 장점이다. 또한 고객의 컴플레인 처리는 비즈니스에 있어 중요한 활동이다. 결코 사소하게 넘길 수 없다. 이 직장에 다니는 동안 밥 먹듯 화장실 가듯 해야 하는 일상의 업무다.
나는 대한민국 감정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상처받지 않고 위로받길 바란다. 그들은 누군가의 어머니고 아들이고 동생이다. 급여나 나이의 작고 적음을 떠나 서로가 존중하고 예절을 지킬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성숙이 완성되기 전까지 우리는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수정하여 상처받은 분들께 들려주고 위로하려 한다.
어느 강의장에서 강사는 청중에게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보여주며 물었다.
"여기 100달러짜리 지폐가 있습니다. 받고 싶은 분은 지금 손들어 주세요"
강의장에 많은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강사는 들고 있던 100달러 지폐를 보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나쁜 녀석, 죽일 놈, 너 같은 놈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해!"
그리고 강사는 그 100달러 지폐를 보여주며 받고 싶은 사람은 다시 손을 들으라 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어 보였다.
이번에 100달러 지폐를 바닥에 놓고 짓밟고 발로 차면서 침까지 뱉었다. 그리고 그 지폐를 갖고 싶은지 다시 청중에게 물었다. 처음처럼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강사는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 여러분 제가 들고 있는 이 100달러 지폐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아무리 욕을 하고 짓밟혀도 100달러의 가치가 없어지지 않듯 여러분들의 고귀한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멸시와 비난을 받더라도 상처받지 마세요 여러분은 소중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