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의 미술 전시회에 갔다. 평소 시간을 짬짬이 내서 그린 그림 4작품을 동료화가 작품과 함께 하는 공동전시였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완성한 자식같은 작품을 멋진 곳에서 전시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렇게 그림은 그려져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화가 자신이 그림의 첫 수혜자이다.
작품은 정물화 3작품과 풍경화 1작품이다. 정물화 대상은 장미 2작품, 난꽃 1작품, 나머지 풍경화는 외국의 어디를 연상케 하는 집과 산이 보이는 그림이다. 작품의 느낌은 이렇다. 꽃 정물화의 경우 표현 대상을 매우 사실적이거나 꽃의 특징답게 색상이 화려한 것이 일반적이나 검은색 배경을 써 전체적인 분위기가 차분했다. 그리고 꽃의 색상도 화려함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표현했다. 그림 전체적인 느낌은 묵직하고 차분하지만 고급스럽다. 튀지 않지만 나만의 품격과 자존심이 있어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작품은 그린 화가를 닮는다. 자식이 부모를 닮듯 당연한 결과다. 화가 평소의 가치관과 철학이 작품에 그대로 묻어있다. 내가 살고 싶고 내고 싶은 분위기가 그대로 표현된다. 그 느낌은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전달된다. 같은 정물이지만 그리는 사람에 의해 다르게 보이는 것은 화가만의 개성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바쁜 일상과 게으름 속에서 그리고 싶다는 열정이 계속 그리게 했을 것이다. 어떤 날은 무덤덤하게 어떤 날은 화가 나고 어떤 날은 피곤함 속에서 그렸을 것이다. 작업을 하며 자신이 표현하려 했던 느낌이 잘 나타나는지 확인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을 것이다. 전시회에 작품이 걸려 사람 앞에 보일 날을 기다리며 그렇게 그렸을 것이다. 그림은 사람들한테 보여져야 하고 글도 읽혀야 의미를 가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님의 꽃 시가 생각난다.
관람을 마치고 전시회를 총괄하는 선생님과 대화 시간이 있었다. 인사를 하고 그림에 대한 소감을 밝히니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온다. 나이가 지긋이 있어 보이셨는데 평생을 그려온 그림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계신지 짐작이 간다. 그분의 말씀은 이러했다. 많은 분들이 그림을 배우러 온다. 하지만 빨리 좋은 그림을 그리고픈 욕심에 기본에 충실하기보단 기교와 잔재주를 배우게 된다. 물론 재미없는 기본 훈련만 시키지 않는다. 재미있어야 계속 그리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교와 잔재주로 그린 그림을 탕수육 그림이라 표현한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기본에 충실한 김치찌개 그림도 그려야 하는데 사람들은 좋아하는 탕수육 그림만 그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탕수육 그림은 중심이 없는 잔재주만 요란한 그림이다. 그런 그림은 좋은 그림이 아니다. 계속해서 성장할 수 없다.
순간 내가 글 쓰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이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다. 무엇이든 완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나도 멋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좋은 문장을 따라 하거나 흉내 냈다. 좋은 글이란 폭넓은 독서와 생각을 통해 자신의 표현으로 써야 한다. 또한 매일 글을 써야 작가고 매일 그려야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탕수육 글을 썼던 기억이 나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글쓰기와 그림은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예술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림은 보여주고 음악은 들려 줌으로써 즐거움을 준다. 예술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일상이다. 어렵다는 인식을 만든 것은 예술을 독점하려는 어느 못된 기득권 세력인지 모른다. 태초에 사람들은 동굴에 벽화를 그려 풍요를 기원하고 예술적 즐거움을 즐겼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거나 춤을 추며 인생을 즐긴다. 바쁘고 고된 일상에서 마음에 드는 예술 하나씩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예술을 생산하고 즐기는 프로슈머의 삶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화가는 그림을 그려서 인생에 예술을 더하고 난 글을 써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