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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Dec 09. 2023

나는 곰이다

내가 모르는 진짜 내 모습

우리 애들이 나를 바라보는 캐릭터는 곰이다. 왜 곰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곰처럼 생겼단다. 느릿느릿한 행동과 조급해하지 않는 성격이 꼭 곰을 닮았다고 한다. 평소에는 푸근한 곰이지만 화가 나면 아주 포악한 곰으로 변한다고 한다. 애들에게 자주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니지만 화가 났다는 것은 아주 많이 화가 난 것을 의미한다. 그때는 세상 가장 무서운 포효와 발톱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벌벌 떨게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곰돌이 푸와 같이 평화로운 모습을 보인다.


와이프는 성격이 나와 반대다. 애들이 잘못하면 바로 혼내고 일과 살림을 위해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한다.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고 가족을 위한 완벽한 지원으로 애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한다. 아빠와 있으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와 있을 때는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얼마나 할까? 엄마 보고 싶다는 말의 10분 1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다 따로 있기에 보고 싶다는 말에 서운해하지는 않는다. 난 가끔씩만 아빠 보고 싶어 하면 되는 걸로 만족한다.


애들이 바라보는 아빠 캐릭터가 곰이라는 말에 생각해 본다. 왜 곰일까? 나는 성격이 온순한 편이다. 사람들과의 갈등을 싫어하고 원만한 관계를 지향한다. MBTI 검사 유형으로 INFJ가 내 타입이다. 이 타입에 대한 설명을 보면 속을 알 수 없는 선의의 옹호자로 나온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도우려는 기질이 많고 자신이 조금 희생하더라도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내 성격과 맞춰보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다.


나는 생각이 많고 삶의 속도가 빠르지 않다. 조금 느리게 사는 것이 내 성격이다. 회사일을 하며 빠르게 해야 할 일은 어쩔 수 없이 속도에 맞추지만 내 일은 느리게 하는 편이다. 이런 모습에 조금 답답하게 느낄 수 있지만 내 기질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애들도 아빠의 모습에서 곰을 보는 것 같다. 느릿느릿한 모습에서 곰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내 방에서 잠도 자고 글도 쓰고 하는데 빛이 잘 드는 편이 아니어서 어두운 편이다. 아빠가 사는 방은 어두운 굴과 같다. 그래서 아빠는 굴에서 사는 곰이다.


딸은 예쁜 캐릭터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 미술 수업을 받아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그려내는 수준이다. 어느 날 나에게 곰 캐릭터를 그려서 줬는데 곰이 소주병을 들고 좋아하는 모습이다. 내가 평소에 술을 즐겨하는 모습을 보고 곰과 술을 조합한 모습이었다. 나도 잘 모르는 내 모습을 주변 사람이 더 잘 파악하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보이고 느껴지는 것을 외부에서 더 잘 캐치할 수 있는 것 같다. 거울도 가까이 눈을 대면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더 잘 보인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모르는 진짜 모습은 모를 수 있다.

사각형 한자는 진로소주를 의미하는 참眞이다.

나는 내가 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곰처럼 보이는 것이다.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이라 말수가 많지 않다. 생각이라고 해서 특별한 생각보다 그냥 생각의 바다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생각이다. 그 생각을 말로 내뱉기보다 머릿속에서 가둬둘 뿐이다. 곰은 우직한 캐릭터라 말이 많으면 가볍게 보여 곰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곰이라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곰을 특별하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겨울잠을 자는 곰과 평소 잠이 많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겨울잠을 자기에 그 우직한 성질이 쓸개에 모여 곰쓸개가 특효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잠이 많아 쓸개가 튼튼해서 소화력이 좋고 간의 해독에도 도움을 줘 술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나이가 드니 알코올 해독능력도 떨어지고 예전 같지 않다. 곰도 사람도 나이가 들면 쓸개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곰은 얼굴에서 코가 차지하는 비율이 큰 편이다. 나는 콧날이 오뚝하기보다 뭉툭한 편이다. 이런 코 때문에 더욱 곰과 같다고 느낄 수 있다. 결국 애들이 아빠를 곰이라고 부르는 것은 외형적인 모습과 곰의 성격이 잘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자주 아빠는 곰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아! 나는 곰이구나 생각한다. 애들의 관찰력으로 내가 몰랐던 내 캐릭터를 알게 되었다. 가끔씩 곰이라고 부르면 곰 흉내를 내며 애들과 장난을 쳐준다. 와이프가 핀잔을 줄 때도 곰이 되어 모르쇠와 익살스러운 행동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의외로 나에게 유용한 캐릭터다.


나는 곰이다. 사람들에게 포근한 인상과 따뜻함을 주는 곰이다. 곰의 우직함으로 사람들을 잘 도와주고 불의에는 무서운 포효로 불같이 싸우는 정의로운 곰이다. 내 인생 캐릭터를 알게 되었으니 이를 잘 활용하여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들에게는 아낌없는 도움으로 행복을 주고 나쁜 행동으로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는 응징하여 정의를 지키는 곰. 이 가치관이 앞으로 내가 세상을 살아갈 사명이다. 애들로 인해 우연히 알게 된 곰 캐릭터를 통해 내 모습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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