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5일에 돌아본 내 두번째 이야기
같은 글의 하이라이팅 된 버전. 라이너는 이렇게 쓰는 겁니다.
앞의 글에서 얘기를 나누었던,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이 어느 순간 끝이 났다. 갑작스럽게 나의 대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2011년은 내가 연세대학교에 입학 한 해이다. 한양대학교에서 대학교 1학년을 이미 해봐서 그랬는지, 아니면 1학년 해본 거와는 별개로 이미 미친놈처럼 놀아보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세대에서는 대학교 1학년인데도 전혀 놀 마음이 들지 않았다.(지금 돌아보니 나는 심지어 연대 공대 같은 반으로 배정된 친구들과 학창 시절에 개인적으로 술을 마신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때부터는 노는 것 대신에 시간을 꽤나 아껴서 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먼저,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이 때로부터 몇 년 전에 이미 결심을 해두었기 때문에 내가 창업을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자금을 모아서 어떤 일을 누구와 함께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모르겠었다. 쉽게 말하면, 태초에 '어떻게 시작하는지'조차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뭘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일단 때리고 보는 내 성격대로 무작정 앱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책을 사서 앱스토어 성공 사례도 읽고 디자인도 혼자 하고 프로그래밍도 친구와 좀 해서 앱스토어에 앱을 3, 4개 정도 냈었다.
그런데 막상 무작정 때려보고 나니까, 혼자서 모든 일을 거의 다 하려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다. 하루는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조언을 좀 얻고 싶어서 당시 연대 컴과 1학년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던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이 교수님께서는 자기는 프로그래밍을 한 지가 좀 되어서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직접 조언을 해 줄 수 없다고 하셨다.(사실 당연하다. 교수님이 내 코드 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교수님들을 현직 프로그래머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잘못 여쭤본 게 맞긴 했지만 여하튼 이 교수님이 우리에게 C 언어를 가르쳐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때는 이게 좀 충격적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가끔 조언 구하고 하는 식으로는 앞으로 일을 제대로 해나갈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서서 이번에는 고려대 산업 디자인과에 찾아가서 디자이너를 무작정 만나고, 연세대에서는 프로그래밍을 잘한다고 알고 있던 친구를 무작정 만나서 앞으로 내가 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일을 하자고 꼬셨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주변에 조금 더 생겨나도 나는 내가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모은 사람이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모인 사람들은 동물적으로 그것을 아는 것인지, 사실상 이 모임은 내 능력의 부족으로 거의 바로 깨졌다.
이때 열성적으로 설득했던 디자이너 친구가 어머니에게 찾아가
"어머니, 어떤 형이 창업하자고 하는데... 이 형이랑 같이 있는 개발자 친구는 개발 잘하는 거 같은데 정작 이 형(나다.)이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이거 해도 될까요?"
"아니, 하지 마렴"
해서 두 번 만나고 디자이너 친구가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것 같다. 이때 이 디자이너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술을 마시다가(대학교 1학년이니까 설득의 핵심은 술과 패기였다.) 못 간 동아리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 못 간 사람들을 모은 자리에서 지금까지도 함께 일하고 있는 공동 창업자를 만났다. 그리고 이 디자이너 친구는 1년 뒤에 길거리에서 만나서(!) 다시 디자이너로 영입할 수 있었고 라이너의 로고를 그릴 때까지 일하면서 대학생 스타트업 시절을 함께 했다. 그리고 처음 만난 개발자 친구도 그때까지 계속 같이 일했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처음에 만난 친구들이 '모두' 함께 실력을 갈고닦으며 대학생 스타트업 시절을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하여튼 그때는 나중에 이런 식으로 점들이 이어질지 몰랐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어서 팀이 유지조차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생각하게 된 것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나보다 조금 더 앞서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 나를 묻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는 창업 동아리를 알아봤다. 그런데 알아봐도 알아봐도, 실제 창업이 일어나고 있는 동아리가 학교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우연히 어떤 창업 동아리가 이제 막 출범하기 위해 창립 멤버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부터 듣게 되었다.(이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알겠지만, 인생이 이런 식으로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중요한 시점에 날 살려준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 동아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실제로 창업이 일어나는 동아리’를 만든다는 것이었고, 이에 동감해 무려 창립 멤버로서 함께하게 되었다.
솔직히 창립 멤버라고 해봐야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형들이 시키는 것들 하기에 바빴다. 이때는 개인적으로 혹은 창업 동아리를 통해 몇 개의 모임에 참여하고 선배 창업가들의 강의를 많이 찾아다니면서 내 나름대로 감을 키우고 사람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창업과 관련된 경험들을 쌓겠다는 취지로 당시 많이 생겨나고 있던 창업 경진대회들을 기웃거리면서 여기저기 무작정 지원해보았다.
아마 아직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시험’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활동으로부터 내가 실제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학생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속마음은 무작정 세상에 부딪칠 자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실제 창업 경험을 쌓을 순 없었지만 이 창업 경진대회를 나가면서 친해졌던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지면서 결과적으로는 그들 중 일부와 함께 후에 창업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세상에 낭비되는 시간 같은 것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무 도전도 하고 있지 않은 이상은.
그렇게 이런저런 프로그래밍을 하고 창업 경진대회에 나가고 사람을 만나고 하면서 1년 정도를 보냈다. 앞서 말했듯이 그 사이에 내가 태어나서 맨 처음 꼬셨던 디자이너는 ‘뭐야, 이 형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네?’로 인해 일을 함께 하지 않겠다고 했다. 고맙게도 내가 태어나서 맨 처음 꼬신 프로그래머는 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은 함께 하겠다고 해주었다.
이때쯤 되니 대회도 질리게 많이 나가 보았다. 창업 쪽에 동아리를 통해서, 혹은 개인적으로 만난 선배들도 좀 있으니 무언가를 모를 때 도움받을 수 있는 분들도 생겼다. 아직 다들 제대로 일해본 적은 없지만 프로그래밍, 마케팅을 맡아줄 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동료들도 생겼다. 드디어 나는 대학교 2학년 2학기에 ‘아 이제 내가 직접 창업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통은 학생들이 창업을 할 때,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문제를 푸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그 제품이나 서비스가 꽤 잘 되거나 투자를 받아야 하는 때가 오게 되면 그때 실제로 법인을 설립하는 순서로 일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학생 창업 팀들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상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정하지 않고(!) 대학교 2학년 2학기에 법인 주식회사(주식회사 아우름플래닛)를 설립했다. 그렇게 알바도 한번 한 적 없는 나의 태어나 얻은 첫 직함은 ‘대표이사’가 되었다.
법인까지 세운 뒤에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 알던 분이 인사동에 있는 한 갤러리의 큐레이터를 소개해주셨고, 이 기회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미술계의 폐쇄적인 작품 유통 문제와 해외의 선 사례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미술 작가라는 직업을 전업으로 하고 살기 위해서는 작품을 통해서 수익이 나야한다. 그런 수익을 내는 방법 중 하나는 작품 자체를 판매하는 것이다. 지금의 미술계는 미술 작품을 사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갤러리와 큐레이터들이 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술 작가들은 쉽게 그들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라는 것이 그때 파악하게 된 미술계의 현황 중 하나였다.
회사를 세우고 일을 시작할 때 ‘내 주변 세상을 나로 인해 행복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득 ‘미술계의 구조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IT 서비스 제작을 통해 혁신하여 미술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떠한 문제를 풀 때 실제로 10명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더 적거나 같은 비용으로 10,000명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이런 식의 문제 해결을 통해 IT로 시장이 혁신된 경우가 많다.) 나는 여기에서 시작해서 “정말 미술 작품을 사는 사람들의 리스트는 정해져 있는 것일까? 100배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작품을 사는 사람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순진하게) 가지게 되었다.
우선은 온라인 전시 웹사이트를 만들고 몇 명의 선발된 작가들의 작품을 그곳에 공개하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작품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작품을 판매할 수 있고, 작품이 판매되지 않더라도 작가에게는 홍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미술 작가 분들을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동기였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1Artist1Week였다. 신기하게도 미술 작가 분들이 초기에 많이 지원해주셔서 가장 우려했던 것 중 하나인 전시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의 숫자가 적었고, 보러 오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 보니 작품 판매는커녕 홍보 효과도 적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제대로 된 홍보 채널을 찾지도 못했고, 적절한 마케팅도 진행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이 웹사이트를 방문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제대로 된 웹 서비스를 만들어본 적이 없던 시절이라서 그냥 ‘사람들은 만들면 자연스럽게 들어올 것이다.’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프로젝트 그 자체에 있다고 잘못 판단하게 되었다. 문제의 원인을 잘못 파악하였으니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 3달쯤 지난 뒤에는 미술 작가 분들 쪽에서도 열기가 많이 식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미술 작가 분들이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주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작품 자체의 판매를 통해서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이번에는 미술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 디자인, 이미지를 디자인 상품으로 포장해서 판매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래서 모바일 앱을 이용해서 자기만의 폰케이스를 만들 수 있는데, 본인 사진 외에 미술 작가 분들의 작품 이미지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폰케이스 제작 앱 서비스를 만들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제조의 ‘ㅈ’ 자도 몰랐던 우리는 폰케이스 생산 단가 계산 같은 것은 당연히 하지도 못했고, 폰케이스가 하나 팔릴 때마다 100원에서 300원 정도가 남았는데 하루에 3, 4개 정도 밖에는 판매를 하지 못했다. 심지어 사람들은 미술 작품 이미지보다 사진(커플 사진이나 결혼사진 같은 것들이 인기가 많았다.)을 이용해서 폰케이스를 만드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해 준 미술 작가 분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치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렇게 반년 넘게 매일매일 실패만 경험하다 보니까 "사업이라는 것이 내가 그냥 제품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서 사주는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절대로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인생 내내 너무 성급하게 일을 추진해온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또, 실험이 언제나 정답인 것처럼 여겨지는 스타트업 세계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조금 상반되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스타트업은 실험 정말 많이 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얇게 여러 방향으로 빠르게 실험하고, 통하는 방법을 찾아서 그 방법에 계속 투자를 하고 싶었는데, 자원이 적은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여러 방향으로 빠르게 실험하다가 의미 있는 결과가 안 나오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망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원이 부족한 집단에서는 ‘의미 있는 관찰’에 근거한 올인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당연히 무조건 올인하자는 말은 아니다. 균형이 중요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방위로 실험을 할 수 없으니 반드시 유의미한 관찰이 실험이 시작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지금까지처럼 무작정 무언가를 실행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움직임에는 단순한 느낌을 뛰어넘는 통찰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통찰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한 실행력이 우리 내부에 있어야 했다. 이런 생각을 기초로 다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둘러보았는데 그 당시 아직 살아있던 1Artist1Week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니까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
쓰다 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다. 2013년 — 1. 반년 내내 실패하다. 그 뒤의 이야기로는 다시 눈에 들어온 1Artist1Week로부터 시작된 아이노갤러리와 아이노갤러리를 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어떻게 내가 지금의 새 팀을 구성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LINER를 만들어가게 되었는지가 이어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이너 팀에서는 Android, iOS, Web Client 개발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jinu@getliner.com으로 간단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보내주시면 상당히 재미있는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