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우 Dec 01. 2022

시작과 끝

12월

  올 한 해 역시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말았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설 때면 느낄 수 없었던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엉망이었어서, 마지막만큼은 정갈한 모습으로 갈무리를 짓고 싶은 욕심도 든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건 끝에 대한 잔상이라 그런가 보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죽음과트라우마>라는 교양 과목을 들은 것이다. 처음에는 이름에, 나중에는 모든 것에 매료된 수업이었다. 수업의 대부분의 시간은 '삶'과 '죽음'에 대한 수강생들의 성찰로 이루어졌다. 자기 입맛대로 해석한 교재 내용에 대해 발표하고, 발표자들이 던진 토론거리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 삶의 일부 혹은 전부를 보여 주는 발표가 매 시간마다 진행됐다. 나만 진지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강생 80명 모두 '삶'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게 신기했다. 의견을 나누다 보면 나와 생각의 결이나 방향이 다른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그런 모두의 생각은 '삶'이라는 동일한 주제에 귀결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혐오와 시기가 난무하는 세상일지라도,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이 수업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수업에서 친해진 사람들도 생기고, 사적으로 만나 꿈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재밌는 경험도 했다.

일기장 어플에서 그날의 감정을 아이콘으로 표시한 것이다.

  썩 유쾌한 한 달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모든 월요일에 행복해했다. 앞서 말한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할 수 있을지 설렜다. 나를 포함한 수업에서 만난 모든 분들의 삶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었지만, 앞으로도 빛나길 간절하게 바라본다.


  5월이 떠오른다. 교생 실습이 '성황리에' 끝이 나고, 엄청난 동기를 얻어 미친 듯이 공부를 시작했던 한 달. 그리고 찾아온 번아웃으로 반년을 허송세월을 보냈다. '어차피 입직하고 공부할 거였으니까, 차라리 마음 편하게 논다고 생각하자'라고 자위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너무 한심해 보여서 힘들었다. 내겐 꿈이 있는데.

  그래도 임용시험에 응시하기로 했다.

임용시험을 치르고 왔다.

  문제는 별로 안 떨렸다는 것이다. 준비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 40분이나 되는 줄도 몰라서 책 한 권을 안 가져갔다. 시험을 보는 내내 '선생님 되기가 쉽지 않구나'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보는 내내 재밌었다. 구불구불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도착점이 정해져 있기에 안심하고 갈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 결과는 내 생각보다 참담하지 않아서 의외였다. 안 본 지 반년이 된 국어교육론과 문법 파트를 제외하면(남는 게 없지만), 문학은 그럭저럭 소설을 잘 쓰고 온 듯해서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었기에 아주 유의미한 시험이었다. 그리고 재밌었던 건, 아무런 준비를 해 가지 않았는데도 꼴에 시험 보고 왔다고 저녁 6시부터 꾸벅꾸벅 졸았다.


  엊그제 <죽음과트라우마>에서 발표하신 분께서 자신의 면접 경험을 소개하면서 '가장 떨렸던 순간이 가장 특별한 순간'이라는 너무 멋진 말을 해 주셨다. 내게 있어 내년 임용 시험이 내게 가장 특별한 순간이 됐으면 한다.



  올 한 해, 기쁘면 기쁘다고 함박웃음을 짓고, 슬프면 슬프다고 오열을 했던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내년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2023년 1월 1일에 작년을 떠올리면 '대체로 좋았던 한 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남은 한 달을 잘 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소소하지 않은 일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