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텃밭 농부에서 주말 농장 농부로 신분 상승
지난해 베란다에서 작물을 키우면서 재배와 수확의 기쁨을 알게 됐다. 베란다에서 키운 작물은 단호박과 방울 토마토. 암꽃과 수꽃의 수정이 필요한 단호박은 열매맺기에 실패했지만, 방울 토마토에서는 열매가 맺혔다. 단 세 알이었지만. 내 돈 주고는 굳이 사먹지 않는 방울 토마토를 재배해서 먹으니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함께 사는 가족이 방울 토마토 수확을 함께 기뻐한 것도 뿌듯한 포인트 중 하나.
올해도 베란다에서 방울 토마토를 키워볼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 애기능 주말 농장에서 '부농의 꿈'을 키울 기회가 생겼다. 베란다에서 자랄 뻔한 방울 토마토도 노지에서 더 쑥쑥 자랄 수 있게 됐다.
주말 농장은 장비 '빨'?
5평 규모의 주말 농장이지만, 장비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엉덩이 의자, 텃밭용 모자, 장화, 토시 등등 필요한 게 산더미 같았는데 일단은 장화와 텃밭용 모자를 구매했다. 망원시장에서 각각 2만원, 5천원. 꽃무늬 모자를 얻으니 기분이 상큼. 농사꾼에게 꼭 필요한 장비인 농기구는 주말 농장에서 대여 가능하다. 비료도 1포 준다.
3월 28일, 주말 농장 첫날
돌 캐기 미션: 삽질은 처음입니다만
농사는 처음이다. 삽질도 아마 처음. 아무런 기술이 없지만 일단 호미를 들고 이렇게 저렇게 골라내본다. 생각보다 큰 돌이 '발굴'돼서 당황스럽다. 호미 대신 삽으로 흙을 깊이 파본다. 30cm 깊이는 파야 한다고 하는데, 10cm 깊이도 쉽지 않다. 삽질하는 법을 모르니 아무렇게나 막 찌르다가 왠지 다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삽과 호미를 이용해 두세 사람이 한 시간 넘게 돌을 캐냈으나 여전히 돌밭이다. 아, 이것들이 돌이 아니라 감자라면 얼마나 좋을까(웃음 안 나옴).
이럴 땐 노동요가 필요하다. 잠시 짬을 내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90년대생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추억의 노래'라는 주제의 노래 목록을 급한 대로 재생시켰다. 다비치, 애프터스쿨, 비스트까지 잘 아는 음악이 줄줄 흘러 나온다. 기분 전환 삼아, 삽과 함께 인증 사진도 남긴다. 그리고는 다시 노동. 오후 3시 30분쯤 시작해서 어느덧 5시. 슬슬 배도 고프다. 친구가 싸온 새참(!)을 먹기로 한다.
새참을 먹으려고 장갑을 벗었다가 깜짝 놀랐다. 양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가 터진 흔적이 있는 것. 삽질 좀 했다고 이럴 일인가. 스마트폰 대신 삽 한 번 쥐었다고 이렇게 티를 낸다. 덕분에 손바닥에 밴드를 붙이고 며칠 생활 중이다. 부위 특성상 꽤 불편하다.
친구가 가져온 캠핑 의자에 앉아 15분쯤 쉬었다가 다시 힘을 냈다. 비료를 뿌리고 흙을 한번 더 뒤엎고 약간 평탄하게 만들고 보니 6시가 넘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날씨다. 밤에는 더 추울 테니 서둘러 모종을 심진 않아도 될 것 같다. 텃밭을 가꾸는 데 별 다른 지식은 없지만, 흙의 상태가 중요하다고 했다. 비료를 한 번 더 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집에 왔다. 마지막에는 자잘한 돌은 흐린 눈하고 진짜 큰 돌만 골랐다. 초반에 너무 열심히 캔 것 같기도. 나중에 모종을 심으면서 좀더 골라내기로 한다(합리화 아님!).
이튿날인 오늘, 다행히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다. 다만 어제는 팔이 좀 저릿했다. 몸보다는 정신이 힘들었나? 밤에 자려고 눈을 감으니 계속해서 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이어졌다. 이 '웃픈'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블로그를 시작했다(진심). 다소 급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지만 첫날 텃밭 일지는 여기까지.
요약
3월 28일 월요일 날씨맑음, 5시 이후 바람은 서늘
-오후 3시 30분~6시 30분, 약 3시간 30분
-무한 돌 발굴
-비료 뿌리기
-집 가서 삼겹살 구워 먹고 뻗음(JY)
-콩나물국밥집에서 비빔국수 곱배기와 돈가스 먹방(yun.bamboo+M.S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