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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촌자 Jan 27. 2020

카이사르가 이집트로 간 까닭은?

이탈리아 사진 기행

간단한 점심을 마치고 오전 일정을 리셋. 다시 걸어서 해질녘 콜로세움을 보러 간다. 로마에선 쉬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지는 이상한 힘에 끌리게 되는데 다행한 것은 이 곳이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것. ^^


가는 도중 마주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라르고 디토레 알젠티나(Largo di Torre Argentina). 로마 공화정 시대의 유물로 사진 오른쪽 아래 귀퉁이 벽돌담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폼페이 극장의 유적지인데 사진 찍을 당시엔 뭔지 모르고 지나갔지만 정리를 하다 보니 기원전 44년 건물이다. 뒤늦게라도 알게 되는 것 또한 사진여행의 매력. 암튼 사진은 많이 찍고 볼 일이다.

땅을 파지 마시오~~


로마에선 건물 공사를 하려고 땅을 팠는데 유적이 발견되면 모든 개발행위는 중단되고 유네스코에서 발굴팀이 나와서 조사를 마친 뒤 유적 여부를 결정한다. 그래서 로마에선 함부로 땅을 파지 말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 큰 도시인데도 지하철 노선이 2개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콜로세움 가는 도중 포로 로마노가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카이사르 동상. 뒤로는 포로 로마노의 카이사르 포룸이 보인다. 원로원과 로마 시민을 의미하는 SPQR은 카이사르의 동상 아래 자리함으로써 로마 제국 번영의 시작은 카이사르였지만 그가 밟았던 땅은 원로원과 로마 시민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같은 명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라틴어 카이사르, 영어의 시저, 독일의 카이저, 이탈리아의 체사레, 스페인의 세사르, 러시아의 차르 이 모든 것이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또 다른 이름.

<카이사르의 죽음> by 빈센초 카무치니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이탈리아의_역사

이 장면이 그 유명한 “부르투스 너마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의하면 부르투스는 카이사르의 사타구니를 칼로 찌른다. 카이사르가 자신 어머니와 연인관계였던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 싫었을 것. 그래서 카이사르가 자신을 이뻐했던 것은 아무런 상관 없이 찌르면서 욕을 퍼부었을 것이고 그 욕이 서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욕의 원조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르투스는 그 난리를 쳐서 암살에 성공을 하고도 정권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쫓기는 입장이 된 것을 보면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죽고 나서도 카이사르 편이었고 부르투스는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으로 암살에 가담했는지도 모른다. 이날이 3월 15일인데 이 당시는 율리우스력이 발표 (2년 전)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의 날짜 계산이 초하루(Kalendae)와 중순(Idus, 이두스)을 기준으로 하여 날짜로 잡던 시기. 3,5,7,10월은 15일 이두스이고 나머지 달은 13일 이두스. 암살 공모를 할 때 이두스+2일 이런 식으로 할 리가 없다. 왜냐고? 헷갈리니까. ^^ 그래서 이두스 마르티 (3월의 이두스)가 카이사르 암살 날짜가 된 것. 오늘날 우리가 쓰는 칼렌더(calender)가 이때 쓰던 초하루 칼렌데(kalendae)에서 유래한다. 이래서 또 한 가지 배운다.

기왕 칼렌더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직까지도 쓰고 있는 로마의 달력 체계를 잠시 살펴보자.


고대 로마는 농경사회여서 태음력을 기준으로 사용했다. 농사짓는 데는 지금도 태음력이 으뜸이다. 그때는 1년도 10달만 있었는데 첫째 달은 마르스의 이름으로 마르티우스, 둘째 달은 아프로디테의 아프릴리스, 셋째 달은 여신 마이아의 마이우스, 넷째 달은 결혼과 출산의 신 유노의 유니우스, 다섯째 달은 5를 의미하는 퀸트의 퀸틸리스(제5원소 퀸테슨스), 여섯째 달은 라틴어의 6을 뜻하는 섹스틸리스, 일곱 번째 달은 라틴어의 7을 의미하는 셉템베르, 여덟 번째 달은 8을 뜻하는 옥토베르 (문어의 다리가 8개라서 옥토퍼스), 아홉 번째 달은 9를 뜻하는 노벰베르, 열 번째 달은 10을 뜻하는 디셈베르(decade는 10년)라고 정하고 농한기 2달은 아예 이름도 없었다.


그러다가 로물루스에 이은 두 번째 왕 노마 폼필리우스가 놀 때 놀더라도 날짜는 챙기자며 11월은 두 얼굴을 가진 달의 신 야누스의 이름을 따서 야누아리우스, 12월은 연말 축제 페브루아의 이름을 따서 페브루아리우스로 정한다. 이 당시만 해도 한 달이 30일이나 31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들쭉날쭉했으니 헷갈리기도 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누군가와 약속하기도 어려웠다. 농사지을 때는 태음력이 아무 상관이 없지만 누군가와 거래를 하고 계약을 해야 하니 점점 불편함이 커져갔고, 더군다나 로마의 식민지가 커져갈수록 더욱 새로운 날짜 체계가 필요했던 것.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1866 장레옹 제롬作   선물이라며 카펫에 말려 있다가 빠져나온 순간의 모습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ulius

기원전 4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하고 이집트의 과학기술에 매료되어 돌아온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태양력이 혼돈 없이 매달을 30일과 31일로 정해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율리우스력을 준비하여 기원전 46년 새로운 달력 체계를 발표한다. 


태음력의 입춘 기준에서 태양력의 동지 기준으로 달력을 바꾼다. 


월별 명칭까지 바꾸면 헷갈려서 대혼란이 올 것을 우려하여 그대로 쓰고 농한기 첫째 달을 일 년의 첫째 달로 바꾸면서 1월이 야누아리우스가 되어버린다. 일부에선 카이사르가 11월 1일을 다음 해 1월 1일로 바꾼 것이 하루라도 빨리 종신 독재관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거나 자신의 생일을 1년 중 중간에 넣으려고 그랬다는 얘기가 있는데 아마도 그건 결과적인 해석일 뿐이고 가장 큰 이유는 태음력에서 태양력으로 바뀐 때문. 어찌 되었건 7,8,9,10월은 라틴어 숫자에서 셉트, 옥토, 노벰, 디셈을 가져왔는데 그걸 그대로 두면서 9,10,11,12월로 하라고 하니 다들 난감. 그래서 본인 생일(7월 12일)이 있는 7월을 숫자 5를 의미하는 퀸틸리스에서 율리우스라고 바꾼다.


노마력 기준으로 1월은 31일 2월은 30일 3월은 31일…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달수를 채우면 366일이 되니 제일 마지막 달이었던 12월 페브루아리에서 하루를 뺀다. 그래서 2월이 29일 되었는데 훗날 아우구스투스가 자기 생일달은 왜 30일밖에 없냐고 따지면서 달 이름도 섹스틸리스에서 아우구스투스로 바꾸고 31일로 만들면서 페브루아리에서 하루를 더 가지고 와서 2월이 28일이 된 것. 달력 시스템까지 바꿔가면서 기존의 체계를 흔들었으니 너무 흔들었던 탓일까? 그로부터 2년 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암살당한다. 요즘도 유럽에선 3월 15일은 불길한 날로 인식되고 있다.


율리우스력의 문제점은 128년마다 1일이 늦게 간다는 것. 1582년 당시엔 1582년+기원전 46년=1628, 1628/128=12.7일의 오차가 발생한 상황이었는데, 교황청의 입장에선 부활절 날짜의 오차가 문제였던 것.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부활절 시기는 태음력에 따른 유월절 이후 첫 안식일 다음날이었지만 태양력으로 변경한 로마 교황청은 춘분 이후 첫 보름 다음 일요일로 하기로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한 니케아 공회의에서 결정한다. 그러니 1582년에는 카톨릭 교회 입장에서는 9.8일 <(1582-325)/128>의 오차가 생긴 상황. 그래서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다음날을 10월 15일 금요일로 바꿔서 총 12.7일의 오차 중 10일의 오차를 수정한다. 그리고 윤년도 400년에 100번 있던 것을 97번으로 변경하여 앞으로 발생할 오차를 줄인다.

카이사르 동상이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비아 데이 포리 임페리알리(제국의 거리). 이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로마 최초의 도로 아피아 가도(Via Appia)를 만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All roads lead to Rome)는 말의 유래가 된 그 길. 다음번 로마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한번 둘러봐야겠다.


모자이크처럼 돌을 바닥에 펼쳐놓았는데 차가 다녀도 튀어나오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신기하다. 어릴 적 딱지치기를 해보셨으면 잘 아시겠지만, 웬만한 충격이면 딱지가 넘어간다. 그런데 로마 도로는 차들이 그렇게 다녀도 왜 돌 딱지가 뒤집어지지 않고 괜찮으냔 말이지.

딱 보면 딱지치기하듯 한번 때리면 바로 뒤집어질 것 같다. 근데 저 모래는 뭐지? 그래서 또 찾는다. 요즈음 인터넷은 찾으면 웬만하면 다 나온다. 안 찾으니 모르지 몰라서 못 찾는 건 없다.

드디어 찾았다. 요런 것 찾는 맛에 인터넷 뒤진다.


A는 맨땅 B는 주먹만 한 돌 C는 그보다 조금 작은 돌 D는 모래 그리고 E는 위에 사진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모양의 납작한 돌 딱지. 결국은 바퀴의 충격을 아래로 내려보내서 뒤집어져 올라오는 힘을 분산시켜서 아예 없애버리는 구조. 원래 갈라져 있으니 비가 와서 땅이 갈라질 일도 없다. 원리는 간단한데 결과는 대단하다. 도로 공사하고 나서 100년은 까딱없을 거라고 했다는데 1000년이 지나도 말짱하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Roman_roads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기 (서기 117~138년)의 로마 메인 도로 현황 (main Roman roads)


20만의 병력으로 저 넓은 로마제국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 길(道, Way)에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출동이 가능하기 때문. OMG!

콜로세움 옆에 서 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서기 312년 밀비오 다리 전투 전날 밤 꿈에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나타나 P와 X로 이길 것이라 예언하여 다음날 군사들 방패에 ☧(라바룸)을 새기게 하고는 4배나 많은 숫자의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다. 라바룸은 그리스도를 뜻하는 그리스 문자 ΧΡΙΣΤΟΣ의 첫 글자 카이(X)와 로(P)를 합쳐놓은 것.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는 그 문양이 없다. 정작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신 신봉자였고 정치적 타협점으로 기독교를 선택했던 것일 뿐이고 기독교는 동로마제국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기에 와서야 국교로 선포된다.


나폴레옹이 로마 원정 당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너무나도 탐이 나서, 분해해서 들고 가려고 온갖 시도를 해보지만 방법이 없어 파리에 똑같은 것을 세우라고 지시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폴레옹은 문화재 담당 도미니크 비방 드농 (후일 초대 루브르 박물관 관장)과 함께 원정을 다녀서 예술품의 손상을 초래할 경우라면 무리해서 들고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국은 구멍이라도 뚫어서 대영박물관으로 이고 지고 들고 갔다. 으이그~~

그래서 파리에 지은 것이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 카루젤 광장에 세워진 나폴레옹 1세의 전승기념 카루젤 개선문. 크기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하고 비슷하고 좋기는 한데 뭔가 허전하다. 나폴레옹은 개선문이 작다고 그렇게 궁시렁거렸다고 한다. 허전함의 실체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옆에 있는 콜로세움이었으니 카루젤 개선문으로 만족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더 큰 거 더 큰 거 외치다가 지은 것이 에투알 개선문. 에투알은 별이라는 뜻으로 개선문 주위로 도로가 방사선 모양으로 뻗어 있어 밤에는 별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 나폴레옹의 지시로 공사는 시작했지만 살아서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인트 헬레나에서 사망 후 19년 뒤 1840년 파리 앵발리드로 이장할 때가 되어서야 장례 행렬로 에투알 개선문을 통과한다.

개선장군 환영행사의 마지막 코스 캄피돌리오 광장. 이곳 언덕에 올라서서 포로 로마노에서 환호하는 군중들을 맞이 했다.


이곳에 유피테르(쥬피터)와 유노(헤라)의 신전이 있는데 공사 초기 지하에서 엄청 큰 사람의 머리뼈가 발견된다. 이것이 고대 로마 신화의 올루스 거인의 것이라고 하여 caput(head)+Oli(올루스)라고 라틴어로 카푸토리누스라고 불린 것이 이태리어로 캄피돌리오가 된 것.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회 의사당은 이곳의 이름을 모방하여 캐피톨 힐이라고 불린다.


5 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이 별 모양의 백색 대리석 위에 있어 땅으로부터 솟아오른 것처럼 느껴지는 착시가 있는데 이 또한 미켈란젤로의 의도된 기획. 바닥의 별 모양 장식을 설계를 하였으나 그 당시 교황 입장에선 기독교의 상징 문양이 아니었으니 별 관심이 없어  마무리하지는 못하고 그냥 두었는데 12개의 별자리를 연결한 오묘한 모양이 세상의 우두머리라는 라틴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무솔리니가 미켈란젤로 디자인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하여 1940년 완성된다.

르네상스의 천재 미켈란젤로는 원근법의 적용을 건축의 영역까지 확대하여 계단과 광장의 설계에 적용한다. 아래 계단 입구에서 보면 신전쪽으로 갈수록 약간 크게 만들어서 앞으로 다가와 보이기에 신전을 찾아오는 이들로 하여금 신전이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하는 효과. 안에 있는 작은 별도 포인트가 12개이고 바깥쪽의 큰 별도 포인트가 12개다. 그걸 또 세고 있다. ^^

미켈란젤로가 설계하고 제자 쟈코모 델라 포르타가 완성한 계단 코르도나타. 8~10cm 정도 높이의 계단으로 연결된 경사진 길(같은 계단)을 가리키는데 개선장군이 말을 타고 올라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폭을 크게 만들었다.

원근법 디자인은 후일 베르니니에 의해 성 베드로 성당 광장에 적용된다.

가리발디와 함께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끈 주역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건물 공사 초기엔 파리 에펠탑처럼 로마 시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는지 건물의 하얀 색상과 모양 때문에 웨딩케이크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대리석으로 웨딩케이크를 만들었으면 잘 만든 것 아닌가? 알고 보니 자랑이다. 자랑도 그 정도면 수준급. ^^


앞에 보이는 광장은 사진 오른편에 베네치아 대사관이 있어 베네치아 광장이라고 불린다.

CC BY Gigillo83 SA 3.0 License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이탈리아의_역사

가리발디 장군이 1860년에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빨간색 표시) 북부의 대부분을 통일한 샤르데냐 왕국의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에게 자신의 점령지를 양도한다. 1866년에 베네치아 공화국을 흡수하고 1870년 로마 교황령을 흡수하면서 이탈리아는 통일을 완성한다. 1500년간 유럽을 호령했던 로마제국은 어딜 가고 이탈리아 반도 하나 통일하는데 그렇게 힘이 들었다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출정식을 마치고 진군하던 로마군이 지나간 자리를 열심히 오가는 자동차와 그들의 더위를 식혀주었다는 우산 소나무.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라고 하니 고대 로마시대부터 열 일했다.  

사이프러스와 함께 지중해의 멋을 한껏 살려주는 대표 가로수, 우산 소나무.

콜루세움을 지나 서쪽으로 길을 따라 나오면 가로 621미터 폭 118미터 규모의 로마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대전차 경기장이 보인다. 수용인원이 15만 명이니까 콜로세움의 2배가 넘는다.

CC BY Paul Bigot. SA 3.0 License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ircus_Maximus#

동쪽의 팔렌티노 언덕과 서쪽의 아벤티노 언덕 사이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한 대전차 경기장 상상도. 영화 <벤허>의 모티프가 된 곳이기도 하다.

해질녘 대전차 경기장의 우산 소나무와 사이프러스.

다들 집으로. 우린 숙소로. 그러고 보니 로마의 도로엔 차선이 없다. 그래도 다들 편안해 보인다. 적어도 차선위반 딱지 받을 일은 없으니깐. ^^

대전차 경기장을 지나 캄피돌리오 언덕 방향으로 올라오다가 왼편으로 보이는 마르첼로 극장(Theatre of Marcellus). 처음엔 짝퉁 콜로세움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반대. 콜로세움이 마르첼로 극장을 참고한 것. ^^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에 지어졌으나 카이사르에 의해 다 허물어지고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완성한다. 1만~2만 정도의 관객이 입장할 수 있으며 연극이나 노래 공연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고대 로마 극장은 3개 층으로 이루어진 카베아(cavea)가 있어 계층별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 있었는데 여기서도 콜로세움과 같다.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그리고 3층은 코린트식. 하지만 3층은 중세시대에 일부러 철거했는지 왜 없어졌는지 현재는 알려진 것이 없다.

숙소로 오는 길거리에서 군밤을 팔고 있다. 이탈리아 군밤을 먹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진 찍느라 사서 먹어볼 생각을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여름 지나 찬바람 부는 계절에 이탈리아를 가시게 되면 꼭 한번 드셔 보시라.


로마에서의 소중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무래도 발에는 불이 붙은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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