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0마일 (약 4,180킬로미터)의 캠핑카 여행의 도전. 말하자면 만리길. 미친 디스턴스에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던 차에 그랜드캐년 노스림에 큰 화재가 있어 그나마 있던 여행지 선택의 여지조차 없어진다.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면서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를 지나 와이오밍의 그랜드 티톤과 옐로우스톤을 둘러본 후 아이다호, 네바다를 거쳐 LA로 들어오는 6개 주 통과 대장정.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한번 미쳐보기로 작정. 하지만 나이와 체력을 고려하여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첫 번째 목적지 와이오밍주 잭슨까지 940마일 1,520킬로의 거리를 욕심내지 않고 3일로 나눈다. 잭슨까지 3일, 그곳부터 구경하는데 4일, 그리고 돌아오는데 3일. 따지고 보면 6일 이동하고 4일 구경하는 일정이니 이래저래 둘러봐도 어차피 미친 일정.
옐로스톤 안에서 돌아다니는데만 400마일 640킬로미터.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면적이 9,000평방 킬로 정도 되니까 경기도보다 조금 작다고 보면 되겠다. 용인에 도착해서 가평 다녀오고 안성 갔다가 평택 들러서 김포에 다녀오는 식이다. 이놈의 땅떵어리… 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제대로 느낀다. LA를 출발해서 뉴욕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면 2,700마일 (4,300킬로) 정도라고 하니 이번 여행을 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의 대륙횡단 스케일. ^^
아무리 먼 길이라도 가다 보면 길은 줄어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장도(長途)의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까지 며칠 동안 두근거림이 가슴에서 떠나질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9PhqEegReuI
6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니 첫날의 감동과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육지 멀미가 함께 밀려온다. 라스베이거스를 지나서 바람이 많은 구간을 지나면서 뒷바퀴가 헛돌아 주행 안전장치가 작동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차를 세웠던 것을 제외하면 나름 무사히 도착한 셈이다.
숙소인 카지노에 도착. 예전엔 이곳 주차장에 RV들이 무료로 캠핑을 할 수 있었으나 사고가 있었는지 하루 30불에 캠핑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고 캠프 사이트를 빌려준다. 그들 입장에선 카지노에 와서 즐기라는 마케팅이고 캠퍼들 입장에선 저렴한 비용으로 고품질 캠핑을 즐길 수 있으니 서로 좋다.
카지노에서 준비해 놓은 캠핑장으로 천천히 이동하여 전기와 상하수도를 연결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도를 연결하니 물이 쏟아진다. 연결부위가 잘 못 되었나 싶어 몇 번을 확인해도 마찬가지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집을 차에 달고 그 먼길을 달려왔으니 고생은 당연지사? 물이 별로 많이 새는 것 같지 않다고요? 제대로 한번 보시라. 서비스센터에 전화로 연락해서 필요하면 이메일로 보내려고 담아놓은 사진과 동영상이다. 처절했던 당시엔 여행을 다녀와서 후기를 쓰면서 사용하게 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던 것은 절대로 안 비밀.
물이 새는 정도가 아니다. 오후 7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온도는 43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물도 비 오듯 내린다. 물과 불(전기) 이 두 가지만 갖추어지면 캠핑은 문제가 없지만 둘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캠핑 자체가 불가하다. 첫날 일정부터 완전 폭망이다.
바람에 차가 밀려 엔진 이상인 줄 알고 놀란 가슴을 달랜 게 도착하기 1시간 정도 전인데 또 문제가 터졌다. 불길한 암시가 2가지가 겹쳤으니 이쯤 되면 뭔가 여행 자체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하는 시점. 앞으로 남은 9일 동안 계속 이런 일이 생긴다면 불안해서 어디 여행을 하겠는가 말이지.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서비스를 받을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건 제일 마지막에 해도 늦지 않다.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는 늦을수록 좋은 거라는 건 지금껏 살면서 얻은 철석같은 믿음 중의 하나. 여행을 지속할 수 있으려면 최악의 경우에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마침 옐로우스톤에서 드라이 캠핑을 할 때 물이 부족할 경우에 대비하느라 5갤런 용량의 물통 2개를 차에 실어 놓은 게 있다. 이걸로 물장수 하며 버티면서 열흘간의 여행을 지속할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지 애들 엄마의 의견을 구하니 여기서 돌아서면 옐로우스톤은 평생 구경하지 못할 것 같으니 진행을 하잔다. 물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텐트에서 자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서로를 위로하며 일단 여행을 지속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놓았으니 이젠 상황 개선을 위한 시도를 해야 할 순서. 옐로우스톤 캠핑장은 No Show가 발생하면 그다음 날 일정까지 함께 취소가 된다. 그러면 모든 일정이 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니 가까운 라스베이거스는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더 많아서 좋기는 하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기에 오늘 안에 수리를 하더라도 수리를 마치고 밤에 8시간을 운전하여 솔트레이크 시티로 이동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그래서 가까운 라스베이거스 찬스는 버리기로 하고 예정대로 다음날 솔트레이크 시티로 가서 그곳에서 서비스를 받기로 결정. 서비스에 필요한 3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니 아침 일찍 해가 뜨면 바로 출발하여 6시간을 내리 달려야 한다.
에어컨을 켜놓아도 43도가 넘는 네바다 사막의 열기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밤새 에어컨을 켜놓고 잠을 청해야 할 만큼 몸도 마음도 불편한 여행의 첫날밤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