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마리아 노벨라와 조토의 종탑

이탈리아 사진 기행

by la촌자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기상, 이제 일정의 시작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만, 아직 성당이나 매장이 문을 열지 않아서 그것이 대략 난감할 따름.

1470년 레옹 바티스타 알레르티가 교회 전면부를 완성한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노벨라는 새롭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기하학적 패턴과 아치형 입구가 화려하면서도 소박해 보이고 규모가 큰 데도 아담하게 느껴진다. 피렌체 오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성당의 파사드 중에 하나. 르네상스 최초의 원근법을 적용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일정이 맞지 않아 내부 관람을 하지는 못한다.

마사초의 성삼위일체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Masaccio

마사초가 브루넬레스키로부터 원근법을 배워서 작업한 프레스코화. 소실점을 표시하기 위하여 못을 박아서 실로 연결하여 벽화를 완성하였다고 하는데 심자가 하단에 못을 박아 놓았던 자국이 보인다.

대부분의 성당의 모습이 이처럼 전면부는 아름답게, 측면과 후면은 검소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 특이한 것. 성 베드로 성당도 건물 외관에 있어서는 두오모만큼 공을 들이지는 않았다.


전면부 상단 글씨는 IOHAN(N)ES ORICELLARIUS PAU(LI) F(ILIUS) AN(NO) SAL(UTIS) MCCCCLXX (Giovanni Rucellai, Paolo의 아들 구원 1470년)라고 되어 있는데, 이 지방 의류 사업가 Giovanni Rucellai의 기부로 성당 파사드 윗부분을 완성했다는 표시.


도미니크 수도회 사람들이 지은 성당인데 이곳 성당에서 만든 장미수로 흑사병 치료제로 사용하였고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세계 최초의 약국인 셈이다. 마리 데 메디치가 프랑스 앙리 4세와 결혼하면서 사람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갈 때 이곳 약국에서도 장미수 만드는 인력이 같이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부속건물의 담벼락. 어디서 많이 본 문양?. 파라오의 투탕카멘의 모습이 떠오른다.

CC BY Carsten Frenzl & Tarekheikal SA License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Mask_of_Tutankhamun

역시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응용력은 대단하다. 투탕카멘의 네메스 두건 앞과 뒤를 합쳐서 문양을 만들었다.


로마시대부터 이집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이탈리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유일하게 태양력을 사용했던 이집트. 클레오파트라를 마지막으로 프톨레메우스 왕조를 마무리하고 로마의 속국이 된 그곳으로부터 태양력 외에도 오벨리스크를 포함한 태양신 문화를 흡수한다. 태양신 라(Ra)의 아들 파라오가 썼던 문양인데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 교회 벽에 그려져 있는 것은 이탈리아의 정복지 흡수정책을 잘 보여준다. 유목문화의 몽고가 정복지 모두를 불태우고 죽이는 청야(靑野) 정책을 쓴 것과 극한 대조를 이룬다.

대공 코지모 1세는 1567년 조르지오 바사리로 하여금 성당을 리모델링하게 하고 이곳 광장에서 마차 경주를 열었다. 오벨리스크 2개를 마차 경주의 반환점으로 쓰면서 로마에 있었던 네로의 원형경기장을 모방했다고 하는데,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를 피렌체 공화국 공작으로 임명하면서 공화정이 무너지고 세습 군주제가 도입되어 이후 네로 황제 코스프레하다가 1731년 메디치 가문은 결국 멸망한다.

서양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토가 설계한 종탑. 산 조반니 세례당이 제일 처음 지어졌고 두오모 성당이 1296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는데 종탑은 그 사이 1334년에 착공하여 조토 사후 제자들에 의해 1359년에 종탑이 완성된다. 흰 대리석을 기본으로 녹색과 벽돌색이 대비를 이뤄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흰 대리석은 카라라, 붉은색은 시에나 그리고 녹색은 프라토에서 구해온다.


1층과 2층에는 사각 및 육각으로 된 판을 7개씩 붙였는데 구약에 나오는 숫자 7이 완성을 의미하는데 착안한 것. 일주일은 7일이고 그리스와 로마에서 7은 행운의 숫자. 아마도 그 당시엔 숫자에 대한 믿음이 지금보다 더 컸을 듯하다.

두오모 성당과의 높이 비교 그림이 있어 한컷 담아둔다.

준공한 지 660년 정도 지났는데 여전히 깔끔하다. 예로부터 이탈리아는 토목건축 분야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그 길로 전쟁물자와 군인들이 이동한다. 20만 명이 되지 않는 병력으로 유럽 전역에 걸쳐 로마제국을 지배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도 도로. 전쟁물자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물과 와인. 로마군은 와인이 없으면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와인을 사랑한다. 전 세계 와인 생산량이 1위 국가임과 동시에 절반 이상을 국내에서 소비하는 와인흡입국. 5살 때부터 와인에 사이다를 타서 애들한테 준다고 하니 와인 사랑 또한 남다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와인을 이상 없이 수송해야 하니 흠결 없는 수송로가 필요했던 것. 그래서 로마가 점령한 도시는 항상 도로와 수로가 제일 먼저 갖춰진다.


르네상스 시절의 예술가들은 전시엔 축성 전문가로 탈바꿈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체사레 보자르의 축성 기술자로 추대되어 일했고 그러면서 마키아벨리와 다빈치가 만나게 되는 인연도 생긴다. 미켈란젤로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 공격에 대비하여 피렌체에서 성을 쌓을 때 축성 기술자로 동원되기도 했다. 예술과 토목건축의 과학기술의 경계가 모호한 나라.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의 돌 하나도 허투루 놓은 것 없이 정성이 가득이다.

종탑 내부 천정. 종이 매달려 있었으면 무서울 뻔했다. ^^

이탈리아의 종탑은 특히 캄파닐레(Campanile)라고 부른다. 캄파나(Campana)는 종(Bell)의 의미이고 장소를 뜻하는 ile가 붙어서 종탑이 된다. 그런 종을 솥단지처럼 고이 모셔놓았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온 사방이 철망이다. 물론 안전을 위한 조치이겠지만 이거슨 아니지. 핸드폰 카메라 렌즈는 철조망 사이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일반 렌즈는 어림도 없다. 두오모 쿠폴라를 올라갔다 오신 분들은 조토의 종탑은 굳이 올라가지 않으셔도 될 듯하다.

조토의 종탑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면 바로 옆에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다. 피렌체의 수호성인 성 요한의 이름에서 따온 팔각형의 세례당인데 조반니는 요한의 이탈리아어 표기. 8각형의 8이라는 숫자는 부활을 의미하기에 그 당시 예배당들은 거의 다 8각형으로 지어진다.


내려오자마자 바로 들어가서 세례당 전면사진을 담지 않아서 첫날 찍어둔 사진을 찾아본다. 첫날 저녁에 16-35 렌즈로 찍은 사진인데 광각렌즈의 특성상 종탑 상층부가 1차 수정을 했음에도 왜곡이 남아 있다.


두오모 통합권으로 구매를 한 경우는 별도의 티켓 구매가 필요 없으니 두오모 통합권을 추천드린다. 쿠폴라 예약도 인터넷으로 한꺼번에 해결되기 때문.

세례당 입구 출입문의 위세가 대단하다. 성경의 주요 장면을 묘사한 문을 3개 만들었는데 남쪽 문은 안드레아 피사노가 제작하였고 북쪽과 동쪽 문은 로렌조 기베르티가 제작하였다. 입구를 들어가서 오른쪽에 세례당 본관이 있었으니 북쪽 문으로 들어가고 남쪽 문으로 나온 것. 그렇다면 사진의 이문도 기베르티가 제작한 문. 출구 쪽은 나오면서 뒤돌아서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래저래 피사노는 의문의 1패(? ^^).


기베르티가 제작한 문을 보고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Porta del Paradiso)’라고 불러주면서 천국의 문이 되었다. 그전엔 하나의 몸짓? ㅎㅎ 그리고 천국의 문이 동쪽에 있으면서 닫혀 있는 의미가 묘(妙)하다. 단테의 신곡에 천국은 하늘에서 빛이 내리고 빛으로 가득하다고 되어 있으니 새벽 먼동에 어둠이 걷히고 아침의 태양이 힘차게 오르는 동쪽이 천국이라는 의미도 되고 항상 닫혀 있으니 아무나 출입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문도 아니라는 의미겠거니... 어쨌거나 이 문 하나 만드는데 28년이 걸렸으니 한번 살펴보자.

구약의 주요 장면 10개를 묘사했는데 기베르티 본인의 얼굴을 새겨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혼자 넣기 미안했는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분도 같이 넣었다. 그래도 일반적인 예술가들은 저렇게 뻔뻔하게 한가운데 본인의 얼굴을 넣지는 않는데 기베르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아마도 이후에 브루넬레스키가 공동작업을 하지 못한다고 했던 것도 그 때문? ㅋㅋ

10가지 장면을 다 살피자니 지루하고 그냥 넘어가자니 허전하다. 그래서 간략히 두 장면만 살펴본다. 위의 장면은 성경의 첫 번째 장면인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를 묘사하고 있고 그 아래 장면은 노아의 방주. 술 취한 노아의 모습인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도 등장한다. 10톤이 넘는 청동을 녹여서 문을 제작하고 그걸 조각했으니 그 열정과 정성이 놀랍다.

CC BY Kandi & Saiko SA Lincense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lorence_Baptistery

왼쪽 문은 1329년에 안드레아 피사노가 제작한 청동문으로 처음 동쪽 문에 설치되었다가 지금 자리로 옮겨졌다. 오른쪽 문은 기베르티가 제작한 청동문이다. 1401년 흑사병 등 갖은 재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음을 축하하며 봉헌되는 청동문 제작 경합을 했는데 마지막 결선에 부르넬레스키와 기베르티 2명이 남는다. 심사위원단은 한 명을 결정하지 않고 공동작업을 하라고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 받은 부르넬레스키는 그렇게는 못한다며 로마로 떠나고 21살의 기베르티가 홀로 작업하여 완성한 첫 작품.

입구에 들어서니 천정과 벽면을 꽉 채운 작품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비잔틴 양식이며 또 다른 표현으로 <프로토-르네상스>라고 최초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피렌체 최초의 건축물이고 르네상스 초기 작품이라 중세 말기 동방 그리스 정교회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동로마 제국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대거 피렌체로 옮겨오면서 르네상스 전성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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