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촌자 Oct 05. 2020

북치는 소년과 기도하는 어머니

메사 아치,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 캐년 랜즈 국립공원

LA 시각 새벽 3시 30분. 알람이 울리자마자 대충 세수를 하고 캠핑카 연결관을 분리하고 여명이 시작되기도 전 깜깜한 밤길을 1시간을 달린다.

헤드램프를 켜고 오솔길을 지나 메사 아치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4시 50분. 그런데 이미 좋은 자리는 사진 동호회에서 오셨는지 이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일출을 찍을 수 있는 자리는 제일 왼쪽에 딱 하나 남았다. 

운 좋게 얻게 된 소중한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 붉게 물든 아침 햇살과 그것을 받아주는 차디찬 바위가 있어 완성된 한 편의 드라마. 


그런데 단지 색감적 드라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서 사진기 한대는 타임랩스 걸어놓고 여기저기 스케치를 하러 다녀본다. 

비디오 촬영하고 있던 애들 엄마가 “저기 북치는 소년과 기도하는 엄마 바위 있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보니 과연 그렇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넓게 펼쳐진 갈라진 대지는 전쟁터 같고 그곳에서 북을 치며 응원하는 소년과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전면에 펼쳐진 갈라진 땅 캐년 랜드.

아마도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들이 살아온 길이 생각이 나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주고 응원해준 친구들과 지칠 때 기댈 곳이 되어주고 지금도 가족을 위한 기도를 아끼지 않는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마침 바로 뒤쪽 산너머에서 올라온 태양은 산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준다. 이건 또 다른 한 편의 드라마. 

가끔 이런 감동은 삶에 충분한 힐링이 된다. 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행복해 보였다. 


메사 아치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치는 산 아래쪽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다. 

해가 뜨고 난 이후의 메사 아치는 감동이 없다. 만약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면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은 꼭 아침에 해뜨기 전에 가시라. 해뜨기 전의 분주함에 대하여 충분히 보상을 받고도 남을 만큼의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메사 아치 일출의 감동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캐년 랜즈를 즐겨볼 시간.


지도에서 보듯 캐년 랜즈는 3개의 지역으로 나눠지는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와 모레 들러볼 니들즈 지역, 그리고 오프로드 차량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매이즈(미로) 지역. 니들즈도 절반만 일반 승용차로 진입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오프로드 차량이어야 가능한 지역이라 다 볼 수는 없다.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 지역은 하늘 위에 있는 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거대한 메사 위에 도로를 건설한 덕분에 이토록 편하게 구경을 한다. 저 멀리 남동쪽으로 바위들이 삐죽삐죽 올라와 있는 니들즈가 보인다.

일단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그랜드 뷰 전망대로 이동. 해 뜨는 쪽을 바라보니 콜로라도 강과 화이트 림이 거대한 공룡 발자국 모양을 하고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주변부가 하얀 돌로 이루어진 화이트 림까지 고도 차이가 1200피트, 366미터. 하지만 사진으로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높이가 1250피트니까 고도 차이는 거의 비슷하여 어지러울 만도 한데 땅이 워낙 넓어서 그런지 어지럼이 없다. 

공룡 발자국처럼 생긴 캐년 안에는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의 기둥 들처럼 늘어서 있는데 저게 저렇게 보여도 화이트 림에서 바닥까지만 1000피트, 305미터라고 하니 화이트 림에서 바닥을 바라보는 전경이 더 아찔하지 싶다. 아쉽게도 저곳은 일일 허가증을 받아서 오프로드 차량으로만 진입이 가능하다. 

까마득한 절벽 위 낭떠러지를 무심하게 걸어왔다. 

저곳에서 고프로 들고 360도 뷰 찍는다고 한 바퀴 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다시는 이런 360도 돌리기는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한다. 

렌즈를 살짝 당겨보니 바위 위에서 사람들이 꼬물거린다. 이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을 찾아가는 마음. 저곳이 그랜드 뷰의 결정판이라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동작 빠른 애들 엄마. 벌써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낭떠러지 끝에서 즐기는 광활함의 끝

벼랑 끝 바위 틈새에서 독야청청 자라고 있는 유타 쥬니퍼 나무.

남서쪽으로 펼쳐진 더 메이즈 지역. 오프로드 차량이 없으면 출입조차 할 수 없다고 하니 그냥 사진으로 대신한다.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와스(Waas) 산 봉우리가 그림을 만들어준다. 고맙구로.

이 곳 지형에 유난히 많은 땅이 갈라진 캐년들. 그중에서 콜로라도 강이 흐르는 동쪽과 그린 강이 흐르는 서쪽 땅 갈라짐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이동한다.

눈 덮인 와스 산을 배경으로 버크 캐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쪽 화이트 림. 중간에 살짝 콜로라도 강이 보인다.

메이즈를 배경으로 한 서쪽 화이트 림. 강이름이 그린이 뭐냐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그야말로 녹색이다. 그 옛날 저 물을 어떻게 마셨을까 싶지만 인디언들에겐 그들만의 정수 비법이 있었을게다. 사막에 물이 없어서 문제지 물만 있다면 마실 수 있도록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다른 지역에 비해 몸집이 작은, 그래서 더 귀여운 다람쥐가 사진을 찍는 내내 우리를 따라다닌다. 주머니에 과자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줄텐데 그게 없어 미안하다. 

안내판을 살펴보니 클레오파트라 의자 바위라는 표시가 있다. 광학줌으로 당기고 디지털 줌으로 살짝 잘라내고 보니 요렇게 생긴 바위. 그런데 클레오파트라가 거기서 왜 나와?

By Jean-Baptiste Regnault -  Public Domain

안토니우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전한 후 자신과 아들이 로마로 끌려갈 것을 염려하여 아들은 도망 보내고 자신은 뱀의 독으로 자살을 선택한 상황을 그린 그림. 서양 사람들 머릿속에는 그림의 이런 구도가 각인되어 있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바위를 보고 어찌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떠올리냔 말이지.

쉐이퍼 캐년으로 이동하니 축구장 크기만 한 공터가 있어 애들 엄마한테 손을 들라고 했더니 멀리 서 있던 미국 할배들도 손을 들며 함께 즐겨주신다. 덕분에 즐거운 추억 사진을 얻었다. 

쉐이퍼 캐년 귀퉁이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던 레이븐(Raven). 까마귀의 일종인데 크로우와는 달리 지능이 좋고 영리하여 북극을 제외하고는 그 지역의 텃새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북유럽, 북아시아, 북미의 원주민들에겐 영적인 존재 즉 신으로 모셨다. 고구려 국내성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새도 까마귀.

쉐이퍼(Shafer)라는 단어의 어원이 목동(shephard)에서 유래했으니까 아마도 이곳 메사 지역에서 동물을 키웠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인디언들이 닦아 놓은 길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콜로라도 강에서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서였지 싶다. 

이후 이 지역에서 우라늄이 발견되어 한창 채굴작업을 할 때 이 길을 이용했는데 이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채굴작업은 중단되고 일일 허가증을 받은 캠퍼들만 이 길을 따라 화이트 림으로 내려가서 야생을 즐기고 있다. 화이트 림 근처의 오프로드 차량들이 보인다.

쉐이퍼 캐년에서 얼마 멀지 않은 데드 호스(dead horse) 포인트. 국립공원이 아니라 주립공원이고 그래서 입장료 $30불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고원이지만 평원이기도 한 이곳 메사 플라토(높고 평평한 대지)에 야생말들이 있었고 말 사냥꾼들은 그들을 이쪽 계곡으로 몰아서 포획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잡혀서 길들여지기를 거부한 놈들이 있어 이곳 막다른 지점에서 추락했다는 얘기. 그렇다면 아까 쉐이퍼 캐년에서 키우던 동물은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싶다.  

말들이 떨어져 죽은 곳에 말발굽처럼 휘어진 강이 흐르는 것 또한 아이러니. 


참고로 2,3백만 년 전 북아메리카에 있던 말들은 13,000년 전에 멸종했고 이 곳 야생마들은 1519년 스페인 정복군이 아메리카로 왔을 때 유럽에서 가지고 온 말의 후손들.

아득히 멀리 보이는 캐년 랜즈 니들즈 지역. 이곳에서 불과 12마일 떨어진 곳이지만 차로 이동하는데만 2시간. 그래서 내일 일정에 포함하지는 못하고 모압에서 하루 더 머물고 니들즈로 이동한다. 

나오는 길에 만난 유타 쥬니퍼 나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위가 깨어지지 않을 만큼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렸다. 멋지다. 

https://www.youtube.com/watch?v=fHCOuKijIW0&feature=emb_logo

매거진의 이전글 휘어진 바위와 바닷속 정취의 협주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