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들과 아빠, 둘만의 일본 여행
아무리 멋지고 좋은 곳에 있더라도
저는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네요.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é)의
<Home> 노래 가사처럼요.
지금 편지를 쓰면서 노래를 듣고 있는데
제 마음과 같아서 따라 부르게 되네요.
"Let me go home~~" 하면서요.
한울이만 잠들어 있지 않았으면
코인노래방에서 부르는 것처럼
목청 높여 부르며 음악에 심취했을 텐데...
마음을 좀 차분히 가라앉혀야겠네요.
여하튼 많이 보고 싶다는 말이에요!
드디어 도쿄 디즈니랜드에 다녀왔어요.
한울이와 도쿄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더라고요.
한울이도 저도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너무 고생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안 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어요.
다행히 사람도 엄청 많진 않았고
구름이 껴서 돌아다니기에도 괜찮았어요.
아쉽게도 둘 다 체력이 버티질 못해서
늦은 오후 즈음에는 돌아왔지만요.
그래도 충분히 즐겨서 만족했답니다.
제가 놀랐던 점 중 하나는 놀이기구나
체험물들의 사실감이 상당히 높더라고요.
가짜인 걸 알지만 진짜 같은 현실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이요.
처음에는 '캐리비언의해적'이라는
놀이기구를 처음으로 탔어요.
어두운 동굴 속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가는 놀이기구였어요.
동굴 안에 밀랍 인형들을 꾸며놨는데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곳들은
꼼꼼하게 마감처리를 해둔 것은 물론이고
밀랍 인형들도 실재처럼 정교하더라고요.
오죽하면 한울이가 인형들 보고
"진짜 사람이야?"라고 물을 정도였어요.
국내에 자주 가는 놀이공원들은
앞에만 그럴듯하게 꾸며놓고 뒤에는
기계장치가 훤히 드러나 있거든요.
그런 걸 보면 현실감이 확 깨지더라고요.
디즈니랜드는 다르더라고요.
여기서 디테일의 중요성을 또 느끼네요.
또 하나 놀랐던 점은 일본이라서 그런지
코스튬 의상을 입고 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관람객인지 직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제대로 된 코스튬을 갖춰 입고 왔어요.
라푼젤, 엘사, 버즈 같은 캐릭터들이
놀이공원 안에 수없이 많이 돌아다녀요!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교복 정도였는데
일본 사람들은 정말 애니에 진심이더군요.
그런 사람들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어요.
다음에 일본 여행올 때에는
저도 코스튬을 하나 맞춰서 올까 봐요.
그래야 일본을 제대로 즐길 것 같네요.
당신도... 같이 해줄 거죠?
디즈니랜드에서 한울이가 사고를 쳤어요.
심각한 건 아니고 좀 재밌는 사고예요.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체험물이 있는데
지도를 들고 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서
하나씩 장소를 찾아보는 활동이에요.
섬 안에 여러 장소 중에
물을 내뿜는 해골바위가 있었어요.
해골바위가 물을 계속 뿜는 건 아니고
간헐적으로 찍- 찍- 침을 뱉듯이
입과 눈에서 물을 뱉어 내더라고요.
한울이는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해골바위 앞에 서서 한참을
물 피하며 재밌게 놀더라고요.
햇빛이 강해져서 한울이한테
선글라스를 꺼내서 씌워줬는데
한울이가 안경집을 보더니 갑자기
해골바위를 향해 안경집을 날린 거예요.
닌자가 표창 던지듯이 말이죠.
물 피하기 놀이에 몰입해 있던 한울이는
'나쁜 해골바위야 내 표창을 받아랏!'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안경집이 해골바위의 눈으로
쏙 들어가 버린 거 있죠.
닌자박물관에서 표창 던지기 대회 3등 했던
그 실력이 어디 가겠어요... 휴...
순간 한울이도 놀라고 저도 놀라서
해골바위 앞을 서성이고 있으니
직원들이 와서 무슨 일인지 묻더라고요.
그래서 자초지종을 얘기했죠.
직원들 3명이 모여서 상의를 하더니
자기들이 안경집을 꺼내 주기는 어렵고
키 큰 직원을 불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무전기로 여기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막 설명을 했어요.
상황이 재밌어서 한울이를 놀렸답니다.
아빠 : "서한울 너 이제 유명해지겠다"
한울 : "왜?"
아빠 : "지금 선생님들이 한국에서 온
서한울 어린이가 해골바위에 안경집을
표창처럼 날려서 쏙 들어가 버렸다고
다른 선생님들한테 알려주고 있거든. 킥킥킥"
한울 : "윽..."
한울 : "근데 선생님들이 한울이 이름 알아?"
아빠 : "알지! 입장할 때 바코드로 찍었잖아"
한울 : "헉..."
조금 기다리니 정말 키가 큰 직원이
긴 막대기까지 들고 걸어오더라고요.
해골바위가 뱉고 있는 물부터 끄고
키 큰 직원은 해골바위 안에 몸을 넣고
낑낑- 힘들게 안경집을 꺼내줬어요.
그 직원은 손과 옷과 얼굴에
검은색 때가 잔뜩 묻었더라고요.
너무 고맙고 미안했답니다.
한울이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던지
평소에 시켜도 안 하던 인사도 했네요.
"아리가또고자이마스"라고 일본말로요.
한울이가 수줍음이 좀 많기는 한데
해야 될 때에는 또 잘하더라고요.
한울이는 섬 밖을 나와서도
"아... 안경집이 어떻게 딱 들어갔지?"
혼잣말로 되뇌더라고요.
본인도 일이 그렇게 될 줄 몰랐나 봐요.
이번 디즈니랜드는 다른 걸 다 떠나서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남들 다 하는 경험보다는
이런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이
더 재밌고 기억에도 오래 남으니까요.
마지막 저녁은 야끼니꾸를 먹었답니다.
며칠 전에 숯불화로가 나오는 식당에서
한울이가 계속 위험한 장난을 쳐서
제가 화냈다고 했던 그곳에 다시 갔어요.
한울이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숯불화로 나온 식당을 콕 집어 말하더라고요.
한울이가 숯불 가지고 또 장난칠까 봐
저는 정말 정말 다시 가기 싫은 곳이었어요.
그런데 한울이가 가고 싶다니 별 수 있나요.
대신 장난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어요.
아빠 : "숯불 가지고 또 장난칠 거야?"
한울 : "에이~ 안 하지!"
아빠 : "아빠 말 잘 들을 거야?"
한울 : "그럼~ 잘 듣지~"
아빠 : "아빠랑 약속하는 거다!"
아빠 : "위험한 행동 하지 않기로"
한울 : "알겠어. 약속!"
한울이가 약속은 잘 지키려 하더라고요.
물론 처음 숯불이 나왔을 때에는
또 흥분해서 위험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잘 타일러서 진정시켰어요.
지난번에 야끼니꾸 처음 먹었을 때에는
기름기 많은 고기부터 구웠더니
불이 확~ 타올라서 정말 위험했었거든요.
이번에는 기름기 없는 고기부터 구웠더니
불이 화로 안에 잔잔하게 머물더라고요.
저는 안심했는데 한울이는 실망했나 봐요.
"아빠~ 왜 불이 안 타올라?"
"왜 이번에는 불이 약하지?"라고 물으며
계속 화로를 쳐다 보더라고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처럼요.
다행히 이번에는 별일 없이 지나갔어요.
한울이도 지난번처럼 장난치지 않았고
덕분에 저도 화낼 일이 없었네요.
둘 다 맛있는 음식 배불리 먹고 나왔답니다.
밤에 잠들기 전에 한울이한테 농담으로
하루 더 놀고 가자고 얘기해 봤어요.
아빠 : "우리 하루 더 머물고 갈까?"
한울 : "근데 안 될걸?"
한울 : "비행기표 예매해 놨잖아"
아빠 : (당황..) "비행기표 바꿀 수 있어~"
한울 : "에이~ 그럼 숙소는?"
아빠 : "하루 더 예약하면 되지"
한울 : "흠... 아냐... 그냥 내일 가자"
아빠 : "그러자. 아빠도 이젠 가고 싶어"
아빠 : "그러면 도쿄한테 인사하고 자자"
한울 & 아빠 : "안녕. 도쿄. 재밌었어"
한울이는 현실적인 이유를 대면서
완곡히 거절을 하더라고요.
한울이도 집에 가고 싶은가 봐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 정도면 충분히 여행한 것 같아요.
정말 2주간 하얗게 불태웠네요.
오늘 밤만 자고 이제 집으로 갈게요.
당신이 있는 그곳으로요.
내일 만나요.
그럼 이만.
임무 완수를 앞둔 남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