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휴직 기간 동안 아들과의 둘만의 여행을
아내에게 논문 준비 시간을 주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부족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와 같은
물질적인 준비가 아니라,
여행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 낼지에 대한
여행자로서 마음가짐에 대한 준비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도 하나였다.
여행 중 그의 임무는 항상 분명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여행자를 비교하면서
여행자들에게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알랭 드 보통은 프로방스 여행 중
기대와 다른 실망감을 경험했다.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동부 지역으로
풍경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유명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프로방스에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알랭 드 보통은
프로방스의 한 도시인 '아를'을 사랑한 미술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렸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프로방스 지역의
상징적인 풍경으로 사이프러스 나무를 떠올린다.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된 이유는
반 고흐 작품의 영향이 크다고 평가했다.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는
프로방스에서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반 고흐가 평범한 대상인 사이프러스를
한 지역의 상징을 만들 수 있던 이유는
과감한 생략과 과장적인 표현 덕분이었다.
그는 특히 '사이프러스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방식'에 매료되었는데,
이 대상의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왜곡, 생략, 대체 등과 같은
자의적인 해석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반 고흐는 위대한 작가라면 독자들에게
세상의 어떤 측면들을 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여행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여행을 통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아름다움에
눈 뜨게 해 줄 수 있다면 말이다.
여기저기 유명하다는 곳들을
겉핥기식으로 둘러보는 여행 방식으로는
어떤 대상에 대한 특별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한 대상을 마주하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온전히 바라볼 때
비로소 특별한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가보면 많은 여행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텨를 누른다.
또한 여행지와 관련된 기념품을 사기도 하고
남몰래 건물에 자기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
이 같은 행동들은 대부분 각자가 마주한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순간 혹은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알랭 드 보통 역시 여행을 다니면서
이와 같은 충동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라며.
알랭 드 보통은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그 순간에도 19세기 영국 작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을 떠올렸다.
(어떤 순간마다 영감을 주는 인물을 떠올리는
알랭 드 보통은 정말 보통이 아니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존 러스킨은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던 인물이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에 대해
존 러스킨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의식하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름다움의 요소들에 대해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써 묘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아름다움을 의도적으로 파악할수록
우리 기억 속에서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스케치나 글로 대상을 묘사를 하려면
그 대상을 세세하게 바라보면서
은연중에 생김새에 대한 질문을 하고
또 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일례로 아름다운 나무를 묘사하려면
'줄기는 뿌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줄기에 매달린 잎의 모양은 어떤지?'
'줄기는 어떻게 뻗어 나가는지?'
와 같은 질문들이 떠오르게 되고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 대상을 더 상세하게 바라보게 된다.
러스킨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놀랐던 점은
'아름다움에도 이유가 있다'라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아~ 좋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왜 좋았는지?'라는 질문 앞에서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러스킨은 그림 실력이 형편없거나
글 솜씨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스케치와 말 그림을 통한 묘사를 권장했다.
그 이유는 그림이나 글 실력보다는
아름다움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작업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음 여행지는 '전주'로 정했다.
이번 여행도 아들과 둘이서 다녀올 예정이다.
일정은 1주일 정도로 계획 중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알랭 드 보통에게서 배운
여행의 기술 세 가지를 반영해 보고자 한다.
1. 나만의 질문을 가져가기
2. 과감하게 생략하고 과장하기
3.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기
당연히 이 모두를 완벽하게
소화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관점이 더해진
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된다.
먼저, 나만의 질문 떠올리기
이번 전주 여행을 통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두 가지 질문을 정했다.
(질문 1) 전주는 학교 외 영역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으로 끌어들이는가?
(질문 2) 전주는 자연환경과 역사 유적 같은
공유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는가?
두 가지 질문을 모두 은연중에
주의 깊게 살펴보는 부분이었다.
첫 질문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지역의 교육 인프라에 대한 관심 때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내 석사 논문 주제였다.
그리고 과감하게 생략하고 과장하기
위 질문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방문 장소와 활동 테마도 선별하고 있다.
아래 5곳은 가급적 방문해 볼 예정이다.
- 국립무형유산원
- 전주자연생태관
- 전북어린이창의체험관
- 전주동물원&드림랜드
- 기타 지역별 작은 도서관
전주 여행하면 '한옥'과 '음식'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지만 널리 알려진 상투적인 관광지보다는
아이와 전주를 여행했을 때에 발견할 수 있는
전주의 숨어 있는 매력 찾기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반 고흐가 프로방스의 사이프러스를
발견해 낸 것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비슷하게 흉내라도 한 번 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기
이번 여행에서는 러스킨의 제안대로
내가 마주한 감동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스케치와 말 그림*을 활용해 보고자 한다.
(*그림을 그리듯 언어로 표현하는 방식을 의미)
내게는 생소한 방식이라 잘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의 글이 나의 경험이 더 풍성해질 것만 같아서.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 된 것 같으니
이제 다시 또 떠나보자!
육아휴직의 자유를 즐기러!!
아들과 새로운 추억을 쌓으러!!!
더 나은 여행의 기술을 실천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