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꾸는 이에게 따뜻한 응원 한 마디!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벌써 며칠째다. 휴대폰에 카톡이 와있었다. "여보~ 미안한데 새벽에 일어나면 내 논문 좀 봐줘!" 카톡이 온 시간은 새벽 3시 30분. 아내는 그 시간까지 논문을 쓰다가 쓰러지듯 잠들었을 것이다. 더 자고 싶었지만 밤늦게까지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며 억지로 정신을 깨웠다. 거실로 나와 믹스커피 두 봉지를 뜯어 컵에 넣고 따스한 물을 부었다. 아직 바깥은 어두컴컴했다. 거실등은 켜지 않았다. 혹여나 잠든 아내가 깰까 봐.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수저를 집어 들고 대충 휘휘 커피물을 저었다. 그러던 중에 하품이 크게 두 번이나 나왔다. 졸음에 쫓기듯 서둘러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호로록. 아직 녹지 않은 커피 알갱이가 씹혀 쓴 맛이 입 안에 퍼졌다. 그 뒤로 뜨뜻하고 달달한 믹스커피가 식도를 따라 흘러 빈 속에 담겼다. 몸 안에 카페인과 당이 들어가니 비로소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컴퓨터방에 들어가 보니 모니터에는 아내가 작업하던 문서가 열려 있었다. 《공여국 원조 품질이 원조효과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제목 아래로 정책학박사 학위논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아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내 이름 끝자리에서 마우스 커서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188페이지 문서 하나. 아내는 이 문서를 쓰려고 지난 1년을 밤낮없이 공부했다. 잠이 부족하니 온갖 질병을 달고 살았고, 무엇보다 아들과 함께 놀이하고 같이 잠드는 기쁨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이틀 뒤에 논문을 제출하고 나면, 장장 10년 동안의 박사과정은 끝이 난다. 아내는 끝을 앞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남은 시간과 기운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은 이유였다. 아내가 쓴 논문을 서론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이미 커피잔은 바닥을 드러나 있었다.
아내와는 2012년,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제 CSR* 콘퍼런스」에서 처음 만났다(*CSR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칭하는 영어 약어). 당시 나는 학부 4학년, 아내는 대학원 석사를 막 시작했다. 우린 20대 초중반의 나이였고, 현실적인 상황보다는 미래의 꿈을 더 많이 얘기하던 청춘이었다. 나는 지구의 환경 문제와 이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기업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아내는 저소득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위협받고 있는 아이와 여성을 위한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내의 꿈을 듣고는 이 사람이 가고자 하는 길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때는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꿈이 있었지만 돈은 없었던 우리는 1년 뒤 단칸방 월세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돈'으로 대변되는 현실에 거세게 부딪쳤다. 젊은 시절의 꿈을 손에 꼭 쥐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실에 부딪칠수록 꿈은 깨어져 조각이 되었고, 꿈 조각들은 바스러져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 흩어지고 희미해졌다. 미국 유학을 준비했었지만, 그러려면 아내가 최소 5년 이상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아내와 나의 꿈, 둘 다 바라볼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꿈을 접어두었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직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꿈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돈과 명성이 들어왔다. 현실에 맞서 아내의 꿈을 지켜주기에 충분했다. 비록 나는 미래의 꿈을 놓았지만, 평생 사랑할 사람을 만났고, 또 그런 아내의 꿈은 지켜줄 수 있게 되었으니 나름 합리적인 투자라 여겼다.
그런데 막상 아내의 꿈을 가로막은 건 돈이 아닌 임신과 육아였다. 아내는 임신 초기부터 유산 위험이 있어서 모든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하던 중요한 때였다. 그 후로 아이를 낳고 홀로 키우느라 4년 동안 공부를 시작하지 못했다. 아내가 학위를 마치겠다는 의지는 있었으나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말로는 아내의 꿈을 응원한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4년간의 공백이 쉽게 메워지는 것도 아니고, 조금 열심히 하는 정도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옆에서 지켜본 그 이상으로 불안하고 좌절하는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논문이 잘 안 풀릴 때면 아내는 내 앞에서 펑펑 울었다. 자주 울었다. 툭 건들면 울었다. 울면서 사실 자기는 박사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며 자책했다. 그리고 그런 자기를 기약 없이 믿어주는 내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아내는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잠을 줄여가며 매일 조금씩 논문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나갔다. 분석 결과가 없는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학회에 나가 발표를 했다.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고 학계 전문가들에게 신랄한 비판과 피드백을 받고자 했다. 누군가에게 비판받는 일이 마음에 상처가 되겠지만, 박사학위를 포기하게 되는 것보다는 덜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내는 토론자들의 조언과 비판을 토씨하나 놓치지 않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뼈 아픈 비판들을 하나씩 소화해 가며 논문에 녹여 넣었다. 1년 전 아내는 사실 내가 봐도 연구의 기본마저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왜 이 연구가 지금 이 시점에 중요한지' 굳이 힘주어 얘기하지 않아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설득되게 만들 줄 안다. 말에 군더더기는 없어졌고, 몇 수 앞을 얘기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아내 논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어쩌면 아내가 머지않은 미래에 저명한 학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아내는 이번 달에 박사학위를 받는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로써 20대 시절 가졌던 꿈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될 것 같다. '돈'과 '육아' 그리고 '나이'라는 현실에 부딪치며, 아내는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기도 했다. 꿈을 이룰 능력도 없으면서 헛되이 시간만 보내게 되는 건 아닌지 늘 불안감을 안고 지냈다. 돌이켜 보니 역량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아내는 박사로 인정받을 만한 능력을 이미 갖춘 사람이었다. 그저 불안함을 견디며 부족했던 걸 하나씩 쌓아나갈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어느새 아침 9시가 되었다. 침대방에서 아내와 아들이 꺄르르꺄르르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저들 품에 껴서 지친 몸을 충전하고 싶었다. 내리 4시간 동안 논문을 보느라 체력이 바닥나려던 참이었다. 논문을 읽으며 달아둔 의견만 130여 개가 넘었다. 그렇지만 모처럼 아들과 장난치는 아내에게 온전히 시간을 주고 싶었다. 아내는 오늘도 바로 준비하고 도서관으로 가야 할 테니까. 얼마 후 아내가 컴퓨터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언제 일어났어? 내 논문 봐 준거야? 고마워"라고. 나도 짧게 답했다. "당신~ 고생 많았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아내 등을 세 번 토닥였다.
어쩌면 꿈에 다가서는 사람들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변함없는 응원을 받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만큼 꿈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면 꿈에 다가서는 일은 결국 미래와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불안함을 오랫동안 견디는 부분만 남게 된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는 사람은 꿈에 도달할 동안 그 불안함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내 주변에는 현실보다 꿈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는 삶을 살아내고 싶어졌다. 다른 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싶은 걸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