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이익을 좇는 리더
"앞으로 우리 회사는 미국 시장 공략을 최우선순위로 설정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 CEO가 예정에 없던 경영회의를 소집했어요. 그리고는 앞으로 미국 시장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죠. 갑작스레 등장한 '미국'이라는 키워드에 리더들은 당황했어요. 지난 1년간 동남아 시장에 집중하며 성과를 내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하지만 CEO의 말 한마디에 회사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전면 수정됐고, 이에 따라 모든 실행 계획도 변경되어야 했어요. 시장 전략, 영업망 구축, 파트너 확보, 제품 개발, 인력 배치까지 전방위적인 변화가 필요했죠.
CEO가 우선순위를 변경한 이유는 투자 유치 때문이었어요. 미국 시장에 집중하는 모습이 투자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일 거라 판단한 거죠. 동남아 시장은 진입이 쉬워 빠른 매출이 가능하지만, 성장 잠재력은 제한적이었어요. 반면 미국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지만, 일단 뚫기만 하면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이었죠. CEO는 당장 매출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미국 진출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더 큰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유효한 것처럼 보였어요. 회사가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으니까요.
문제는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성과를 실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미국은 몇 달 만에 결과를 낼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거든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시나리오였죠.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점차 높아졌고, 회사는 실적 압박을 받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내부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남아 시장에서도 매출이 하락하기 시작했어요. 미국에 집중하느라 기존 시장 대응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죠.
결국 CEO는 다시 동남아 시장에 집중하자는 결정을 내렸어요. 투자 유치 전후로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우선순위가 뒤집힌 셈이죠. 하지만 이미 동남아 시장은 망가진 상태였어요. 제품을 기다리던 고객도, 협업하던 파트너도 대부분 떠나버렸고요. 사실상 다시 처음부터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투자 유치 전에 1년여간 공들였던 동남아 시장 기반과 이후 6개월간 준비했던 미국 시장 기반이 모두 무의미해져 버렸어요. 우선순위 변경으로 회사는 투자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1년 6개월간 사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말았죠.
우선순위 설정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해요. 앞에서 언급한 사례처럼 리더가 성급하게 우선순위를 변경하게 되면 새로운 성과 창출은커녕 기존에 축적한 조직 역량마저 무너뜨릴 수도 있어요.
우선순위 설정은 리더의 핵심 역할 중 하나예요. 리더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실무자의 시간과 자원 배분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조직의 성과가 만들어지니까요. 리더가 상황에 맞게 우선순위를 설정하면 높은 수준의 조직 성과를 유지할 수 있어요.
우선순위 설정과 관련하여 리더들이 참고할 만한 판단 기준 세 가지를 공유드리고자 해요.
첫째, 논리적으로 완벽한 전략보다는 실행 가능한 전략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두세요. 아무리 정교한 전략도 조직이 실행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오히려 허점이 있더라도 실행 가능한 전략이 더 나은 성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를 감안하면 우선순위 조정에 앞서 조직의 역량과 가용 자원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둘째, 우선순위 변경은 가급적 보수적으로 진행하세요. 조직 차원의 우선순위 전환은 생각보다 큰 시간 비용을 치르는 작업이에요. 새로운 우선순위가 실무자들의 개별 업무에까지 적용되기 위해서는 이전 업무 정리, 신규 업무 파악, 목표와 계획 수정, 유관 부서 업무 조율 등 수많은 작업이 수반되어야 해요. 대기업에서는 우선순위 반영에만 2~3개월이 걸리기도 하더라고요. 아까운 시간이죠. 조직의 지향점과 기존 우선순위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기존 우선순위를 유지하는 편이 성과 창출에 유리할 수 있어요.
셋째, 외부와 내부에 전달하는 우선순위를 일치시키세요. 간혹 회사 외부와 내부에 우선순위를 다르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어요. 앞의 사례로 설명하면 투자자들에게는 미국 시장 진출을 강조하고, 내부 직원들에게는 동남아 시장을 강조하는 식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실무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이 같은 혼란은 불필요한 업무 지연과 역량 분산으로 이어지기 쉽고, 자연스럽게 성과에 대한 집중도 역시 떨어지게 될 거예요.
놀라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살펴보면, 트렌드를 쫓아가는 사람보다는,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더 많다고 느껴져요. 그만큼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축적의 힘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조직에서의 우선순위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눈앞의 기대감에 흔들려 우선순위를 수시로 바꾸기 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방향을 믿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리더가 결국 더 단단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