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동화_2. 도둑갈매기의 변명
젠투펭귄과 도둑갈매기가 외나무다리..아니 눈길에서 만났다. 서로 낯이 익은 듯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눈싸움의 끝에 도둑갈매기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가려는 도둑갈매기를 펭귄이 불러 세웠다.
"너 나 알지?"
도둑갈매기는 대답없이 자리를 피했다. 펭귄이 대뜸 달려들어 도둑갈매기를 쫒았다. 덩치가 큰 펭귄이 달려들자 깜짝놀란 도둑갈매기가 부리나케 날개를 펴 날아올랐다. 변명도 없이 도망치듯 날아오른 도둑갈매기는 자신의 둥지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왠지 입장이 뒤바뀐 둘은 무슨 관계일까. 둘의 원수같은 관계는 한달전부터 시작되었다.
10월의 어느날. 펭귄들이 삼삼오오 열을지어 번식지에 모여있었다. 일부는 이미 자리를 잡고 돌을모으고 있고, 뒤늦게 번식지로 돌아온 녀석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옆에 있는 다른 펭귄들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일년만에 자기짝을 찾은 펭귄들은 자리를 잡고 돌을 물어다 둥지를 만들었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펭귄들은 번식지 어딘가에 와있을 짝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하늘을 향해 크게 울음소리를 퍼트렸다. 점차 번식지의 모습이 만들어지고 10월 말경에는 대부분의 둥지가 알을 낳았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 11월 말즈음 하늘에서 도둑갈매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펭귄보다 한달쯤 늦게 도착한 도둑갈매기들도 펭귄 번식지의 외곽에서 이끼를 끌어다가 둥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펭귄마을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펭귄의 알과 새끼를 사냥하기 위해서다.
도둑갈매기는 남극의 청소부다. 남극은 먹을것이 부족한 곳이기 때문에, 동물의 사체는 대부분 썩지않고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된다. 펭귄, 새, 물범, 심지어 동족인 도둑갈매기의 사체도 도둑갈매기들이 처리한다. 그러나 이런 사체는 운이 좋은 경우에만 발견할 수 있고 대부분은 바다에서 먹이를 구한다. 남극의 여름에 바다에는 먹이가 풍부하다. 가장 많은 먹이는 크릴. 크릴은 남극에서 사는 대부분의 생물을 먹여살리는 식량이다. 고래도, 펭귄도 이 크릴때문에 남극에서 번식할 수 있다. 도둑갈매기도 크릴을 먹지만, 번식기에는 크릴보다 큰 은색물고기를 주로 먹는다. 그리고, 일부의 도둑갈매기들은 펭귄번식지 주변에 둥지를 만든다. 이녀석들은 다른 도둑갈매기에 비해 덩치가 큰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펭귄 번식지는 수많은 펭귄이 번식한다. 많은 펭귄이 모여있다보니 죽은 펭귄도 많고 부화하지 못한 알이나 굶어죽은 새끼의 사체도 많다. 펭귄번식지 주변에 사는 도둑갈매기는 바다에서보다 쉽게 더 큰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둑갈매기들 중 일부는 직접 펭귄의 알과 새끼를 사냥하기도 한다. 왜? 도둑갈매기도 새끼를 키우고 있고, 새끼에게 가져다줄 먹이를 구해야하기 때문이다. 새끼펭귄의 배속에는 어미펭귄이 물어다 뱉어준 크릴이 한가득 들어있고,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훨씬 큰 보상이 따른다. 그러나 도둑갈매기도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미 펭귄들은 도둑갈매기보다 덩치가 크고, 날카로운 부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다. 도둑갈매기라 할지라도 펭귄에게 물리거나 날개로 맞으면 부상을 당할 수 있다. 그래도 펭귄의 알과 새끼는 그런 위험부담을 무릅쓰고라도 도둑갈매기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먹이원이다. 서론이 길었다. 우리의 두 주인공은 12월 초 펭귄의 번식지에서 만났었다. 그것도 악연으로. 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펭귄은 번식지에 늦게 도착했다. 이미 대부분의 펭귄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난 후이다. 어쩔 수 없이 번식집단의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펭귄은 본능적으로 번식집단의 중심부가 좋은 장소임을 알고있다. 비록 다른 펭귄의 둥지와 가까워 옆둥지의 공격을 받을 수 있지만, 도둑갈매기의 공격을 옆둥지가 막아주기 때문이다. 가장자리는 도둑갈매기의 공격을 항상 방어해야 하는 곳이다. 주변에 도와줄 옆둥지가 적기 때문에 방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한다. 가운데 둥지는 또한 돌을 물어오기 좋다. 가장자리 펭귄들이 번식집단 밖에서 돌을 물어오면 안쪽의 펭귄들은 가장자리 펭귄들의 둥지에서 몰래 하나씩 돌을 뺏어갔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큰 둥지를 만들 수 있다. 눈이오는 날에도 이득을 본다. 가운데 둥지는 옆둥지가 눈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를 아는 노련한 펭귄들은 그래서 일찍 번식지에 노착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늦게 도착한 녀석들은 어쩔 수 없이 가장자리 둥지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늦게 도착한 이 펭귄은 그래도 열심히 돌을 물어다 놓고 둥지를 만들어 짝과 함께 두개의 알을 낳았다. 이제 얼마후면 새끼들이 부화할 것이다. 그때 도둑갈매기들이 둥지 주변으로 다가왔다. 의기양양한 두마리의 도둑갈매기는 홀로 둥지를 지키고 있는 펭귄의 양쪽에서 양동작전을 펼쳤다. 한마리에 시선을 두면 어김없이 다른 녀석이 배 밑으로 부리를 들이밀었다. 막아야한다.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둥지를 벗어날 순 없다. 품고있는 알을 내버려두면 바로 도둑갈매기가 물고갈 것이다. 알만 없다면 둥지를 털고 나가 도둑갈매기를 공격할 수 있을텐데... 지난번 도둑갈매기가 공격할 때는 다행히 짝이 함께 있었다. 공격하는 도둑갈매기를 끝까지 쫒아가 부리와 날개로 공격해 도둑갈매기가 도망가게 했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두 다리에 힘을주고 둥지에서 버티며 도둑갈매기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끈질긴 녀석들은 포기할 줄 모른다. 결국 한녀석에게 집중하고 있을때 배와 다리사이가 노출되고 말았다. 아뿔싸. 의기양양하게 알을 물고 도둑갈매기가 날아 올랐다. 알 하나를 뺏겨 버렸다. 바다에서 돌아올 짝을 볼 낯이 없어졌다. 허탈하다. 언젠가 꼭 복수를 하리라. 펭귄은 다짐했다. 다행히도 나머지 알 하나는 지킬 수 있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새끼가 부화하고 가까스로 도둑갈매기들의 공격을 막으며 새끼를 지켜내고 한달 후. 새끼는 이제 어미만큼 다 자랐다. 더이상 도둑갈매기의 공격에 걱정하지 않을 정도이다. 새끼는 보육원에 들어가 다른 새끼펭귄들과 지내고 있다. 펭귄은 이제야 때가 됬음을 느꼈다. 도둑갈매기들이 주로 쉬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녀석을 만났다. 내 오늘 너를 꼭 혼내주고 말테다! 그러나 날수없는 펭귄이 날아가는 도둑갈매기를 어찌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겁을줘 날려보낸 것에 만족했다.
나는 도둑갈매기다. 그래. 맞다. 나는 펭귄 알과 새끼를 잡아먹는다. 모두들 악당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도 할말은 있다. 저 펭귄이 화내는 이유야 나도 잘 안다. 그치만 나도 새끼를 키우고 있다. 펭귄이 크릴을 잡아먹듯, 나한테는 새끼를 먹이기 위한 먹이가 펭귄일 뿐이다. 근데 왜 나만 머라고 해? 펭귄이 나보다 귀여워서? 음...그건 맞는 말이다. 그래도 할말은 해야겠다. 펭귄들이 이곳에서 계속해서 번식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내 도움도 있다는 것을.
이 동네에만 도둑갈매기가 어림잡아 150쌍이 넘게 살고있다. 번식하지 않는 녀석들까지 포함하면 500마리도 넘는다. 다른 섬까지 포함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거기다 펭귄을 잡아먹는 건 우리만이 아니다. 나보다 덩치큰 남극풀마갈매기도 새끼 펭귄을 잡아먹는다. 이 많은 포식자들이 모두 펭귄알과 새끼를 공격한다면 펭귄마을이 과연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펭귄 번식지에서 펭귄을 잡아먹는 도둑갈매기는 딱 7쌍이다. 열쌍도 안된다. 우리가 얼마나 바쁜지 알려줄까? 시시때때로 이곳을 넘보는 도둑갈매기나 큰풀마갈매기를 우리가 쫒아내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는지 알고 있나? 물론 이곳이 우리 사냥터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이 동네 포식자들이 모두 이곳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쫒아내고 있다. 어찌보면 펭귄들은 우리에게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에게 알과 새끼를 뺏긴 펭귄들은 화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펭귄 무리 전체로 본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일부를 뺏기는 대신 전체적으로는 이득을 보고있다. 이런 부분을 알아달라고 해봤자....이해는 못하겠지?
정 그게 싫다면 황제펭귄처럼 우리도 갈 수 없는 지역으로 들어가 번식하지 그러렴! 나도 이 지역을 포기할 순 없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나는 펭귄마을에 찾아와 펭귄을 잡아먹고, 내 영역을 지키며 살것이다. 여긴 다른 도둑갈매기와 싸워 내가 차지한 내 영역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