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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Jun 21. 2018

미라가 된 아델리펭귄

남극동화_1

안녕? 난 미라가 된 아델리펭귄이야.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


언제쯤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어. 
몇 년 전인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지 이젠 헤아리기도 어려워졌달까. 
우리 엄마 아빠는 수영을 엄청 잘했어. 아. 내가 본건 아니지만, 웨델물범 아줌마가 봤데. 바닷속을 휙휙.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다니는걸. 물속에서 작은 새우와 물고기를 엄청 잘 잡았는데, 그걸 뱃속에 넣어와서 나와 형에게 매일 가져다주는 거야. 난 매일 엄마 아빠가 주는 먹이를 먹고, 자고, 먹고.. 그게 일상이었지. 
아. 가끔은 엄청난 눈바람이 불기도 했는데, 별로 춥진 않았어. 엄마 아빠가 항상 바람을 막아주었거든. 
또 가끔은 무서운 도둑갈매기가 우리를 잡으러 오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동네 형들이 쫒아내 줘서 다행히 잡혀가진 않았어. 며칠에 한 번씩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지긴 했지만..
난 형보단 좀 작았어. 우리 형은 참 멋졌는데… 그 풍성한 털과 울음소리가 끝내줬었지. 엄마 아빠가 주는 밥도 그래서 형이 좀 더 먹긴 했지만, 난 괜찮았어. 형이 먹고 난 뒤에 나도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거든. 언젠가부터 형의 회색 털이 빠지고 흰털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형은 곧 엄마 아빠처럼 변하더라고. 아? 그러고 보니 나도 회색털 아래에서 흰털이 나고 있었던 것 같아. 주변 친구들도 모두 엄마 아빠처럼 변해가고, 하나둘씩 바닷가로 몰려가서 내가 태어난 마을에는 나밖에는 남지 않았어. 가끔 엄마 아빠가 밥을 주러 오긴 했지만. 
어느 날부턴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자꾸자꾸 심한 바람이 계속해서 불었는데, 엄마 아빠가 며칠간 보이지 않는 거야. 멀리서 보니 산 아래 커다란 바위 뒤에 우리 형이 바람을 피하고 있더라고. 나도 그리로 가야겠다 생각해서 작은 발로 조금씩 조금씩 산으로 올라갔어. 다 올라간 곳에는 바람은 별로 안 불었지만, 형이나 친구들은 없었어. 내가 태어난 곳과는 다르게 온통 커다란 바위뿐이었어. 바람이 너무 심해 일단 바람이 그치고 나면 내려가야지 생각하고, 돌 아래 누워 잠을 청했지. 

딱히 추워서 이렇게 된 건 아냐. 배고픈 것도 참을 수 있었어. 어차피 엄마 아빠도 털갈이를 시작해 요즘 먹이를 자주 가져다주지 못했거든. 다 내 실수였어. 이쪽으로 오면 안 되는 거였는데… 돌 사이사이가 깊은 구멍인데, 그만 그사이에 끼어 버렸지머야.. 엄마 아빠는 점프를 잘해서 잘 피해 다니던데, 난 아직 그렇게는 못했거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이렇게 말라가고 있는 거지. 
그래도 괜찮아.. 매일 바다를 볼 수 있으니까. 나도 한 번은 물속을 휙휙 날아보고 싶었는데… 그게 조금 아쉬울 뿐이야. 곧 겨울이 다가오나 봐. 바람이 점점 세지고 있어. 겨울엔 친구들이 보이지 않지만, 하늘이 좋아. 녹색 빛의 띠를 매일 볼 수 있거든. 마치 하늘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아. 그 뒤의 별들은 또 얼마나 멋진데. 

우리 엄마 아빠와 형은 먹이가 많은 바다를 유랑하고 있겠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 

난 여기 이대로 오랫동안 있을 거야. 또 날 보러 와줄래?




가끔씩 남극 동물 관련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올려보고자 합니다. 

반응이 괜찮다면 ^^ 중간중간 연재를....^^


위 동화의 무대는 남극 장보고기지에서 약 30km 떨어진 Inexpressible Island라는 섬입니다. 

이 섬에서 아델리펭귄의 번식지는 해안에 모여 있는데, 펭귄 번식지의 뒤로는 바위 언덕이 있습니다. 해안가는 편평해서 번식지로 이용되기 좋지만, 언덕 위는 큰 바위들이 많아 펭귄이 둥지 장소로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이 섬을 방문했을 때 바위 사이사이에서 말라버린 많은 미라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남극은 추운 사막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온이 워낙 낮고, 습도가 낮아 생물이 죽어도 거의 썩지 않고 미라로 남게 됩니다. 이 섬에는 코끼리해표의 미라도 관찰되는데, 탄소연대측정 결과 최소 1000년 이상이 지났다고 하니, 얼마나 오래 썩지 않고 남아있는지 알 수 있겠죠?

Inexpressible Island 아델리펭귄 번식지. 검게 보이는 것이 아델리펭귄(둥지), 사진 앞쪽으로 바위들이 많은 곳은 둥지가 없다.
바위틈 사이의 많은 아델리펭귄 미라들
코끼리해표 미라. 현재 이 지역에 코끼리해표는 살지 않는다. 최소 1000년 전에 살았던 코끼리해표의 미라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이 섬에서 동화의 주인공처럼 돌 틈에 빠져 죽은 아델리펭귄이 많습니다. 물론 죽고 나서 바람에 날려 돌 틈에 끼었을 수도 있지만, 섬의 높은 지역 돌 틈에서도 미라가 관찰되는 것으로 봐서는 잘못 올라간 펭귄들이 그곳에서 생을 다하고 미라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섬은 바람이 워낙 강해 춥기로 유명합니다. 이름 또한 "Inexpressible"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춥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 펭귄들도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위 뒤에 모여있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다 자란 새끼들은 번식지 주변으로 돌아다니는데, 큰 바위에 잘 못 올라갔다가 돌 틈에 빠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새끼 아델리펭귄들. 오른쪽 사진의 새끼들은 털갈이가 진행중이다.

아델리펭귄 새끼들은 털갈이가 끝난 후 남극의 겨울이 오기 전에 모두 어미를 따라 바다로 나갑니다. 남극의 여름이 끝나는 3월경부터 낮이 사라지고 밤만 지속되는 극야가 시작됩니다. 겨울이 오면 바다가 얼어붙기 때문에 그전에 얼지 않는 바다를 향해 번식지를 떠나야 합니다. 

극야가 시작된 남극에는 하늘의 별과 오로라가 보이게 되겠지요. 

오로라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펭귄들은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26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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