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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Sep 11. 2018

장보고기지에 온 아델리펭귄

남극동화_4. 아델리펭귄의 여정

펭귄의 번식기가 끝나갈 무렵인 2월초. 한 마리의 펭귄이 홀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펭귄의 이름은 앤, 올해로 두 살 된 펭귄이다. 앤은 지금 털갈이를 하기 좋은 장소를 찾고 있었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바다에 얼음이 많아 가까운 육지를 찾기 어려웠다. 지친 몸으로 간신히 바다의 얼음을 건너 언덕에 도착한 앤은 계곡의 바람이 덜 부는 장소에서 홀로 털갈이를 시작했다.

앤이 작년 봄 번식지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많은 펭귄들이 알을 낳아 품고 있는 시기였다. 본능에 이끌려 돌아왔지만, 번식을 할 수 있는 성체가 되려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앤은 마치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번식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좋은 자리는 이미 모두 다른 펭귄들이 차지한 후라 어쩔 수 없이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돌을 하나 둘 물어다 바닥에 쌓고, 쌓인 돌을 바라볼 때마다 무언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열심히 돌을 물어다 놓아도 어느 순간부터 돌이 더 늘어나지 않았다. 자꾸자꾸 물어다 놓았지만, 돌아와보면 조금전 그대로 였다. 이상함을 느낀 앤은 돌을 구하러 나서며 무심코 둥지를 돌아보았고, 다른 펭귄이 자신의 둥지에서 돌을 훔쳐가는 것을 보고 말았다. 서둘러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그 펭귄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허탈했지만 별 수 없었던 앤은 돌을 물어다 놓는 행동이 더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그대로 둥지를 지키기로 했다. 홀로 둥지를 지키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 고개를 파묻고 잠을 청하다 보면 어디선가 모르는 펭귄이 다가와 발밑의 돌 중에서도 제일 맘에 드는 것들만 골라서 빼내가곤 했다. 한번은 너무 화가나 돌을 빼간 녀석의 뒤를 쫒아가 부리로 물고 날개로 때려봤지만, 되려 그 녀석에게 더 얻어맞고 도망나올 수밖에 없었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펭귄들은 왠지 더 사납고 무서워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다른 펭귄들의 새끼가 어미만큼 자랄즈음 앤은 더 이상 이런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을 그만두기로 했다. 홀로 오랜시간 먹이도 먹으러 가지 않고 둥지만 지킨터라 몸무게가 많이 줄고, 피부색도 흐릿하게 변해버린 뒤였다. 그리고 몸의 털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털갈이가 시작된 것이다. 작년에도 털갈이 시기에 오랫동안 먹지못해 배가 고팠던 기억이 난 앤은 우선 바다에 나가 먹이를 구하기로 했다. 아쉬운 듯 잠시동안 정 든 둥지를 버리고 바다로 나가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위에 발을 디뎠다. 왔던 길을 되돌아 다른 펭귄들의 뒤를 따라 한나절을 걷자 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이제부턴 맘을 단단히 먹어야지.. 바다엔 무서운 포식자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

앤은 다른 펭귄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에 뛰어들기전에 많은 펭귄들과 모여있으면 표범물범이 어디 있는지 정보를 얻기가 쉽다. 수십마리의 펭귄들 틈에서 바다를 살피고 살피고 또 살폈다. 그리고, 이제 바다에 물범이 없다고 판단된 순간 주변의 모든 펭귄들과 함께 바다에 뛰어 들었다. 이젠 온몸의 힘을 다해 먹이가 있는 바다까지 헤엄치는 일만 남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바다는 차가웠지만, 앤은 그런것을 느낄새도 없이 날개로 바닷물을 움켜쥐고 앞으로나아갔다. 앞서가는 펭귄들의 뒤에서 나오는 공깃방울이 물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파란 물속을 날다보니, 거대한 크릴떼가 나타났다. 정신없이 부리를 내밀어 크릴을 먹었다. 배가 터질때까지 먹고 보니, 주변 펭귄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나도 이제 돌아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눈앞에 표범물범이 보였다. 그때부턴 아무생각이 안날정도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치고 또 헤엄쳤다. 몇시간을 헤엄치고 돌아보니, 다행히 물범은 따라오지 않았다. 살았다는 마음에 힘이 풀려 물위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전혀 낯선 장소에 와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히 한무리의 펭귄들을 만난 앤은 그 펭귄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얼마 후 도착한 곳은 앤이 살던 곳이 아닌 다른 펭귄들의 번식지였다. 그냥 이곳으로 올라갈까...잠깐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만들어놓은 둥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 가고 싶었다. 발길을 돌려 홀로 헤엄을 쳤지만,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우선 주변에서 쉬었다 나중에 갈 요량으로 가까운 해빙위로 올라갔다. 털을 손질하고, 잠시 쉰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물속에서 젖어 있을때는 잘 몰랐는데, 털이마르고 나니 듬성듬성 깃털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미 깃털 아래에서 새 깃털이 밀고 올라오는 것이다. 당분간은 물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앤은 결국 그 근처에서 털갈이가 끝날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홀로 육지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의 계곡에서 털갈이를 하며 앤은 다음해를 생각했다. 멋진 짝을 만나 번식하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하려면 일단 털갈이를 끝내고, 다시 건강을 회복해 올 겨울을 버텨야 할 터이다. 한동안 물에는 못들어가리라. 바위아래에서 움직임을 줄이고 털갈이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지않던 해가 산 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겨울이 어느덧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참고사진)

번식이 끝나가는 2월. 장보고기지 뒷산 언덕에서 홀로 털갈이 중인 아델리펭귄. 

다가가자 일어나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건강해보인다. 바다까지는 몇백미터 걸어가야 하는데, 홀로 산에 올라온 녀석이 궁금하다. 털갈이 잘 마치고 무사히 바다로 돌아가길. 장보고 기지앞에 표범해표가 한마리 돌아다니고 있다. 나갈때 조심해서 나가야 할텐데..


털갈이가 한창 진행중이다. 
부리의 주황색 무늬가 연해지고, 발색깔도 조금 연해졌다. 등의 털이 빠져나오다보니, 전체적으로 더 통통해 보인다. 꼬리깃도 다 빠져나갔다. 아델리펭귄이 속한 Pygoscelis 속 펭귄은 다른말로 brush-tailed penguin이라 불리기도 한다. 빗자루모양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데, 털갈이 기간엔 이 꼬리털도 다 빠지고 새로난다. 그래도 사람의 접근에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건강해 보인다. 더 단단하고, 촘촘한 새 깃털로 바다를 마음껏 날아다니기를 기원했다.

다른펭귄들의 번식이 끝나가는 시기. 뒤늦게 번식지에 돌아온 펭귄이 홀로 둥지를 만들고 있다. 짝은 보이지 않는다. 둥지에 다가가자 한껏 경계를 한다. 다음번 번식시기에는 때를 놓치지 않고 일찍 돌아와 알을 낳고 번식하렴~


눈이오는날 아델리펭귄 한마리가 돌을 물어 나르고 있다. 번식기간 내내 짝과 교대한 이후 꼭 돌 몇개를 물어다 둥지에 올려놓고 바다로 나간다. 옆둥지의 돌을 훔치는 행동은 펭귄 번식지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콜로니 내부둥지의 개체들은 주로 옆둥지의 돌을 훔쳐오고, 가장자리의 개체들은 콜로니 밖에서 주워온다.


황제펭귄 번식지에 아델리펭귄 한마리가 놀러왔다. 길을 잃은 것인지, 황제펭귄을 따라온 것인지 모를일이다. 잠시 번식지를 돌아보다 바다로 나갔다. 다행히 이날엔 바다에 표범물범이 없었다.


황제펭귄번식지에 찾아온 아델리펭귄

황제펭귄보다 한참 앞에 있지만, 크기가 많이 작아보인다. 황제펭귄이 모여있는 곳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다.


아델리펭귄 번식지 앞 얼음위에 펭귄들이 모여있다. 수십에서 수백마리가 모일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마리가 뛰어들면 모든 개체가 따라서 뛰어든다. 바다에 물범이 돌아다니면 뛰어들지 않는다. 다른펭귄들이 바다에 많이 돌아다니면 뛰어드는게 쉬워지고, 바다에 펭귄이 한마리도 없으면 잘 뛰어들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앞에 서있던 녀석이 뛰어들지 못하고 뒤로 빠지면 전체 무리가 뒤로 물러선다. 서로 누가 먼저 뛰어들지 눈치보는 게임이 펼쳐진다. 용감하게 먼저 뛰어들면 포식자를 먼저 만날 확률이 높다. 야생에선 때론 용기보다 눈치가 더 중요하다.


표범물범이 유빙위에서 자고있다. 웨델물범보다 몸길이가 길고, 머리가 크다. 어찌보면 뱀처럼도 보인다. 유빙위에서 쉬는걸 좋아한다. 펭귄 번식지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뛰어드는 펭귄들을 사냥하는데, 잡은 펭귄을 입으로 물고 물에 패대기쳐서 찢어먹는다. 남은 펭귄의 조각은 도둑갈매기 등 새들이 처리한다. 펭귄의 최대 포식자이다.


바다에 뛰어든 아델리펭귄이 물위를 날듯이 점프하고 있다. 

일단 물에 들어가면 최대한 빨리 안전한 지역까지 이동해야한다. 어떤 얼음 밑에 표범물범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를일이다.


펭귄 한마리가 표범물범에게 잡혔다. 표범물범은 펭귄을 물에 패대기쳐 찢어먹는다. 아직 펭귄이 살아있고, 도망가려는 몸짓을 한다. 새끼를 기르고 있는 펭귄이라면, 돌아오지 못하는 어미탓에 새끼들도 얼마버티지 못할 것이다. 펭귄 번식지에는 수많은 펭귄들이 번식하고 때문에 포식자의 이목을 끈다. 일부의 희생은 어쩔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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