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일기_2018.02.13
전날밤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장보고기지에 블리자드가 몰아치고 있다. 이틀전에 멜버른산위에 만들어진 렌즈운(렌즈모양의 구름)은 블리자드를 알리는 신호였던 모양이다. 지내는 동안 가장 센 바람은 15m/s 정도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30m/s를 훌쩍 넘겨 바람이 불고있었다. 산위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눈을 몰고와 바닥에는 눈의 강이 만들어졌다. 바람은 건물을 찢을듯이 몰아붙이고 건물안에서도 웅웅하는 진동음을 만들어내었다. 장보고기지 앞바다의 해빙이 어제까지 깨져나가지 않아 월동대의 걱정이 많았다. 3월초에 쇄빙선 아라온이 오면 배의 컨테이너들을 기지로 옮겨야하는데, 해빙이 남아있으면 안전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바람으로 기지 앞 해빙이 순식간에 떨어져나가고 있다. 두께가 3미터이상 얼었던 얼음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스폰지처럼 조각나버렸다. 장보고기지의 통신실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니, 시시각각으로 멀어지는 얼음들이 보인다. 하늘은 바람이 만들어놓은 구름의 그림들이 어지럽게 변해간다. 두껍게 쌓이는 렌즈모양의 구름들이 엉켰다가 흩어졌다. 세종기지에서 이정도의 바람은 하계시즌동안에도 예삿일이었다. 간혹 40m/s가 넘는 바람도 기지에 몰아쳤다. 식당에 가기위해서는 바람을 뚫고 가야하는데, 간혹 바람이 쌓아놓은 수 미터의 눈 산이 가로막곤 했다. 하루세끼 먹으러 가는길이 쉽지않았다. 배고픔과 바람사이에 저울질해보지만, 결국 모자, 장갑, 고글까지 꽁꽁싸매고 밥을 먹기위한 모험을 떠났다. 장보고기지는 본관 건물 안에 숙소와 식당이 같이 있어 이런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손쉽게 식사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밖의 강풍을 보고 있자니, 세종기지 생각이 났다. 밖에 널어놓은 카메라 고정판 중 하나가 바람에 날아갔다. 날아가지 않도록 큰 돌로 눌러두고 나서도 불안했는데, 결국 하나가 사라지고 없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밖에 나갈 엄두가 안나 바람이 조금 약해지면 가져올까 했는데, 결국 없어지고 나니 미리 가져오지 않은게 후회가 되었다. 바람은 내일까지는 장보고기지에 몰아칠 예정이다. 펭귄마을에 펭귄들은 어쩌고 있으려나. 번식지를 떠난 펭귄들은 어디에서 바람을 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