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있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 산림이고 높지는 않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산 뿐인 말 그대로 산촌이었다. 분지처럼 산의 중심부에 작은 마을이 위치하고 섬진강의 최상류인 하천이 마을 앞으로 흘렀다. 마을의 아래쪽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고, 마을과 하천 사이에는 넓지 않은 논과 밭이 위치했다. 산골에 태어난 탓에 어릴 적 놀이는 대부분 산과 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계절별로 잡거나, 놀 것이 무수히 많았는데, 가령 겨울에는 산에서 올무를 놓아 산토끼를 잡고,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상류로 이동하는 빙어를 잡고, 뒤이어 붕어와 잉어를 잡고,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메기와 혼인 깃을 띈 피라미나 갈겨니를 잡고, 가을에는 산으로 올라가 머루나 다래 등을 채집하는 따위의 일들이 연중 계속되었다. 일 년 내내 잡거나 채집할 수 있는 것들이 널려있었고, 돈도 없고 컴퓨터나 게임기도 없던 시절에 이것들은 놀이이자 생활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제대로 계획을 세우거나 도구를 활용해 준비가 필요한 채집이 있었던 반면, 겨울에 눈이 내리면 이벤트로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새였다.
시골집에는 집집마다 겨울에 농산물과 장비를 보관하는 비닐하우스를 작게 만들어놓는데,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대부분 소의 여물로 쓰일 볏짚이 남아있었고 눈이 오는 날에는 작은 산새들이 눈을 피해 먹이를 구하다 아마도 볏짚에 이끌려 비닐하우스로 날아들곤 했다. 들어올 때는 작은 입구로 들어왔지만, 한번 들어온 새들은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처럼 작은 입구를 찾지 못하고 비닐하우스의 상단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함박눈이 펑펑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되는 날 아침이면, 학교까지 걸어서 갈 걱정도 하기 전에 나는 비닐하우스에 새가 들어왔는지 아닌지 먼저 궁금했다. 당시 우리 마을은 학교까지 약 4km 정도의 거리인데, 눈이 오면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 걸어가야 했다. 어린이의 걸음으로는 한 시간도 넘게 걸리기도 하거니와 비루한 운동화는 걸어가는 동안 눈에 파묻혀 젖어버리곤 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임시 휴일로 지정하고 임시 휴일로 정했다는 전화가 오면 걱정이 덜했으나, 우리 마을과 비슷한 몇몇 마을을 제외하면 눈이 와도 대부분 학생들은 등교가 가능한 상황이었으니 그런 일은 드물었다. 버스를 타고 가도 여기저기 들려가는 바람에 30분도 더 걸리는 거리를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며 걷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귀찮을 뿐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동네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걸어 학교까지 걸어가는 일은 즐거웠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에서 교실에 들어가면 학교와 가까운 마을에 사는 친구들이 대단하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개선장군처럼 득의양양하며 교실에 들어갈 때는 왠지 모를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선생님이 임시 휴일인데 왜 학교에 왔냐며 돌아가라고 하면,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밤사이 소복소복 눈이 내리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을 자면서도 눈이 쌓이는 소리와 먹이를 구하지 못한 작은 새들이 비닐하우스 안의 볏짚을 찾아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빗자루를 하나 들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향했다. 새가 한 마리도 없으면 아쉽기도 했고, 한 두 마리 들어가 있으면 횡재한 기분으로 새를 쫓아 때려잡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산촌마을이다 보니 과자나 햄버거 같은 간식거리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은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가끔 겨울에만 잡아 맛볼 수 있는 새고기는 특별식이었고 그 얼마 안 되는 육고기에도 즐거웠다. 구들장 앞에 앉아 아직은 따뜻한 새의 깃털을 뽑고 석쇠에 새를 펼쳐 구웠다. 간혹 저녁에 새가 잡히는 날에는 아버지가 옆에 앉아 소주잔에 술을 채워 작은 새의 살점을 안주로 한잔 하시기도 했다. 어느 날 잡아온 참새는 그런데 평소 많이 잡던 참새와는 다른 색깔의 깃털이 있었다. 머리 정수리에 노란색 뿔 같은 모양이 붙어있고, 목덜미도 참새와는 다르게 노란색 깃털이 있었다. 의아했다. 새가 종류가 좀 다른 건 알고 있었지만, 겨우 참새와 까치 백로 정도만 알던 내게 작은 새들도 여러 종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부뚜막에 앉아 새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께 물어봤다. 이 참새는 다른 참새랑 다르게 색이 화려한데 아빠는 왜 그런지 아시나요? 아버지는 담담한 듯 “너랑 내가 부자지간인데도 다르게 생겼는데 참새라고 모두 똑같이 생겼겠니?” 나는 그 말에 금방 이해를 하고 수긍해 버렸다. 훗날 내가 새를 알게 된 이후 그 새가 참새가 아닌 노랑턱멧새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에도 아버지의 그 말은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고 생각했다. 노랑턱멧새는 흔한 새이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저지대에선 참새보다 흔하지 않고, 주로 산림 깊숙한 곳에서 생활한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저지대로 대규모로 이동하고, 북쪽에서 번식하는 개체들은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때문에 겨울철에는 여기저기에서 참새보다 훨씬 많은 무리가 관찰된다.
겨울철 새들은 먹이를 구하기가 힘들다. 봄과 여름에는 곤충이 많고 먹을 수 있는 식물과 씨앗도 많다. 하지만,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새들에게는 먹이를 구하기 힘든 시기가 찾아온다. 체온이 높고 몸이 작은 새들은 추운 겨울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먹이를 필요로 한다. 하루에 자기 몸무게가 넘는 양의 먹이를 먹어야 추운 겨울에 살아남을 수 있기도 하다. 영하 1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새들에게도 버티기 힘든 시간이 찾아오고, 에너지가 부족한 개체들은 나무에서 그대로 떨어져 죽기도 한다. 산 곳곳에 있는 거미나 사마귀 같은 곤충의 알을 먹거나 나무 틈에 숨어 자고 있는 곤충을 찾거나, 식물의 씨앗을 찾아다니며 필사적으로 먹이를 구한다. 추수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낙곡은 새들에게는 귀한 양식이 된다. 하지만 눈이 내리면 새들에게는 시련이다. 먹이를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평소 사람들의 거주터에 오지 않던 새들도 먹이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을 찾는 것이다. 그 결과 나 같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어릴 때 나와 친구들에게 우리 주변의 자연은 우리의 놀잇감이자 생활이고, 삶이었다. 과거의 우리는 우리가 먹기 위해 새나 동물을 잡았지만, 그것을 팔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계절마다 새들은 우리 주위에 넘치게 많았고, 집을 지을 장소가 없는 참새들은 흙집의 처마에 들어가 알을 낳았다. 벼가 한창 노랗게 익어갈 무렵이면 들에 나가 참새를 쫓기도 하고, 허수아비를 세워 우리의 빈 시간에 논을 지키도록 했다. 야생의 새들은 허수아비의 겨드랑이 사이로 날아 적당히 사람의 작물을 탐하고, 사람도 적당히 새들을 탐했다. 그런 상태의 균형은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몇 해 전 가을에 김장철을 맞아 고향마을에 방문했다. 김치재료를 찾으러 마당 옆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자 멧종다리 한 마리가 안에 갇혀있었다. 평소 아주 귀하진 않아도 찾고자 하면 보기가 쉽지 않은 멧종다리가 내 눈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불안한 듯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빗자루를 들었지만 이번에는 과거와는 다른 목적이었다. 새가 안전하게 나가도록 돕고 싶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뒤에서 말씀하셨다. 가만두면 나갈 테니 괜히 나서서 지치게 하지 말라고. 얼른 정리하고 비닐하우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자리를 비켰다. 다행히도 멧종다리는 무사히 비닐하우스 덫을 빠져나갔다. 마음이 급해서 생각지 못했는데, 억지로 내몰다보면 지쳐서 쓰러지거나, 급하게 비행하다 비닐하우스 안의 여러 가지 물건에 부딪혀 죽을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새를 연구하는 나보다 아버지의 새에 대한 이해심이 높았다.
아버지도 나도 이젠 야생 조류를 먹지 않는다. 내가 새를 연구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도 하고, 이제 옛날같이 굳이 새를 잡아먹지 않아도 먹을 것이 많다. 관심을 가지자 주변 새들이 줄어드는 모습이 보이고, 환경이 나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태어나면서부터 농부로 평생을 사신 아버지는 이런 사실을 나보다 훨씬 빨리 깨닫고 계셨다.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욕심부리지 않으면 서로 잘 어울려 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언제나 정도를 넘는 것이 문제다. 결국 주변에 대한 관심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이 아닐까.
사진: 노랑턱멧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