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 두려운 사람은 먼저 상처를 준다
그땐 꼴 보기 싫었다 정말 많은 것들이
쉴 새 없이 들리는 물침대 소리가 시끄럽다.
(그냥 다 부숴버리고 싶다 진짜로)
장화를 더 세게 해달라고 부르는 할머니들이 지겹다.
(이게 제일 세게 한 거예요 어머니)
공부도 안 하고 태평하게 놀고 있는 물리치료사들이 답답하다.
(어쩌려고 저러고 사냐)
9시까지 야간진료를 하는 이 병원이 그지 같다.
(내가 조만간 관둔다 여기)
사소한 걸로 삐져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여자친구도 짜증 난다.
(왜 또 그러는데)
..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국가고시도 전국 수석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 난 후로 두려울 게 없었다. 그리고 졸업 후 군대에 가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을 할 수 있을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냥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역만 하면 다 죽었다.'
이런 패기는 취업하고 금세 사라졌다. 도수치료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신졸이니까 적응하면 천천히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나한테 기대한 게 너무나 컸다.
'내 예상으로는 지금쯤이면 훨씬 더 성장하고 잘해야 될 텐데 왜 아직도 난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조급했고, 초조했고, 불안했다. 그래서 평일에 퇴근하고 교육을 듣고, 주말 또한 교육으로 채우는 시간이 많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배운 게 쌓일수록 ‘지금의 나’는 더 초라해 보였다.
그 조급함은 나를 성장이 아니라 날카로움으로 이끌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아졌고 짜증스러운 태도도 많아졌다. 예전처럼 여유롭게 장난칠 수 없는 사람이 됐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까지 쉽게 내뱉는 사람이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정말 위태롭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위험에 빠진 고슴도치처럼 나를 지키려고 가시를 세웠다. 누구든 가까이 오지 못하게, 더 다치지 않게.
인스타나 유튜브 댓글을 보면 영상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공격적이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내 1년 차 시절이 떠오른다.
‘이 사람들도 뭔가 불안하고 위태로운 건 아닐까.’
예전에는 말투나 태도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봤다면 이제는 그 뒤에 내면에는 뭐가 있는지 헤아려보려고한다. 나도 그렇듯, 사람들은 속 깊은 이야기를 바로 꺼내놓는 걸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면 내 안의 날카로움도 조금씩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