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공의가 읽은 [채근담]
[채근담]을 읽고...
3정말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지나고,
새로운 희망을 품은 2025년도 새해가 밝았다.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님이 매해 새해마다 [채근담] 을 읽으며 새해 다짐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한번 따라해볼까 싶어서 중고 책방을 뒤져 어렵게 한권을 구입했다.
20대 초반부터 고전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으나, 그 중요성을 크게 와닿지 않았다.
고전에는 대부분 '욕심을 버리고 순리에 맞게 살아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말은 누가 그렇게 못할까...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현대 사회와 동떨어진 수천년전 케케묵은 유물과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든걸까..
새해를 시작하며 읽은 [채근담]의 한구절 한구절은 내 삶과 맞닿아 있게 느껴졌다.
특히 정신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여러 구절이 정신의학에서 강조하는 내용과 흡사한다는 것이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다.
수천년 전, 어떠한 정신과적 기초지식도 없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중 몇구절을 공유해 볼까 한다.
자기 마음을 항상 원만하게 살필 수 있다면, 온 세상이 저절로 결함 없는 원만한 곳이 될 것이고, 자기 마음을 항상 관대하고 평온하게 할 수 있다면 온 세상에 저절로 사악한 인정이 없어질 것이다.
정신의학에는 여러 치료 방법이 있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는 환자 분이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스스로에게 관대해 지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우를 다소 약하게 만드는 약물 치료를 하고,
잘못된 인식과 행동의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 인지행동 치료를 하며
나를 위한 안전한 선택을 하기 위한 분석적 치료 등을 한다.
환자분이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몸이 항상 한가로운 곳에 머무는데, 세속의 영화와 굴욕/얻음과 읾음이 어찌 나를 부릴 수 있으며, 이 마음이 항상 평온함을 지니는데, 세상의 옮음과 그름/이로움과 해로움이 어찌 나를 농락하겠는가?
환자분들 중에는 정신과 의사가 '멘토'의 역할을 해주길 바라시는 분이 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정신과 의사가 보다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어떤 정신과 의사도 환자의 선택들 대신 할 수 없다.
사실, 환자분의 선택과 마음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환자분이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환자분의 마음이 그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은 환자분이 어려운 마음을 환자분과 함께 관찰하고 치유하는 일이다.
복잡했던 마음이 가지런히 정돈되면, 환자분 스스로에게 옳은 선택을 자연스럽게 하실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결국 정신과는 '위로의 의학' 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나를 포함하여 힘든 한해를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 희망을 품고 계시는 분들께 작은 위로를 드리고자 한 구절을 공유하고자 한다.
초목은 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어느새 뿌리 밑에서 삭이 빠끔히 돋고, 겨울이 아무리 춥더라고 결국에는 동지에 양기가 돌아와 봄이 된다. 만물이 쇠락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만물을 생성하는 생명력이 항상 대자연의 주체가 되니, 여기에서 천지 조화의 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