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고수들의 승부에 열광하는가.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 가 늦여름 한국 예능을 강타했다.
출연한 셰프들의 가게는 몇 달간의 예약이 순식간에 마감 되었고
방송이 종영 된지 한달여가 지간 지금까지도, 출연자들을 패러디한 각종 영상들이 SNS를 뒤덮고 있다.
나 역시도 굉장히 흥미롭게 시청했는데,
시청하면서 나는 이 프로그램이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무협소설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닮은 점은 등장 인물들이 두 팀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흑백 요리사들은 유명세와 업적 등에 따라 흑수저 /백수저 으로 출연 요리사들을 분류하였다.
무협소설의 배경이 되는 무림세계(중원)에서도 사파/정파 로 무림 고수들이 분류된다.
사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에 집중하는 무리이고
정파는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승부를 내는 것을 중요시하는 무리이다.
맘찢남, 철가방 요리사 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고 닥치는 대로 요리실력을 연마한 출연자들이 속해 있는 흑수저팀에게서는 사파의 뜨거움이 느껴지고,
최연석, 에드워드 리와 같이 정통 요리코스를 거쳐 최고의 경지에 오른 셰프들이 주로 포진해 있는 백수저 팀에게서는 정파의 향기가 풍긴다.
두번째로는 일대일 단판 승부를 낸다는 점이다.
무림세계에서 정파와 사파는 서로의 명예를 걸고 치열하게 싸운다.
이때 주로 1:1 단판 대결로 승패를 가르며 폐자는 영원히 무림세계를 떠나는 것을 규칙으로 한다.
흑백 요리사에서 가장 인기있던 장면이, 흑수저 셰프와 백수저 셰프가 일대일로 대결하는 장면이었다.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지 못한 한명은 프로그램을 떠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정당당히 대결한다.
흑백 요리사의 1:1 대결에서 심사위원들이 안대를 가리고 심사를 한 것은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셰프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배재한 체 오직 '맛' 으로만 승부를 내겠다는 취지가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셈이다.
무림의 세계에서도 무공 이외에 어떠한 술수도 용납 되지 않는다. 간혹 사파 고수 중에서 승리를 위해 약물을 사용 하는 등의 비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승리를 하게 되어도 대부분 다른 고수들의 표적이 되어 훗날 제거를 당하게 된다.
이렇듯 닮은 꼴이 많은 흑백 요리사와 무협지를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사랑하는 걸까.
두팀으로 나뉘어 단판 승부로 정정당당히 대결하는 것 만으로 이러한 '장르' 의 인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중요한 이유는 없을까?
눈을 즐겁게하는 요리와 출연자들의 개성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가장 중요한 답은,
이 프로그램에는 신념이 가득한 사람들의 열정이 오롯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셰프들은 승리한다고 해서 엄청난 부를 얻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미 유명한 셰프는 패배할 경우 명성에 흠집을 남길 수도 있게된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수 년간 갈고 닦은 자신의 요리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대결에 참여하고 열정은 쏟는다. 마치 수십년간 세속을 멀리하고 수련에 집중하는 무협 고수들이 단 한판의 싸움에 목숨을 거는 것 처럼 말이다.
요새 우리 사회는 적은 투자로 큰 이익을 노리는 소위 대박을 꿈꾸는 이가 많아졌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건 두고 볼수 없다고 눈을 부라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꿈을 이야기 하면 재미없는 '진지충' 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백 요리사가 대박 프로그램이 된 것은
우리가 여전히 차근차근 쌓아온 단단한 신념들이 정면으로 부딪히며 일어나는 불꽃들에 열광 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오늘도, 흑백 요리사들의 주방에서는 불꽃이 튀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