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밤, 나는 '처단' 대상 이었다.

by 파랑고래


12월 3일 밤 22시.


당직의사로 근무를 시작하기 위해 병원 숙소에서 막 옷을 갈아 입고 있었을 때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친구들이 카톡으로 '헐.. 윤통령 계엄령 선포함!' 라며 영상 링크를 공유 했다.

'하... 이 자식들 일해야 하는데 싱겁게 구네.'

난 당연히 농담이고, 영상은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영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TV 를 켰을 때 계엄령 선포와 관련된 뉴스 특보가 쏟아지는 걸 보면서도

이게 현실이라는게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계엄령' 이라는건 고등학교 시절 국사책에서나 배우던 내용이었고,

지금은 영화나 소설의 소재거리 아니었나.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명령이 지금 2024년 한국에서 발동 된다고??


곧 이어 발표된 포고령에는 정치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내용에 이어 '전공의' 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허탈한 웃움이 나왔다. 내가 사직서를 제출한지 1년이 다 되가고, 이미 사직처리가 되어서 다른 병원에서 근무한지가 3달이 되어가는데... 난 '파업 중'인 건가...


난 성실히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데,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료인' 이 되는 건가...


48시간 내에 복귀를 안하면 나는 '처단' 당하는 건가...

어떤 처단을 당하는거지? 구속? 사형?


여전히 현실이 와닿지 않고, 감정이 붕떠있는, 정신의학 용어로 '이인증(Depersonalization)' 을 겪고 있을 때, 후배 전공의가 전화가 왔다.


"저희 처단되는 건가요 선생님..?"

"무슨 소리야 임마. 말도 안되는 일이니까 신경끄고 잠이나자. 괜히 나돌아 다니지 말고"


불안한 목소리로 처단의 대상인지를 묻는 후배 전공의에게, 의국장으로써 호기롭게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 마음 속 한켠에서는 잔잔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수 부대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정말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싶으면서도

48시간 뒤에 내가 저들에 의해 체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 마침, 병동에서 환자를 봐달라는 연락이 왔었고, 덕분에 찬물에 세수한 듯 냉정함을 찾을 수 있었다.

환자를 무사히 처치하고, 숙소로 다시 발검을을 돌렸다.


12월의 쌀쌀한 바람과 어둠이 나를 감쌌을 때, 생각보다 큰 두려움과 슬픔이 나를 엄습했다.


TV에서 본 군인들이 나를 갑자기 잡아가면 어쩌지...

나는 좋은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국가의 척결 대상이 되었구나...

내가 잡혀가면 내 아내와, 아기는 누가 지켜주지...


그러면서 동시에, 계엄령 보다 더한 상황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분들은 얼마나 큰 두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살아갔던 것일까.

그분들이 걸어갔던 밤거리는 얼마나 춥고 어두웠을까.

그 투쟁의 끝에 죽음이 있었을 때, 생을 마감하면서 어떤 기분과 생각이 들었을까.


평소 정치와 근현대사에 관심이 전무했던 내가,

국가 권력에 내 안위가 위협을 받을 때 민주화 운동을 위해 희생했던 분들을 떠올리게 된 셈이다.


그 분들의 의지와 희생을 생각하니,

두려움과 슬픔으로 얼어있던 몸이 서서히 녹아 내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0년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숨결이,

나를 정부의 폭거로 부터 따뜻하게 지켜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분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열정은, 단순히 죽음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분들의 숨결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나 온기를 머금고

2024년 대한민국의 상공을 대류(對流)하고 있다.


이기적이었던 나는,

계엄령이 선포된 12월 3일 밤이 되서야 난 그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IMG_038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