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월급을 달러로 받았다.

by 정진우

나는 첫 월급을 받던 때를 기억한다. 불과 4,5개월 전이다. 나의 첫 직장은 조금은 특별하게도 싱가포르라는 해외에서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지에서 정착을 위한 적응과 첫 직장에서 긴장감 가득한 적응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아직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한다. 면접을 보러 다니고 집을 보러 다녔던 그때. 나에게 이 당시가 뇌리에 깊게 박힌 이유는 아마도 나의 모순적인 감정 때문일 것이다. 나는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릴 때면 간절하게 붙기를 바랐다. 일정기간 내에 붙지 못하면 한국으로 되돌아가야 했기에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속으로는 붙지 않기를 바랐다. 붙는 순간부터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무서워서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동시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 다니는 직장에 붙었다는 결과를 들었을 때는 사실 얼떨떨했다. ‘나는 분명 합격을 간절하게 바랐을 텐데, 내 기분은 지금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며 스스로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당시에 나의 두려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에 그 괴리감이 그리 낯설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괴리감은 뒤로 한채 시간은 성실하게 흘렀고, 출근은 해야 했다.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어깨는 잔뜩 굳었고 얼굴은 어색하게 웃어 보인 채 밝게 인사하려 노력했다. 숨을 내뱉을 정신도 없었고, 나의 하루는 참... 길고 길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 나의 이름 모를 적응력을 신뢰해 왔다. 내가 적응을 위해 노력한다면 내 능력 이상으로 결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적응력이 내 부족한 언어 능력이나 업무에 대한 전문성까지 커버해주지는 않았다. 마치 이등병으로 다시 돌어간 것 같은데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기분이었달까.


사실 되돌아보면 나는 적응을 위해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으로 잘하기는 어려웠고, 새로운 배움을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힘듦은 별게였다. 나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내 감정의 균형은 수시로 무너졌다. 일을 하다가도, 출근을 하며 길가에 사람들을 보다가, 쉬는 시간에 편의점에서 김치볶음밥을 사 먹다가도 따뜻한 햇살에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울컥하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정신 차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라고 스스로 되뇌거나, 나를 아직 잘 모르는 저 사람의 한마디로 내 소중한 하루의 전체를 망쳐버리지 말자고 스스로 마음을 바로잡았다. 만약 혼자 쉬고 있을 때 그런 축축한 감정이 올라온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내 일상을 채워나갔다. 혼자가 된 것을 기회삼아 책을 읽고, 글도 썼다. 몸이 피로해 책에 있는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보고 싶던 영화라도 봤고, 그것도 어렵다면 좋아하는 노래라도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져 가는 나의 소소한 취향들은 너무나 소중했다. 나의 세상을 넓혀가면서도 내 색은 진해져 가는 이 과정이 나는 옳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왜 이렇게 까지 힘들어하면서 여기서 버텨야 할까’라는 의문이 오랫동안 들었지만, 그에 대한 답도 천천히 해나가는 중이다.


그렇게 처음 받은 월급은 당연하게도 싱가포르 달러로 싱가포르 은행 계좌에 들어왔다. 한 달을 버텨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한 달을 버텼으니, 1년도 버틸 수 있겠네?’라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은행업무를 위해 현지 은행을 찾아가 쩔쩔매며 업무를 보고, 은행원의 보험가입 권유를 완곡하게 거절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내 계좌에 들어온 월급은 너무나 크고 소중하게 느껴졌지만, 돈이 나가는 속도는 허탈할 만큼 빨랐다. 싱가포르는 물가가 워낙 비싸다고 변명해 보았지만, 그때 나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는 현실적인 무게를 어렴풋이 느낀 것 같다. 그 무게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이처럼 내 인생의 첫 직장, 첫 월급은 발 아프게 열심히 겪어내고 있다. 생각의 확장을 이뤄준 해외 경험이 너무 소중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여유로움과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어려워하는 것에 부딪히면 그 어려워하던 것도 익숙해져서 편해지기도 한다고 요즘 일을 하며 느끼고 있다. 그게 내가 적응했던 방식이다. 모든 일이 어려웠지만, 부딪혀서 편해졌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요즘은 나의 오늘이, 다가올 내일 출근이 두렵지 않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프니까 청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