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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는

by 정진우

퇴근 후에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발걸음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향한다.

핸드폰을 잠시 뒤적거리다가 어느새 집중력이 흐릿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져 온다.

나의 고개는 앞, 뒤, 양 옆으로 휘청거린다.

오늘도 문이 닫히기 직전에 깨서 겨우 내렸다.

잠을 깨려고 노래 볼륨을 키우고 드럼소리를 느끼며 걸어본다.

나의 귓속으로 외국가수가 있는 힘껏 무언가 소리치고 있다.

나에게는 그 낭만적인 가사도 여기저기 통통 튀는 멜로디도 닿지 않는다.

그저 이름 모를 가수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에너지만 나에게 부딪혀온다.

노래가 두 번쯤 바뀌고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 스피커로 노래를 마저 듣는다.

오늘 햇빛을 쐰 건 분명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단 5분 거리뿐이었지만, 나의 몸은 무더위 속 땡볕에서 행군이라도 한 것 같다.

에어컨을 켜고 옷을 갈아입는다.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맡기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잠시 집중해 본다.

이 노래로 뭘 말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냥 다 공감이 간다.

잠시 잠을 잘까, 일어나서 밥을 먹을까 고민해 본다.

아, 나는 답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

밥을 먹으려면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하지만, 잠은 지금 당장이라도 잘 수 있다.

이미 불공평한 경쟁이었던 것이다.

역시 잠이 이겼다.

나도 밥을 먹는 선택을 하라고 외쳤지만, 사실 속으로는 잠이 이기길 바랐다.

그래서 잠이 이겼나 보다.

쩝, 꿈 없는 맑은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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