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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챕터 2024

by 정진우

슬슬 2024년의 마지막 장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매년 겪고 있지만, 익숙해지지는 않는 느낌이다. 이제야 부르기 익숙해진 2024년은 어느새 과거가 될 것이고, 새로운 2025년과 새삼스럽게 나는 또 낯을 가릴 것이다.


2024년. 우린 모두 ‘2024년’이라는 이 애증의 녀석과 1년간 부대끼며 함께 살아간 사이다. 2024년과 이별을 앞두고 있지만, 아마 사람마다 그 감상은 다르리라 추측해 본다. 새로운 해를 빨리 만나고 싶은 이들도 있을 테고, 어쩌면 영원히 2024년과 헤어지기 싫은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굳이 고르자면, 이별은 아쉽지만 새로운 년도와의 만남을 기대하기에 이 흐름에 그냥 순응하는 쪽이랄까. 이 흐름이, 그러니까 시간이라는 것이 결국에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시간은 현재와의 이별 그리고 미래와의 만남이니까. 그리고 지나간 현재를 추억할 수 있는 과거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느낀다.


올해의 마지막은 그런대로 예쁘게 포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시작과 초반은 힘들었고, 가슴이 답답했던 기억과 회의적인 자세들로 가득했다. 싱가포르로 떠나게 될 1년은 기대가 아니라 부담이기도 했다. 또한, 새로움은 설렘이 아니고, 적응해내야 할 과제였다. 사실상 혼자가 되었던 나는 자유로움보다 외로움을 먼저 그리고 더 깊이 느꼈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취업을 했고, 나는 당연하게 매일 일을 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부담에 치여가는 내가 매일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건강한 식사를 하며 빨래도 밀리지 않고, 집을 정돈하고, 스스로 장까지 본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당시는 하루가 고통스러웠고, 길었다. 그런데 나는 그 하루보다 하루가 끝나고 쉴 틈 없이 또다시 찾아오는 그 내일이 고통스러웠다. 마치 산 정상으로 바위를 굴려 올려도 다시 떨어지기에 영원히 바위를 굴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 신화 같았다. 가까스로 하루를 버텨내도 떨어지는 바위처럼 찾아오는 내일은 참 잔인했다.


나는 그 고독함을 온전히 인정하고 맞부딪혔다. 그 후로 조금씩 나아진다고 느꼈다. 머릿속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잡념에 꽉 차게 되었을 때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느끼는 대로 고독하다고, 힘들다고 썼다. 후련하고, 내 상태가 진단이 되었으며 나중에 다시 그 글을 보았을 때는 현재의 자신과 너무나 달라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듯했다. 후련함이 지나고 나니 긍정적인 것들이 조금씩 들어왔고, 재미까지 찾아왔다. 그저 마음속에 쌓아뒀던 것들을 털어내기 위해서만 쓰다가, 쓰고 싶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희열은 꽤 진득하고 짜릿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읽었으며 영화와 노래도 마음껏 감상해 보았다. 점점 더 깊이 파고들수록 혼자 지내는 시간은 알차게 변해갔고 힘들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나의 취미와 취향을 만들어준 나의 힘듦이 소중하고, 고맙다.


만약 내 인생을 하나의 소설책으로 본다면, 2024년 챕터는 가장 재미있고 흥미진진해서 밤늦게까지 읽게 될 부분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도전과 적응을 했고, 고독을 느끼고 길들이는 법을 배웠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불안했지만, 그 미래를 기대할 수도 있게 되었다. 매일이 새로웠다. 한국과는 다른 색깔, 향기, 소리와 언어, 피부로 체감하는 날씨들,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 그리고 사람들까지,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다고 호소하는 듯했다. 그 호소는 나의 시야는 넓게, 취향은 점점 더 진해지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날카롭고 차가우면서 무관심하기까지 한 현실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그 사이에는 길가의 들꽃처럼 아름다운 사람들과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던 것들이 피어 있었다. 세상이 이러니 어찌 내가 현재가 소중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은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내 인생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을 이제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흥미진진한 이 소설을 말이다. 이 소설은 어떤 전개를 이어나갈지, 새로운 등장인물들은 누구일지, 주인공은 또 어떤 위기와 행복을 느낄지, 어쩌면 대하소설처럼 방대한 분량이 될지, 그런 것들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나는 이 책의 2024년 챕터를 읽다가 드디어 이 책에 푹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느낄 고난 역시 책 안에서는 한 챕터나 한 페이지 혹은 한 줄 정도로 묘사되고 끝날 얘기라고 느껴졌다. 물론 그 한 줄도 나에게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 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2025년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오게 될지 첫 페이지의 첫 줄조차 전혀 예상을 못하겠다. 그래도 이제는 나를 마주하고 애정하는 중이며 내 삶이라는 이 책을 애독하는 중이다. 그래서 두근대고 기대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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