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LA/ 우버와 함께 한 12시간
공항에 내리는 일은 가장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여행의 첫 단추를 순조롭게 꿸는지, 어리바리한 여행객으로 비춰 안 좋은 일에 표적이 되진 않을지 하는 긴장과 걱정이 최고조인 순간이다. 특히나, LAX 공항에 내리고 수하물을 다음 항공편으로 직접 부쳐야 했는데, 혹시나 잘못 부치지는 않을까 불안했고, 입국심사에서 제대로 입을 떼 영어로 잘 대답할 수 있을지도 걱정됐다. 수화물을 어떻게 부쳤고, 입국 심사에서는 무슨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는지, 또 우버는 어떻게 불러 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꿈 속인냥 시공간의 개념을 잊은 채 잔뜩 얼었던 모양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난 우버 기사는 공항에서 픽업한 동양인 손님에게 관심이 많았다. 여행차 왔는지, 어딜 가고 무얼 할 건지 끊임없이 물었고, 본인이 자란 동네 이야기도 하며 차 안 토크를 이어나갔다. Lake Hollywood Park에서 하차할 때는 다음 이동 시에 부르라면서 본인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서로 인스타 팔로우까지 맺었다. 혼자서 택시 타고 영화에서만 보던 Hollywood Sign이 보이는 이곳까지 이르니, 척척 해내는 스스로가 자못 대견하고 뿌듯하게 느껴졌다. 여행은 이런 순간들의 연속이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스스로가 대견해지는 일 말이다.
얼마 전 도수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물리치료사가 그의 지시에 따라 내가 몸을 뒤집자 '잘하셨어요.'라고 말했다. 손을 들어보시겠어요? '네, 잘하셨어요.' 아마도 내가 몸을 뒤집고, 손을 들었다고 칭찬받은 일은 생후 1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잘하셨어요'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누군가에게 칭찬받아 본 일이 없었구나, 꽤나 칭찬이 그리웠나 보다 싶었다. 하물며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일은 더 드물었다.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의 경계선을 허물어트리는 일.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이동한 일, 유명 햄버거 가게(그게 한국에는 없는 인 앤 아웃 버거라면 더욱)에 간 일, 카페(그게 인종차별이 아주 심하다고 평이 난 곳이라면 더더욱) 가서 커피를 주문했던 일. 평소라면 전혀 특별할 게 없는 일들이 여행지에서는 매 순간 특별하고 뿌듯하게 여겨진다. 자기 긍정의 경험을 늘려가는 시간이 된다. 사소한 것들에도 뿌듯했고, 감사했고, 행복했다. 비단 여행에만 가능한 일은 아닐 텐데, 여행 밖에서의 시간들은 좀처럼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사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과 다르게 체력적으로 고된 여행에서 몸이 지치니 마음이 동이 났고 스스로에게 더 야박해졌다. 그때 조금만 더 너그러워질 걸 그랬다. 여행에서 만큼은 아프면 아픈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더 솔직해지고, 너그러워져도 된다고 말해줄 걸. 지금이라도 늦은 위로를 해본다.
산타모니카 해변은 내가 기대했던 그 아름다운 풍경 그대로를 보여줬다.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마치 지저귐 같았다. 바람소리까지 더해져 음악이 됐고, 음악은 햇살을 타고 부드럽게 피부로도 느껴질 만큼 황홀했다. 낭만적인 풍경에 조금 더 시간을 맡기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쁘다. 남미에 이르려면 아직도 8시간의 비행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