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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Apr 01. 2023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이 글은 2021년 12월 28일에 썼다.




가까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날 때 배웅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러봤지만, 죽음의 경계를 넘는 자들을 배웅하고,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렸다. 어른이 된 후에 갔던 장례식도 일전에 본 적 없는 가까운 누군가의 가족이었지만 배웅하고 위로하는 일은 여전히 내게 어렵고 먼 일이었다. 막연히 이제 누군가를 떠나는 보내는 일에 더 익숙해져야 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어렴풋이 생각해 볼 따름이다.


2017년 가을과 2018년 여름이 되기 전 연달아 가족 중 누군가를 떠나보냈었다. 두 분 모두 살아생전에 교류가 많지 않았고, 특별한 기억을 가진 가족은 아니었다. 일 년에 두 차례 명절에 만났지만 특별히 친밀하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죽음도 아니었기에 그 두 분의 죽음이 내게 엄청난 상실을 안겨줄 만한 큰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2017년 가을 큰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들은 그날 나는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외박한 날이었고, 큰 아버지의 임종을 알리려는 엄마의 전화를 여러 차례 무시했었더랬다. 이른 아침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가는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걸으며 죄책감이 밀려왔다. 가족 중 누군가가 생을 마감했고, 또 다른 가족들은 그를 떠나보내고 있던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내 생일을 축하하겠다며 친구와 외박하고 돌아가는 그 길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동이 트지 않은 가을날은 아주 쌀쌀했고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수십 마리의 나비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무섭게 공격하듯이 달려든 게 아니라 내 주위를 감싸듯이 나를 둘러 날고 있었다. 그 순간 큰 아버지의 영혼인가,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새벽에 흰나비라니,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나를 감싸 둘러 날았다는 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마치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죄책감 갖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이 경험이 실재였나 스스로에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기억이 또렷하다기보다 비현실적인 현상을 마주했던 그 순간이 실재였다는 믿음만 남았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일어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내게도 일어났었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그 이후로 흰나비를 보면 그날의 새벽이 떠오른다. 큰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도 아니었는데, 왜 내게 오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 순간 나는 잠시나마 위로 비슷한 걸 받았던 것 같다. '죄책감 갖지 않아도 괜찮아, 뛰지 마.' 나비는 내게 삶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작은 위로를 건네는 존재가 되었다.


그다음은 그로부터 채 일 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네 번째) 큰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나는 그 당시 연인과의 이별로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다. 심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는 와중에 영원한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니 더욱 슬펐다.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경험한 것도 아닌데, 고작 사랑과 이별 때문에 무너져 버린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더불어 누구나 죽는다는 진리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삶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러나 그 덧없음이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했다.


공교롭게 큰 어머니가 병실에서 숨을 거두시는 그 시각, 나는 베드에 누워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Memento mori'라는 문구의 타투를 새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도 임종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바로 받지 못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내게는 여전히 먼 일이지만, 유한한 삶이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문구를 새겼다. 내 삶을, 가족을, 인연을, 운명을, 내 곁에 둘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능한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아직은 두렵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이 아직은 내 곁에 있지만 누구도 그들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전에 더 열심히 사랑하고, 위로하고, 표현하는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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