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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Mar 30. 2023

죄송한데 안 죄송합니다

똑똑하게 거절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이 글은 2020년 12월 7일 쓰였다.




나는 거절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애매하게 거절하지 못해 애먹는 사람도 아니다.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거절을 해야 하는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확실하게 거절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자주 깨닫게 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거절은 주로 '영업'에 관한 거다.


회사 업무 차 알게 된 은행 직원의 부탁으로 상품에 가입에 가입한 적이 있다. 나는 이미 타사의 해당 상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관계 유지 차원에서 타사의 상품 금액을 줄이고 가입 권유에 응했다. 그리고 최근에 또 다른 상품 가입을 권유받았다. 늦은 밤 개인 메신저로 부탁해 온 그에게서 실적의 압박이 느껴졌다. 필요하지 않은 상품이라 난색을 표하니 그저 가입 계약만 해주면 된다고 재차 요청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다행히 그도 나에게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고, 그는 미안하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거절하게 돼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미안하단 말 대신 우는 표시 'ㅠㅠ'로 마음을 표현했다. 내 마음이 불편한 데에 그가 미안한 게 어쩌면 (조금은) 당연한 건데, 왜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싶어서 끝내 그 표현은 삼갔다. 고백하자면 미안하다는 표현은 진짜로 내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나로 인해 수고를 짊어지게 한 게 아니라면 가급적이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안하다.' '죄송하다'에는 '내 잘못입니다', '내 책임입니다.'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직장 생활 4년 차(글 쓸 당시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즈니스 이메일을 쓸 때 지적받았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는 탓이기도 하다. 'I am sorry'에는 '제 잘못이고 제 책임입니다.'라는 의미이니, 그저 흔히 가볍게 할 수 있는 인사치레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삼가야 한다는 지적에 수긍하며, 그 뒤로는 내가 명백하게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이 아니면 영어에서든 한국말에서든 죄송하단 표현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연유는 오늘 길거리에서 모델하우스를 홍보하는 아주머니가 줄기차게 따라붙으며 모델하우스 구경해 달라고 요청했고 거절하는 과정에서 기분이 퍽 상했기 때문이다. '일분이면 된다. 할당량을 채워야 하니, 늙은이 도와주는 셈 치고 한 번만 들어가 달라'라며, 본인 개인 사정에 호소하며 따라오셨다. 걸으면서 수십 번은 거절 표시를 했고, 종국에는 '죄송합니다. 못 도와드려요'라고 하며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불콰하게 개인 사정에까지 호소하면서 나를 모델하우스 입장을 시키려는 분에게 왜 내가 죄송해야 하는 걸까 기분이 상한 거다. 분명 과민반응이다. 오늘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아 예민해 있던 탓일 수도 있겠다.


만약 거절하지 못하고 모델하우스에 입장했더라면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을 테고, 더 불쾌하고 애매한 상황에 놓였을 게 분명하다. 그분은 거절받는 상황이 만연한 일을 하고 계시니, 나의 거절이 그분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느냐만은 나는 오늘 '그 거절'의 짧은 과정에서 과한 에너지를 쓴 기분이었다. (어째서 그런 식의 영업방식(무조건 숫자 채우기)이 사라지지 않는 거지?)


거절을 할 때 상대방의 기분을 최대한 배려하겠지만, 지나친 내 에너지를 쏟고 싶진 않다. 게다가 거절하기 불편한 마음이 들도록 나를 밀어붙이는 불쾌한 상황이라며 더더욱. 똑똑하게 거절하고 싶은데 이래저래 뚝딱이라 점차 인색한 인간만 되는 거 아닐까 덜컥 불안하기도 하지만 역시나 상대방보다는 내 감정이 우선이다. 아, 반대로 내가 거절받는 상황에 놓였을 때도 역지사지의 태도는 유지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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