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미 여행] #6 두려움을 성취로 바꾸는 도전

Day 6 이카/ 사막과 오아시스는 처음이라

by Sujin

와라즈에서 리마로 다시 돌아올 때는 이동 시간(8시간)을 아끼기 위해 야간 버스에서 잠을 해결하기로 했다. 전날 늦은 밤 출발해 리마에 아침 일찍 도착했고 같은 터미널에서 한 시간 정도 대기했다가 이카(Ica)로 향하는 버스로 환승했다. 환승시간이 한 시간 남짓이라 아슬아슬했지만 다행히 예정시각에 리마에 도착했고, 환승도 무사히 했다. 리마에서 출발한 버스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Panamericana 고속도로를 달린다. 양 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오아시스가 있는 작은 마을 와카치나(Huacachina)로 들어갔다. 숨을 고르는 것도 잠시 숙소 내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사막을 거칠게 즐기기 위해 버기카(Buggi) 투어를 하러 떠났다. 사륜구동 지프를 개조해 만든 버기카를 타고 가파른 모래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 그곳에서 샌드 보딩을 탔다. 보드를 배 아래 깔고 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평소 겁이 많아 놀이공원이라면 질색하던 나였기에 역시나 무서웠다. 같이 버기카를 타고 온 여행자들이 차례로 보드에 몸을 싣고 가뿐히 모래 언덕을 타고 내려갔다. 함께 간 일행 중 첫 타자로 나설 용기는 나지 않고, 그렇다고 마지막 주자로 남겨지기도 싫어서 눈치를 보다가 나는 뒤에서 세 번째 순서로 자리 잡았다. 잘 미끄러지도록 보드 바닥에 왁스 칠을 열심히 한 후, 보드에 엎드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자세를 고쳤다. 겁에 질려 나는 가이드에게 '샌드보드 타다가 죽은 사람은 없지?'라고 물었고, 그는 웃으며 'Never'라고 답해주었다.


위에서 보는 아찔한 급경사에 숨이 턱 막혔지만, 이내 미끄러져 보드가 모래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두 눈을 질끈 감고도 싶었지만, 눈을 감지 말고 스릴을 느껴보라는 모두의 조언에 따라 눈을 부릅 떴다. 이내 가속도가 붙었지만 속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금세 언덕 아래 멈춰 섰다. '아, 재밌어!', '또 타고 싶어!' 멈춰 선 그 자리에서 조금 더 이동해 첫 번째 경사보다는 낮은 언덕에서 두 번째 샌드 보딩을 즐겼다. 단언컨대 처음 즐겨보는 짜릿한 스릴이었다. 롤러코스터라든지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를 왜 타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상당한 즐거움의 발견이었다.


P20191117_031903740_9C0E3BC2-FE38-4108-95CB-A1678EFC0AAA.JPG
P20191117_032911725_1D169FDC-E536-4450-B88F-4DB0CDBE0800.JPG


그다음은 버기카를 타고 사막을 질주했다. 아찔한 모래 경사를 날아갈 듯한 점프 곡예를 선보이며 달리는 버기카에서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안전바를 꼭 움켜쥐면서도 점프 타이밍에 맞춰 엉덩이를 함께 들썩 거렸다. 금방이라도 모래 계곡에 굴러 떨어져 처박힐 거 같은 공포에 온몸 근육들이 잔뜩 긴장했지만,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사막 질주를 즐겼다. 뜨거운 열기를 가르며 질주하자 사막의 열기도 바람을 타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버기카 투어가 끝나고 일몰 시각에 맞춰 석양을 보기 좋은 곳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난생처음 모래사막에서 해가 어둠에 녹아내리는 풍경을 감상했다. 뜨거웠던 태양이 서서히 가라앉자, 사막에는 한기가 돌았지만 낮동안 충분히 달궈졌던 모래만큼은 여전히 따뜻해 오래도록 머물렀다.



나는 겁이 많다. 좀비 영화를 포함해 잔인하거나 스릴러/공포 영화는 일절 보지 못하고 놀이동산도 여전히 싫어한다. '스릴'이 왜 '즐거움'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다. 다만 극복할 수 있는 '두려움'은 있고, 극복했을 때의 성취감은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달았다. 조금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이렇게 겁쟁이인 내가 부상 위험이 높은 클라이밍에 수개월 째 열을 올리고 있다. 내가 스포츠에 취미를 둔 것도 신기하지만, 꾸준히 하면서 잘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 잡혀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클라이밍이 바로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즉각적인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스포츠다. 높은 곳에서 고작 손가락 한 두 마디밖에 안 되는 작은 홀드를 밟아야 할 땐 너무 무섭고 떨어져 다칠 까 봐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드를 밟고 일어서고, 높은 홀드를 향해 발을 굴러 점프한다. 클라이밍에 미쳐(?) 있는 나를 두고 무섭고 다치기 쉬운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걱정하는 이들에게 부상의 두려움보다도 완등 했을 때의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답변하지만 역시 직접 해보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겠지 하고 이내 말을 삼킨다.


해보지 않아서 막연하게 두려웠던 장막을 한 커플 씩 벗겨내다 보면, 사실은 그저 해보지 않아서 낯선 것들일 뿐 별 거 아니었음을 남미 여행에서 여러 차례 배웠다. 사소하지만 샌드 보딩이 그랬고, 고산지역에서의 숨 막히는 트레킹, 사막과 빙하에서의 추위가 그랬다. 남미 여행 그 자체가 내겐 엄청난 도전이었고, 두꺼웠던 두려움의 장막을 조금은 걷어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이 삶이 진심으로 즐겁다. 내일은 또 어떤 장막을 걷어낼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