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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 #7 여행의 일요일

Day 7 이카/ 비울 수록 채워지는 행복의 역설

by Sujin

여행 와서도 줄곧 잠을 설쳤고 또 전날 야간 버스에서 밤을 보내고도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사막에서 뒹굴었으니 어찌나 피곤하던지. 이카에 도착한 그날, 씻고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기절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까무룩 잠에 빠졌다. 일행은 오아시스 야경을 보러 나가면서 나를 깨울까도 싶었지만, 깨우면 안 될 것 같은 아우라(?)를 내뿜으며 자고 있었다고 했다.


여행 일주일 차, 처음으로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나스카로 경비행기 투어를 갈까, 아니면 근처 와이너리 투어를 갈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둘 다 접어두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긴 호흡의 여행엔 일요일도 필요하니까. 마을은 오아시스 한 바퀴를 도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작았고, 사막을 제외하곤 즐길거리도 없었기에 그저 배고프면 먹고 잠이 필요하면 숙소 정원에 마련된 해먹에 누워 낮잠을 청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먹에 누우니 시야에 파란 하늘과 풍성한 야자수 나뭇잎만 가득 찼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그 사이로 비춰 투명하게 드리우는 햇살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제야 이런 순간을 감히 '행복'으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화영 <행복의 충격>에서 저자는 지중해의 프로방스에서 최초로 느낀 감정을 '행복의 충격'이라고 말했다. 이전의 행복이 어두운, 비참한, 젖어있는, 눈물겨운 것이었다면 프로방스에서의 행복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으며, '지금' 행복하지 않은 자는 프로방스에 가지 말라고 한다. 지금 행복한 자만이 그 본질을 만날 수 있으며 그렇기에 프로방스에서 만난 행복은 충격 그 자체라고 고백했다.


흔히 행복해지고 싶어서 짊어졌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고 떠나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여행을 떠나기 바로 직전 세 번째 불안/공황 에피소드를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대학병원서 검사까지 받았다. 심전도 검사, 심장초음파, 운동부하검사를 거쳐 기립경 검사를 진행했다. 마지막 기립경 검사에서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기절했던 시간은 고작 15초 남짓이었지만, 세상은 잠시 꺼졌고 영원히 꺼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안간힘으로 참아야 했다. 여행을 고작 이십여 일 앞두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처방이라곤 실신의 전조 증상이 나타나면 안전한 장소를 찾아 몸을 누여야 한다는 주의사항뿐이었다. 뿐 아니라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걱정과 언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공황과 불안 장애는 더욱 심해져 매주 정신과도 갔다.


몸도 마음도 다 써버려서 밑바닥이 드러난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이와 막 이별했고, 회사는 하루도 견뎌내기 힘들었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마음은 늘 가난했다. 그저 하루빨리 숨 쉴 곳이, 아니 숨을 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철저히 잘못됐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고, 내 못난 가시들만 더욱 돋아졌다. 아무에게도 내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여행에서 누리는 아름다움과 행복해 보이는 모습만 전시하며 진짜라 믿고 싶었다. 그랬던 탓인지 여행을 다녀온 후에 더 큰 에피소드를 겪었야 했다.



그렇게 불안에 쫓긴 채 행복을 좇기 위한 길 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리 만무하다. 표면 상으로는 길 위에서 어떤 정답을 찾아 행복을 만나리란 기대를 가지고 떠난다고 했지만, 그 마저도 실상은 불안을 숨기기 위한 도피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여행 내내 끊임없이 행복한 지 물었고 그럴수록 마음은 조급해졌다.


행복의 순간은 찰나 같아서 지나치면 금세 잊힌다. 그 순간을 관통하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면 그대로 스쳐지나 갈지도 모른다. 행복감이란 그런 순간들을 얼마나 잘 포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능력 인지도 모른다. 순간들을 담아내기 위해선 마음에 빈 공간이 필요하다. 늘 누군가가 또는 어떤 상태나 상황이 나를 행복에 이르게 해 줄 수 있다고 여겼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연인이 있었으면, 명품백을 살 수 있게 연봉이 오른다면, 여행을 더 많이 다닐 수 있다면 하는 이런 가정들은 마음의 공간을 꽉 채우고 행복을 재차 유보하게 했다.


해먹에 누워 하늘을 응시하던 찰나의 그 순간을 ‘행복’으로 부를 수 있을까 물었던 것도 행복이라는 답을 빨리 찾고 싶었던 섣부른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평안했다. 정작 다음 날 떠날 비행기편도 아직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도 걱정보다도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여기서 며칠 더 머무른다고 문제가 될 것도 없지 않나 싶었다. 남미에서 꼭 보고 싶다거나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마음이었다. 이토록 푸른 하늘과 바람을 온전히 느끼고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그늘에 그저 감사한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한 하루였다.


그 전날 이른 잠자리에 든 탓에 보지 못했던 오아시스의 노을을 보러 나갔다. 평온했던 하루의 마무리에 딱 어울리는 온도와 색깔이었다.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불안은 바람에 섞여 날아든 모래처럼 끈적해진 피부에 남아 까끌거리고 입 안에서 씹혔지만, 여긴 사막의 한가운데니까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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