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9 쿠스코/ 남미 여행의 꽃 마추픽추를 향한 여정 준비
페루의 수도는 리마지만 과거 잉카 제국의 수도는 쿠스코였다. 감히 남미 여행의 꽃이라 불리는 마추픽추를 가려면 거쳐야 하는 도시로 고대 잉카제국과 식민제국의 유산이 혼재하는 원주민 비율도 상당히 높은 특색 있는 곳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세 번째) 리마를 거쳐, 이번에는 버스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로 향했다. 비가 왔었는지 축축이 젖은 흙냄새 가득한 쿠스코의 밤에 내렸다. 서둘러 짐을 내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무려 '라면' 집을 찾아낸 것이다.
여행지에서 먹는 식사가 평소(주로 고기, 면, 빵 등)와 별반 다르지 않았음에도 여행에 떠나 온 지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간절하게 한식이 먹고 싶었다. (정작 한국에서는 쌀로 된 밥도 잘 안 먹으면서) 괜한 그리움을 음식으로라도 해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쌀쌀하고도 촉촉한 밤이었고, 라면이야 말로 최고의 완전식품이 아니던가.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이 자그마한 도시에 Korean Noodle 라면집이라니. 이토록 눈물 나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글로 된 메뉴판에 김치까지 내어 준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라면이라니(혹시, 사장님이 한국인이십니까...?) 무척 감격스러운 밤이었다.
날이 밝은 쿠스코에서의 이튿날, 마추픽추로 향할 여정을 준비하러 나섰다.
1. 마추픽추(성스러운 계곡 투어 포함) 1박 2일 예약하기
넉넉한 여행기간이 아니었기에 최대한 현지 여행사를 선택해서 빠르고 쉽게 이동할 방법을 찾았다. 발품 팔아 찾으면 다른 여행사도 많을 테고, 선택 가능한 코스도 다양하고, 또 세부 사항을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파비앙 여행사의 모든 선택지가 포함된 패키지를 선택했다. 한국인 전문 여행사라는 한국어 간판을 내걸고 카카오톡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여행사다. 아르마스 광장에 위치한 여행사에 들러 쿠스코 근교의 잉카 문화유적지들을 포함해 마추픽추로 향하는 왕복 기차표와 숙박까지 포함되어 있는 1박 2일 패키지를 선택했다. 금액은 242달러였고 포함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근교 투어 이동 및 가이드 (친체로→모라이→살리네라스→오얀타이탐보) *입장료는 불포함
오얀타이탐보↔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왕복 열차 티켓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호스텔 1박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마추픽추 버스
마추픽추 입장권 및 가이드
오얀타이탐보에서 쿠스코로 밴 이동
2. 현지인들은 절대 안 할 여행자 필수 페루템(?) 쇼핑하기
마추픽추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을 보니, 현지에서 구입한 듯한 옷가지들을 입고 있었는데 푸른 마추픽추의 배경과 알록달록한 옷이 너무 예쁘게 잘 어울려 나도 쿠스코에서 쇼핑을 했다. 아르마스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 페드로 시장(Mercado Central de San Pedro)이 열린다. 시장에서 55솔(약 2만 원)에 산 알파카스웨터(진짜인가..?)는 패턴도 예쁘고 보풀도 일지 않아 한국에서도 가끔 입는다. 시장은 역시나 복잡하고 정신없긴 했지만 구경해볼 만하다.
3. 마트에서 라면 사기
해외 마트에서 만나면 제일 반가운 게 바로 라면이다. 한국과 다른 패키지를 구경하는 것도, 수출용으로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제품을 찾는 일도 굉장히 즐겁다. 언제 또다시 살 수 있을지 모르니, 보이면 일단 사둔다. 입맛이 없을 때, 속이 느끼할 때, 엄마가 그리울 때(?) 라면으로 해결 가능하니까.
**Pachatutec 파차쿠텍은 거대 잉카 제국을 이룬 영웅적인 잉카의 9대 왕으로 많은 고고학자들이 그가 마추픽추 건축을 지시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다행히 고산병을 피해 가는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나에게도 찾아왔다. 쿠스코도 해발 3300m로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나, 고도가 4600m이나 되는 69 호수까지 다녀왔기에 뒤늦게 찾아온 고산병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루 걸러 해발고도 몇 천 미터쯤 우습게 넘나들었고, 또 여행 초반을 지나면서 긴장이 풀린 탓도 있었던 것 같다. 고산병의 증상으로 우선 소화가 되지 않았고(전날 라면 먹고 점심은 기름진 중식을 먹었잖아!!), 두통이 계속됐고, 무엇보다 배에 찬 가스(종일 꾸르륵꾸르륵) 때문에 복통이 그치지 않았다. 게다가 간밤에 라디에이터로도 덥혀지지 않는 추위 때문에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과 인후통, 그리고 코막힘까지 고루 얻었다. 한국에서 챙겨 간 고산병 약과 종합감기약을 삼켜봤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니 증세가 악화됐다. 저녁으로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신라면 컵라면(?!)을 먹었는데, 역시나 소화가 되지 않으니 속은 더 불편해졌고.. (갈수록 태산) 코막힘으로 숨쉬기도 어려워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니 통증의 감각이 더욱 도드라졌다. 신경안정제까지 복용한 탓에 정신은 몽롱한 와중에 오히려 두통과 복통 두 가지 감각만 또렷해지는 것이다. 관자놀이와 뱃속의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니 내 몸에서 진짜 가시가 돋아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며, 또 행여 내 기침 소리로 누군가를 깨우진 않을까 걱정하는 힘겨운 밤을 지나고 있었다.
아. 고산병 엄청 고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