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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 #9 쿠스코 수학여행

Day 10 잉카제국의 위대한 유산을 찾아 성스러운 계곡 투어

by Sujin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45인승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쿠스코 근교의 잉카제국 문화유적지를 둘러보러 떠나는데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한국에서는 성스러운 계곡 투어(줄여서 '성계투어')라 부르는 것 같다. 수십 명의 여행자들이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유적지에 관한 설명을 듣고, 궁금증이 많은 이는 질문도 하고, 그다지 큰 관심도 없지만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모습이(그게 나다) 영락없는 수학여행 모습과 닮았다. 게다가 가이드는 우리가 타고 온 버스의 번호판도 잊으면 안 된다는 안내도 빼놓지 않는다. 주차장에는 우리가 타고 온 버스뿐 아니라 다른 학교(?) 버스도 있으니까 혼동해 타버리면 큰일이다. 중간에 주어지는 휴게시간에 나가 기념품이나 간식을 사서 들어와 버스에서 별 시답지 않은 가이드의 농담에도 낄낄댔다. 처음에는 가이드 말에 경청해 보려고 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가이드는 영어가 유창했지만), 오늘 저녁으로 뭘 먹는가가 더 중요한 주제가 되어 떠드는 모습까지 정말 들뜬 수학(修學)은 없는 수학여행이었다.


여기서 쿠스코 수학여행에서 방문한 네 곳을 소개한다.


직접 제작한 지도이며, 실제 지형과 다를 수 있습니다.




친체로(Chinchero)

코스코 우루밤바 지구의 일곱 마을 중 하나로 잉카의 후손들이 여전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작은 인디언 마을이다. 주민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직물 생산품들을 직접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며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직물을 염색하는 과정을 짧게나마 시연하기도 한다. 여인들은 머리를 길게 양 갈래로 땋고, 전통모자인 몬테라스를 쓰고 치마인 폴레라스를 입고 있다.




모라이(Moray)

아름다운 계단식 원형 밭으로 잉카의 농업 연구소 역할을 했다. 각 계단마다 해발고도, 온도, 습도, 토질의 조건이 달라 전 국토의 기후를 한 데 모아놓은 형태로 계단마다 다른 식물들을 재배해 연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계단의 높이 또한 바람과 햇빛이 들어오는 양을 조절하기 위해 천차만별인데 가장 햇빛을 많이 받는 아래 중심부와 가장 위쪽의 기온차가 15도 이상이다. 감자, 밀, 보리, 귀리, 조, 콩, 옥수수, 코카 등 20가지 이상의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태양신에게 제사를 바치기 위한 곳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살리네라스(Salineras)

안데스 산맥의 지각 융기로 소금을 채취할 수 있는 염전이다. 산의 경사면에 작은 우물이 3천 개나 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온천수가 솟아나며, 온천수는 가느다란 수로를 지나 작은 우물을 채우고 그 우물이 차면 아래 우물이 다시 채운다. 우물이 채워지면 수로를 막은 뒤 약 10cm 높이의 고체 소금이 생길 때까지 안데스 태양빛에 한 달 정도 말려 소금을 재취한다.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

페루 레일 기차를 타고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로 가기 위해서는 오얀따이땀보 마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곳은 비라꼬차(Viracocha: 태양의 신)를 비롯한 신들을 모시기 위한 신전이자, 잉카 저항의 지도자 망코 잉카의 마지막 항전지였고 임시 수도이기도 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계단식 테라스가 위엄을 자랑한다. 테라스를 오르면 42톤 무게의 거대한 거석 6개로 세워진 태양의 신전이 있다. 거석은 운반 도구나 바퀴 없이 오직 사람의 힘만으로 끌어올려졌다고 한다. 요철 모양으로 깎아 붙이거나, 돌과 돌 사이에 가는 돌을 끼워 넣은 잉카인들의 석조 기술을 볼 수 있다. 유적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면 왼편 산 중턱에 사람 얼굴 형상이 보이는데 잉카인들은 이를 비라꼬차라고 여겼다. 시간에 따라 햇빛이 비치는 각도가 달라지고 이에 비라코차의 눈으로 보이는 부분의 음영이 변하면서 마치 비라코차가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설명 출처: 남기성, 난생 처음 페루 : 처음 페루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들」, 메이트북스(2018)





고된 여정이었다. 고산병 증세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고, 코막힘이 심해지고 기침이 잦아졌다. 버스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몇 번이고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가이드를 열심히 좇아 다니며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들으려고 노력했다. 잉카인이 얼마나 지혜로운 민족이었는지, 그들이 남긴 유산이 얼마나 훌륭한 지, 그리고 그 거대함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되었음을 듣는다. 선대의 지혜와 위대함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가이드였지만, 잉카인의 후손(인지 확실치는 않지만)으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이는 그의 눈빛과 말투와 행동을 관찰하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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