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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 #16 소금 사막의 아침

Day 16 우유니 투어 지옥 2

by Sujin

쪽잠으로 두 시간이나 잤으려나. 또다시 새벽 세 시에 출발하는 은하수(스타라이트+선셋) 투어다. 이미 이전 투어를 마치고 왔을 때부터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 정정. 남미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몸상태가 악화되기만 했다. 여행 초기부터 고산병과 감기로 고생했는데, 열이 내리고 콧물이 멈춘 이후에도 여전히 기침이 멎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마른기침을 토해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목과 가슴 통증도 나날이 짙어져 갈 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수면 패턴도 완전히 무시한 채 또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니, 스스로에 너무 가혹한 짓이었다.


다시 빛 한 점 없는 사막 한가운데 내렸다. 바로 고백하자면, 난 이 투어가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뇌가 반쯤 수면상태에 몸만 깨어 있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는 전날 동일한 투어보다 좀 더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같이 투어 하는 동행이 늘기도 했고, 다 비슷한 또래에 벌써 두 번째 같이 하는 투어라 꽤 편안해진 상태기도 했다. 한 명씩 순서대로 차 위로 올라가 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 역시 장노출을 활용해야 했기 때문에 10초 간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동행들은 정지 상태가 풀릴 때까지 숫자 10을 세주기도 하고, 재밌는 포즈를 취하면 깔깔깔 웃어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북돋아줬다.



그런데, 문제는 졸리기만 한 게 아니라 춥기도 무척 추웠다는 거다.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차례가 끝나자마자 차 안으로 홀로 피신했다. 속까지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데다가 춥고, 졸리고, 게다가 간간히 기침까지 토해내는 내 몸이 어떻게 버티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눈을 감았지만, 그대로 잠이 들면 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게 되는 상태였다. 잠이 들면 안 될 거 같아서 심호흡으로 숨을 고르며, 계속 마음을 진정시키고 뇌를 깨우기 위해 노력했다. 한 차례 동행하는 친구가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차를 열었다가 닫은 그 이후부터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이 들었던 건지 정말로 기절을 했던 건지 명확치가 않다.


해가 서서히 올라오면서 그나마 추위가 좀 누그러지자 그제야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얼마나 어떻게 흘렀는지 전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사막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와 형언하기 힘든 보랏빛 여명이 주는 감동은… 사실 없었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낭만적 여행의 속성은 피로와 졸음, 그리고 추위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나마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 건, 그 전날 오후부터 한국팀 여행자들을 인솔해 준 가이드에게 팁을 얼마나 주면 좋을지 함께 이야기하던 장면과 시내에 도착해 가이드에게 팁을 건네자 해사하게 웃던 그의 얼굴 정도다.



자, 이제 우유니에서 할 수 있는 투어는 전부 했으니, 이제 늘어지게 잠 좀 자 볼까? 천만에… 2시간 후, 우유니에서 출발해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까지 종단하는 2박 3일 투어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짠 사람은 바로 본인이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욕심은 금물인데 말이다. 내 체력과 정신력을 과대평가한 탓이다.


숙소에 들어와 단 몇 분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그토록 피곤한데, 이제야 침대에서 마음 편히 눈을 붙일 수 있는데 왜 잠은 안 드는 걸까? 그때 때마침 한국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 건지, 내가 힘듦을 토로할 친구가 필요해 먼저 연락을 취했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울었다. "나 집에 가고 싶어" 여행하기 싫다며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다독이던 친구가 통화 말미에 ‘수진이 우니까 마음이 아프지만, 너 좀 귀엽다.’ 한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혼자서 세상 끝에 가보겠다며 훌쩍 떠나온 건 난데, 이제 여행 시작한 지 보름 밖에 안 됐으면서 다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다고 아이처럼 엉엉 우는 꼴이라니, 근데 친구에게는 그게 어째서 귀여워 보였던 걸까. 아마 친구는 내가 늘 감정 표출을 해버리고 말지만, 그게 정말로 소중한 사람 앞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그리고 귀엽다 한 마디로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는 걸 알았던 거다. 비록 몸은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늘 마음으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사이였다. 역시, 여행은 내가 애정하는 존재들을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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