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 토레스 델 파이네 당일치기 버스투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코스에 따라 트레킹 일정을 계획할 수 있다. 4박 5일 코스, 7박 8일 코스, 9박 10일 코스가 있다. 이런 코스들은 미리 산장을 예약해서 캠핑 사이트에 텐트를 치고 묵는데, 산장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라 한다. 애초에 트레킹 할 생각이 없었기에 시내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버스 투어를 하기로 했다. 국립공원 내 버스로 이동이 가능한 유명한 몇 군데를 추려서 갈 수 있는데, 대부분의 투어사가 제공하는 코스는 거의 동일하다.
남미여행에는 사계절 옷이 전부 필요하다. 열대기후부터 냉대기후까지 모두 겪기 때문이다. 두꺼운 재킷을 챙길까 싶었지만, 캐리어에 넣고 계속 짊어지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대신 바람막이 재킷을 두 개 챙겼다. 계절은 여름이었고, 극지방까지 가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춥겠냐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추웠다. 레깅스 위에 기모레깅스를 하나 더 입고, 운동복 바지를 하나 입어 바지만 세 겹 입었다. 상의는 히트텍 위에 또 다른 티셔츠, 스웨터를 입고, 바람막이를 두 개를 겹쳐 입어 총 다섯 겹을 입었다. 귀마개 대신 쿠스코에서 구입한 헤어밴드, 전날 시내에서 저녁 먹을 때 너무 추워서 장만한 목도리까지 완전 무장했다. 그래도 여전히 입이 덜덜 떨렸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아타카마 사막에서 더위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제는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불가피하게 고도와 날씨를 짧은 시간 넘나들기 마련인 여행이라지만, 추위도 더위도 고도도 천천히 여유롭게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여행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평생 등산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남미 여행을 위해 처음 구입하고 신어보는 등산화는 너무 무겁고, 자꾸 풀리는 신발끈(도대체 어떻게 묶어야 안 풀리는 건지?) 때문에 짜증이 났다. 너무 껴입은 몸도 무겁고 움직임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추운 것도 괴로웠으니, 풍경도 눈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물론 무척 아름답긴 하다) 불평만을 털어놓기 싫으니, 자연스레 말수도 줄었다. 이렇게 괴롭게(?) 버스로만 실려 다니는 게 진짜 내가 원하던 여행이 맞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짧은 남미 여행 동안 즐겁고 행복한 순간보단 힘들고 아프고 괴로웠던 기억이 훨씬 짙다. (그런데 다시 남미 가서 6개월 살다 온 건 참 아이러니하네요?) 긴 여행이 아니었음에도 하루하루 지쳐갔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은데 여행은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 양가감정도 들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고된 여행을 힘든 대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었을 거 같다. 끊임없이 왜 여행하고 있는지 물으면서 그래도 거기까지 갔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었다. 그러는 동안 몸은 쉬지 않고 움직였지만, 마음은 그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있었다. 난 어디든 마음먹은 데로 갈 수 있는 동시에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