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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May 29. 2023

[남미 여행] #21 소소한 불행에 익숙해지길 택했다

Day 21 푸에르토 나탈레스/ 혼자 자는 첫날밤



11월 푼타아레나스의 밤은 무척 짧고, 또 전 날 꿀 같은 낮잠을 잔 탓에 아침 일찍 일어났다. 배는 고픈데 아직 문 연 식당이 없어 말똥말똥한 눈으로 침대에서 식당이 열기만 기다렸다가 주말 아침의 커피를 마시러 다녀왔다. 미처 다 먹지 못한 케이크(남미 케이크는 너무 x100 달다)를 포장해 바닷가에서 마저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푼타아레나스의 이튿날도 내내 흐리고 춥고,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리마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바다였는데, 거칠고 쓸쓸했으며, 내 케이크를 노리는 갈매기들만 반길 뿐이었다.



푼타아레나스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 조금 넘게 이동해 푸에르토나탈레스(칠레)에 내렸다. 도시의 느낌보다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가까웠고, 토레스 델 파이네 트래킹의 베이스캠프 격인 곳이라 관광객들이 많아 도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분위기와도 동떨어져있었다. 


벌써 일주일째 하루도 빠짐없이 머무르지 않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2박 3일을 밴으로 700km 넘게 이동하며 내려왔고, 아타카마 사막에서 하룻밤, 그다음 날은 산티아고의 공항에서 밤을 새우고, 또 푼타아레나스에서도 하룻밤만 묵었다. 짐을 풀고 몇 시간 후 금방 다시 짐을 꾸리기를 반복했다. 매일 어딘가로 떠나고, 찰나만 머물렀다. 여행의 속성이 필히 어딘가로 떠나는 거지만, 이렇게 매일을 쉼 없이 떠나기만 해도 괜찮을까. 그 도시의 공기가 피부에 닿기도 전에 또다시 공해를 가르고, 사막의 먼지를 헤치며 계속 나아가기만 했다. 그래서일까 마음도 늘 어딘가 닿지 못하고 붕 떠있는 듯 진정되지 않았다. 또 모르긴 해도 수면 부족이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기도 했을 거다. 늘 잠에서 깨어날 때면 꼭 달음박질을 막 끝낸 사람처럼 심장이 쉬이 가라앉지 못하고 계속 뛰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는 리마에서 여행을 시작 이후 처음으로 혼자 지낼 방을 구하기로 했다. 동행하는 친구들은 다인실 방이 있는 호스텔로, 나는 근처 오래된 작고 허름한 호텔(이름도 los antiguos - 오래된 사람들)에 따로 묵기로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애써 밝은 척하거나, 부러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홀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비가 내린 직후라 처량한 풍경이었지만, 오랜만에 혼자인 시간에 설레기도 하고, 또 마음이 몽글대기도 했다. 


줄곧 동행하는 친구들과 한 방을 썼다. 어떤 때는 처음 만난 다른 여행자들(남자도 외국인도 있었다)과도 같은 방에 묵었다. 소등 이후 아무리 조용하고 한 침대는 온전히 내 몫이라고 해도, 같은 공간에 다른 이가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신경이 쓰였다. 기침이 너무 심했지만 누군가의 잠을 깨울까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을 때, 이층 침대에서 뒤척임에 침대가 흔들릴까 허리가 아파도 자세를 바꾸지 못했을 때 그랬다. 그게 아니라도 누군가 한 공간에서 잔다는 건 어쨌거나 어색하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잠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보자면. 잠자기 전 늘 처방받은 약(수면제는 아니었다)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남미 여행에서 새로 생긴 수면 루틴은 반드시 영상을 재생하는 거였다. 자려고 누웠을 때의 그 적막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숨소리, 코 고는 소리, 벌레 소리나 창 밖의 차 소음 따위로는 해결이 안 되고, 누군가의 말소리가 필요했다. 드라마는 내용이 궁금해져서 오히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잠이 달아나 버렸고, 흘려듣기 좋고 텐션 높은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나오는 예능이 적당했다. 아무리 피곤하고, 또 두 시간 후면 일어나야 하는 쪽잠에서도 예능을 틀고 귀에 이어폰을 꽂아 그 적막을 누군가의 웃음소리로 채워야 잠에 들었다. 아니, 그래야만 잘 수 있을 거 같았다. 한 번 괴로운 마음에 갇히면 정처 없이 떠돌며 잠에 들지 못하니, 어떤 생각도 고개를 들 틈을 주지 않도록 방해하기 위해 고안해 낸 궁여지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밤의 그 적막이나 잠들기 직전에의 사색이야 말로 붕 떠있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 기회들을 과장된 웃음과 의미 없는 소음으로 차단했다. 나는 차분히 나를 응시하고, 이전의 나를 소화시키고, 오늘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또 내일을 기대해야 했지만 그 어느 하나 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겁이 났을까. 여행 이십여 일 만에 혼자 시간을 갖게 됐을 때가 더없이 좋은 기회였는데도 나는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소소한 불행에 익숙해지고 체념하는 편을 택했다. 여전히 밤의 적막은 끔찍했으며, 여행은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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