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7 엘칼라파테 울보의 여행인가요
엘 칼라파테에서 온 이튿날부터 이틀은 빙하 투어를 하고, 나흘 째는 근교인 엘 찰튼에 위치한 피츠로이 산행에 나설 계획이었다. 피츠로이는 파타고니아의 최고봉으로 바람이 거세고, 산세도 거친 산으로 유명하다. 물론 피츠로이에 오르는 게 아니라, 전망대까지 오르는 트레킹이다. 따로 투어사를 예약하지 않고, 엘 칼라파테에서 왕복하는 버스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등반을 완료하고 돌아오는 일정을 계획할 수 있다. (물론 당일 등반은 체력에 따라 힘들 수도 있어, 엘 찰튼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이 피츠로이는 토레스델파이네 트레킹보다도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컨디션이 좋아졌다고는 했지만 이미 트레킹에 겁이 난 상태여서, 엘 칼라파테에 오면서부터 그날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봐야지’라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물론 피츠로이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등반하고 온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며, 잠시 나의 나약한(?) 의지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자책을 너무 많이 해 온 탓에 그것도 그만 접었다.
올 1월에 엘 칼라파테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힘든 일정도 아니고, 또 이전에 트레킹 하지 못한 게 내심 너무 아쉬워서 다른 건 몰라도 피츠로이는 반드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오르지 못했다. 물론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끝까지 오르지 못할 것을 직감한 나는 곧바로 목표 지점을 카프리 호수로 변경했다. 카프리 호수는 전체 산행에 4분의 1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피츠로이 봉우리도 정말 아름답다. 그래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로스 트레스 호수까지 오르고 싶었는데, 피츠로이와의 인연은 거기까지 인 듯싶다.
아무튼 그 당시 피츠로이 트레킹을 가는 대신 엘 칼라파테 시내에 남아 오랜만에 늦잠도 자고, 여유롭게 동네 산책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홀로 방에서 뒹굴거리거나 숙소 발코니에 마련된 해먹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해 질 무렵에는 노을을 보러 근처 호숫가에 갔다. 갈 때마다 노을이 무척 아름다워 한참을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전히 이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조금 울었다. 몇 달 전 헤어졌던 연인을 잊지 못했고, 한 달 후면 서른이 되지만 여전히 나의 이십 대와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 두지 못하고 늘 불평만 하는 어리석음,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는 데에 두려움, 그리고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안일함은 이별하고 싶은 감정들이었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떠나왔지만, 정작 떨쳐내지 못한 미련한 마음들만 잔뜩 들고 다니며 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또, 이별했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나를 떠난 것과 내가 떠나보냈던 것들에 미련이 없다고 여겼는데, 실은 과하게 쿨한 척했던 행동들은 자격지심의 발로였다. 못 가본 길은 떠올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사실은 내심 못 가본 그 길들이 내가 걸었던 길들보다 아름답지 않길 바라는 못된 마음도 품었다. 나를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 그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나에게서 멀어져 간 거라고. 더 나아가 떠나간 이들이 나보다도 훨씬 아파하며, 오랫동안 후회할 거라고.
늘 나는 후회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후회하지 않아'를 떠올릴수록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던데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에 더 이상 부정할 수도 없을 만큼 후회되는 일들이 넘쳐났다. 후회가 늘어갈수록 겁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곧 서른이 될 터였다. (서른에 꼭 큰 의미를 둔 건 아니지만) 서른이 되면 여전히 이별하지 못한 것들과 차례차례 이별을 해야겠다는 포부를 다짐을 할 뿐이었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그 호숫가에서 나는 이번에는 드디어 이별하게 된 것들을 생각하며 또 한 번 울었다. 사랑했지만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과도 완전히 이별했음을 받아들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딱 일 년 후 부모님 집에서 독립했고, 그 후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 괴롭던 직장생활도 완전히 정리하고 다시 아르헨티나에 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생각했다. 지난 미련했던 마음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구나. 지난 사랑과의 이별을 받아들였지만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데는 여전히 두려웠고, 해묵은 감정들과는 제대로 된 이별이 아닌 잠정적 회피를 선택했다. 퇴사는 곧 침몰 직전의 배에서 탈출할 것과 다름없어서 도망치다시피 무작정 아르헨티나로 떠나온 거라 미래를 더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아르헨티나로의 도피를 용기라고 포장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두 번의 엘 칼라파떼를 떠올리면, 그 멋지고 거대한 빙하보다도 노을과 그 노을을 바라보면 스스로 부끄러워하던 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 느낀 부끄러움과 다짐들을 잊지 않고,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번번이 좌절한다. 언제쯤 나를 이해하고 나와 화해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