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8-29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
지구에는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이 여럿 있다. 남미의 최남단에 위치한 '우수아이아'도 그중에 하나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세상의 끝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주여행을 하기 전까지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우수아이아'라는 도시는 홍콩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홍콩을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아휘'와 '보영'은 여전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아휘는 보영이 떠날까 그의 여권을 숨기면서도 늘 제멋대로 떠났다 불현듯 "다시 시작하자"며 찾아오는 보영에게 애증을 느낀다. 여권을 찾으러 온 보영에게 돌려주지 않겠다고 말하며 두 사람은 결국 주먹다짐 끝에 헤어진다. 한 편, 식당 일을 하며 아휘와 친해진 '장'은 일을 그만두고 우수아이아에 가기 전, 아휘를 추억하기 위해 그에게 한 마디 하라며 녹음기를 건넨다. 슬픈 이야기라면 '세상의 끝'에 묻어주겠다는 말과 함께. 세상의 끝 등대에 닿은 장의 녹음기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영화 속 대사처럼 세상의 끝에 슬픔을 버리고 오겠다는 소망을 서른이 되기 전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 가장 첫 번째에 올렸다. 그래서 때론 언젠가 떨쳐 버릴 슬픔들을 영광처럼 달고 살기도 했다.
나를 남미로 이끈 그 바로 그 도시 '우수아이아'에 도착했다. 계절상으로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지만, 날도 흐리고 바람도 거세게 불어 살이 에는 추위였다. 도착하자마자 투어사가 문 닫기 전에 서둘러 '비글 해협'투어를 예약하니, 가고 싶었던 식당의 웨이팅을 놓쳤다. 킹크랩을 파는 식당인데, 오픈하기 한참 전부터 줄이 엄청났다. 그날 게가 소진되면, 아무리 오래 기다렸다고 해도 먹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음 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항구로 나섰다. 이튿날도 춥고 구름 잔뜩 낀 흐린 날씨긴 했지만, 드디어 세상의 끝 등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렜다. 비글 해협 투어는 배를 타고 바다사자, 물개, 가마우지를 구경하고, '세상의 끝 등대'가 있는 섬과 펭귄 서식지 섬까지 둘러보고 돌아온다. 영화 속에서는 '장'이 등대에 직접 오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섬에 내릴 수 없다. (크루즈가 정박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섬이다.) 또한 펭귄섬에도 내리지 않고, 배 위에서 펭귄들을 구경한다. (섬에 내리는 '펭귄투어'가 따로 있다.) 등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살짝 아쉬웠다. 게다가 날이 너무 춥고, 바람도 거세게 불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잠깐 갑판으로 나와 사진 몇 장 찍고 선실로 들어와야 했다. 그 와중에 사람들로 붐비고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멋진 사진을 찍기란 쉽지 않았다. 역시 영화의 낭만적 요소를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도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졸음'이었다. 배 멀미가 걱정돼서 여행 전에 멀미에 특효라는 약을 미리 해외에서 주문해서 챙겨갔는데, 정말로 효과가 너무 좋아 말썽이었다. 배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져서 이동하는 내내 잠을 잤다. 중간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을 용케 듣고 깬 게 신기할 정도로 사진 촬영만 겨우 하고 들어와 의자 두 칸에 커다란 몸을 구겨 자고 깨기를 반복했다. 육지에 내리니 투어가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몽롱했다. 세상에 세상의 끝 등대를 보러 이곳까지 비행기를 몇 번이나 타고 날아왔는데, 졸음과 추위가 방해한 탓에 허무하리만치 감흥이 없었다. 다행인 건지 아쉬움보다도 헛웃음이 짙은 세상의 끝 등대 가보기 버킷리스트를 지웠다. 아참, 덕분에(?) 슬픔을 버릴 겨를도 없었다.
올 1월에 또 한 번 우수아이아의 세상의 끝 등대를 보러 갔다. 처음 갔을 때는 그토록 원하던 버킷리스트를 이루었다는 감흥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즐거웠다. 이 삶에 두 번이나 허락된 세상의 끝, 두 번의 기회를 만든 나 자신의 겁 많은 용기와 늘 나를 믿어주는 가족과 친구들, 여전히 반짝이고 애정하는 것들이 많아 기쁘고 감사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하늘도 맑고, 심지어 날이 따뜻하기까지 했다. 졸음과 추위에 싸우지 않아도 돼서 좀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시 기억에 남기게 됐다.
투어를 마치고 전날 못 간 킹크랩 레스토랑에 갔다. 오픈 30분 전에 갔는데 다행히 꽤 앞 쪽에 섰다. 우리보다 먼저 줄을 서 계시던 분들은 단체로 패키지여행을 오신 한국 어르신들이었는데, 바로 전 도시였던 엘 칼라파떼에서 이미 두 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빙하 투어를 위해 배를 기다리던 선착장에서 마주쳤고, 또 한 번은 초밥집에서 식사하다가 뵈었다. 여행 동선이 비슷하다 보니 여러 번 마주치게 됐다. 그러면서 그중 한 분이 '허락도 없이 이러면 안 됐는데...' 하면서 본인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하나 보여주셨다. 초밥집에서 본 우리의 뒷모습을 올리며, 자유 여행하고 있는 우리의 젊음과 용기가 대단하다고 적으셨다.
나는 그분들을 보면서 부모님을 떠올렸었다. 부모님 연배인데 이토록 멀리 여행할 생각을 하신 것도, 젊은 우리도 체력적으로 힘든데 건강하게 다니시는 것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여행을 하시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다. (이 분들과는 한국으로 돌아올 때 경유하는 런던에서 또 한 번 더 마주쳤고, 같은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와서 결국에는 인천공항에서 마지막 인사하고 헤어졌다.)
여행할 당시 나는 서른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젊지만 어리지 않은 스물아홉의 나는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부러워했다. 이십 대 초반의 대학생 친구들을 보면, 어린 나이에 여행할 수 있는 용기와 체력, 젊음이 부러웠다. 이 여행이 끝나면 회사가 아니라 학교로 복귀한다는 것도 부러웠다. 이십 대 중반에 대학을 막 졸업하고 취업 직전에 세계 여행을 몇 달씩, 더 길게는 일 년 넘게 하고 있는 사람들도 부러웠다. 또 삼십 대의 퇴사하고 남미여행을 떠나온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서른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저렇게 오랫동안 여행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앞서 만났던 부모님 또래의 어르신 분들도 휴양지도 아닌 이 먼 곳을 여행을 하며 고산병도 겪고, 험난한 트레킹도 하시는 게 너무 대단해 보였다.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매일 꾸역거리며 여행 일정을 수행하고 있었고, 늘 미련한 생각들로 마음 한편이 무거웠고, 또 여행이 끝나고 곧바로 출근할 생각만 해도 우울했다. 이런 마음으로 여행하는 나 자신이 늘 초라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저 용감하게 자유여행하는 젊음이 부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구나.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건 나뿐이구나.
내가 퇴사하고 무작정 아르헨티나에 장기체류를 결심하면서, 퇴사하고 장기여행하는 그 용기를 행하는 부러워하던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나의 아르헨티나행은 용기보다는 현실 도피에 가까웠지만, 주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줬다. 정말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을 한 건 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나의 시절을 분명 부러워했다. 내가 느끼기엔 별 거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꼭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대단한 일이 수 있다. 반면에 내가 부러워하던 용기들도 사실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겪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막연히 동경하고, 막상 해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임을 깨닫곤 한다.
세상에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세상의 끝이란 존재하진 않지만, 대부분 그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자신만의 울타리를 짓고 세상의 끝 한계를 정하는 것도 자신뿐이다. 각자만의 등대를 가지고 세상 끝에 제각기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모든 지점이 끝이자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달을 때 각자의 세상은 넓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문뜩 내 세상은 얼마만큼 넓어졌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