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2 가장 뜨거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셋째 날은 홀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선 땅고의 발상지인 항구마을 라 보카로 갔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건물 외벽을 칠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름다운 골목으로 유명한 곳이다. 관광객들이 많고, 치안에 유의해야 하는 곳이라 흥에 취해(?) 타인에게 핸드폰을 넘기고 사진 요청을 하긴 겁이 났다. 알록달록한 색상을 배경으로 셀카 남기기에 그저 만족했다. 골목 곳곳에서 땅고 의상을 입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한 편, 레스토랑 앞에 설치된 작은 간이 무대에서도 남녀가 땅고를 춘다. 무대의 크기는 전혀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전날 봤던 땅고는 강렬한 라이브 연주와 화려한 의상, 무대로 관객을 현혹했다면, 이곳에서는 단지 두 댄서의 스텝 소리와 두 사람의 눈빛, 숨소리로 그 모든 것들을 메운다.
두 댄서의 뜨거운 눈빛만큼이나 날도 무척 뜨겁다. 날이 너무 더워서 쉽게 잃지 않았던 입맛도 상실했다. 오렌지 주스 한 잔으로 해갈해보려 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다.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야겠다. 이번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카페 토르토니’로 이동했다. 1858년에 프랑스 이민자가 오픈한 카페로, 당시 파리의 문화 엘리트들이 모였던 카페 ‘Tortoni’에서 이름을 따왔다. 16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카페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저명한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특히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땅고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이 이곳 카페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아닌 <미드나잇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한다면 분명 이 카페에 방문할 것이다. 젠틀하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백발의 서버가 친절하게 주문을 받는다. 밀크셰이크와 Dulce de leche(우유 캐러멜)가 들어간 (끔찍하게) 달콤한 케이크를 주문했다. 아무리 케이크를 좋아하는 나라도 둘세 데 레체의 달달함은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카페 토르토니는 대통령 궁(Casa Rosada)이 위치한 마요광장에서부터 뻗어진 마요대로(Av. de Mayo)에 위치하고 있다. 마요대로에서는 자주 시위대의 가두 행진이 벌어지기도 한다. 당시에도 카페서 문을 열고 나오니, 도로가 통제되고 시위로 들썩이고 있었다. 도로를 점령한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당시에는 어떤 시위인지 알지 못했지만, 시기상 그날이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이었던 것을 고려해 보면 그와 관련된 시위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TMI.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는 고질적 문제지만, 당시 대통령은 2018년 IMF 구제 금융 요청으로 경제가 더욱 파탄에 이르도록 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재임에 실패했다. 최근에도 연일 아르헨티나 경제에 관련된 기사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올 연말에 또 대통령 선거가 있다.)
2019년 연말 남미 전역은 시위로 들끓고 있었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격렬해진 시위 때문에 볼리비아의 라파즈, 그리고 칠레의 산티아고를 건너뛰고 왔다. 그래서 해당 시위의 성격은 몰랐지만 자칫 격렬해지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빠르게 시위 행렬에서 벗어나 택시를 타고 Malba(Museo de Arte Latinoamericano de Buenos Aires)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회화 작품에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이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TMI, 현재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 한 점이 늘어 총 두 점의 자화상을 감상할 수 있다. 작년(2022년 12월)에 두 번 더 프리다 칼로 작품을 보러 갔다.)
프리다 칼로의 생을 알고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릴 때 소아마비로 오른 다리가 불편했으며, 10대 후반에는 교통사고로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기적적을 걷게 되었지만, 후유증은 평생 그녀를 괴롭혔고 훗날에는 절단까지 해야 했다. 그녀는 멕시코 미술의 혁명가로 불리던 21살 연상의 리베라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만, 반복되는 그의 외도와 더불어 몇 차례의 유산으로 고통받았다. 리베라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에 정신이 피폐해지면서도 그를 떠나지 못했고, 말년에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여러 차례 수술은 했으나 실패해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지냈다고 한다. 누워 지내는 중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썼는데, 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발견했다. "Espero alegre la salida y espero no volver jamás.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정확하게 그녀가 뜻하는 바를 이해하고 한글로 옮기는 데 한계가 있겠지만, 삶을 salida(외출, 소풍)로 표현한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삶의 행복을 원하면서도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느껴져서 와닿았다. 혹은 충분히 열심히 살았고 행복했으므로, 더 이상 이 삶에 미련이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그녀는 이 글을 병상에서 썼는데, 남은 삶에 대한 희망으로 이 글을 썼을까 아니면 지난 힘들었던 삶에 대한 소회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땡볕 아래 지친 몸을 쉬기도 잠시. 숙소의 공용 공간이 사람들로 분주하고, 민박집 사장님은 아사도(아르헨티나식 바비큐) 준비에 한창이시다. 한인 숙소에서 특별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숙소에 예약 문의 문자를 남겼을 때, 해당 일자에 바비큐 파티가 있는데, 이 파티를 방송 촬영할 예정이라며 참가의사를 물으셨었다. 동행하던 친구들과 함께 참가하겠다고 했다. 어떤 촬영인지 정확한 정보는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유튜버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여행 와 한인민박을 체험하는 유튜브용 촬영인 줄 알았다.(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곧이어 아르헨티나 여행자 오픈 채팅방에 김재중 씨가 촬영을 위해 곧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입국할 것이라는 정보가 올라와 그 촬영의 주인공이 김재중 씨라는 걸 알게 됐다. (이때도 김재중이 유튜브도 하나?라고 생각했다.) 김재중 씨면 좀 규모가 있는 촬영인가... 그렇다면 너무 섣부르게 촬영을 수락한 것 같은데…? (큰일 났네.)
전날 시내 일정 중 잠시 스타벅스에 들러 가졌다는 미팅은 바로 해당 프로그램 작가와의 미팅이었다. 작가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하고, 우리들 각자가 여행을 하게 된 사연을 들었다. 동방신기 세대였던 우리는 평소 가지고 있던 김재중에 관한 감상(?)을 전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에 모든 친구들이(10명 중 9명이) 동방신기 팬이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동방신기 팬이 아니면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것만 같은 압박감에 나도 모르게 "나도 동방신기 팬이야"라고 말한 기억이 났지만, 이 사실을 전하진 않았다. 난 동방팬이 아니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홀로 해외여행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스타 김재중이 동행 여행자를 직접 구해서 함께 여행하는 콘셉트였다. 동행을 찾을 첫 장소로 내가 머문 한인 민박이 선정되었고, 그곳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같이 여행하고 싶은 동행인을 선택하도록 했다. 우리 이외에도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아르헨티나에 체류 혹은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사도 파티에 함께 했다. 각자 여행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다음 여행 계획을 밝히며 저녁식사를 이어나갔다. 우리의 사연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평범해서 말할 기회가 많진 않았고, 나중에 아마 그 마저도 편집된 것 같다. (사실 방송분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워낙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된 사람들의 사연은 꽤나 다채로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로워서 온전히 대화에 집중했다가도, 때때로 식탁 위에 놓인 카메라에 분명 턱살이 어마어마하게 잡힐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흔들리기도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김재중 씨가 입국 면세점에서 사 왔다는 말벡 와인이었다. 원래도 술을 좋아하지 않고, 와인에도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아르헨티나가 말벡으로 유명하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처음 마셔 본 말벡이 너무 맛있어서 홀짝홀짝 마신 탓에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인터뷰한 기억이 난다…(김재중 씨가 여행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이것도 편집됐나...?) 어쨌든 말벡 와인에 너무 감동한 나머지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말벡만 찾았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 아르헨티나산 말벡은 와인 리스트에서 찾기 쉽지 않을 때였다. 그런 와중에도 늘 말벡만 찾으니 내가 다시 아르헨티나에 가겠다고 했을 때 몇몇 친구들은 “말벡 마시러 가는 거야?”라고 물을 정도였다. 내가 애정하는 것 중 하나인 말벡 와인을 처음 알게 해 준 사람이 김재중 씨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과장해서 어쩌면 아르헨티나와의 인연을 계속하게 해 준 것 중 하나가 말벡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말벡을 마실 때마다 그곳을 그리워했을 테고, 결국에는 다시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실행할 때까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감정들이 가느다랗게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에 증폭되어 버린 거 같다. (상상 속에서는 말벡 와이너리 농장에서 살면서 와인을 배우고, 말벡 전문가가 되어 한국에 수출(?) 성공, 그리하여 나는 부자가 되었다.) 가벼이 지나쳤던 감상과 상상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상상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생각하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은 정말 즐겁다. 그렇지만 나는 상상 속에만 살 수 없다. 늘 꿈을 꾸고 상상하되, 상상을 실재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독히 현실적인 일들을 피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와인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정말로 와이너리에 취업(?)했을지도 있지!)
그렇게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내게 특별했다.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토록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데에 감사하고 신기해하며 뜨거웠던 마지막 밤이 끝났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한 도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