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jin Jan 08. 2024

첫 번째 로그아웃

2024년 1월 6일_1730_2330

나는 스마트폰 중독인가? 

YES.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잠들 기 전까지 스마트폰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또 알람이 없어도 수시로 카카오톡,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게다가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엄청나게 늘었다. 현재 회사생활도 안 해, 돌 볼 가정도 없고, 연애도 안 하니 자랑할 스펙이라곤 엄청난 스마트폰 사용 시간뿐이다. 집안일하거나 샤워할 때도 유튜브를 틀어 놓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늘 사람 소리가 들렸으면 싶다. 심지어 독서하거나 집중이 필요한 때도 재즈 플레이 리스트를 늘 틀어둔다. 적막함이 싫다.


스마트폰 중독 자가 진단 문항의 예시


문항 중 [스마트폰이 없으면,] 하는 전제가 있는데, 그런 전제 상황을 거의 만들지 않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지는지 잘 모를 정도다(?).



그렇다면 왜 스마트폰 사용량을 줄이고자 하는가?

습관적/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깨우는 행위가 내 삶에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 물리적인 시간에서도 그렇고, 생산성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의미 없는 숏콘텐츠들을 지나치게 많이 본다. 보다가 괜한 소비만 일으키거나 남들과 비교돼서 위축된다. 그 대신 <스픽>(최근에 시작한 영어 회화 어플)으로 공부하거나 책 몇 쪽 더 읽는 게 그래도 삶에 좀 더 유익하지 않을까? 나아가 내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데서 약간의 자괴감(?)까지도 느껴진다. (예를 들면 현재 인스타그램의 하루 사용 시간을 20분으로 제한해 뒀는데, 사용 시간이 지나면 [시간제한] 화면이 뜬다. 그러나 곧 같은 화면에서 [제한 무시]를 선택할 수 있고, 15분 후에 화면이 다시 잠긴다. [제한 무시]를 할 거면 도대체 왜 사용 제한을 해둔 건지? 하고 이내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냥 일주일에 딱 하루 6시간 정도만 스마트폰 없이 살아보면 어떨까. 그냥 해보는 거다. 일주일에 한 번 한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유익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해서 안 할 이유도 없으니 그냥 해보지 뭐. 하다 보면 좋은 점을 발견할지도 모르고. 최근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읽은 영향도 있다. (*이 책을 읽고 한 달 반 정도 인스타그램을 삭제했었다. 물론 지금은 다시 깔았다.) (**이 책은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는 온갖 스마트 기기의 중독을 한 개인의 절제력 문제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세계를 제공(예를 들면 구글)하는 환경에 문제가 있으며 이를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하는지에 관한 담론을 제시한다.)


나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삶이 잘 기억나지 않은데, 한 가지 기억 남는 일화가 있다. 25살 여름에 폰이 고장 나 수리를 맡겨서 며칠은 핸드폰 없이 지내야 했다. 나는 태블릿도 없었고, 임대폰을 빌릴 생각도 못했기에, (아마도 PC용 카카오톡으로) 당시 좋아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어려울 거라고 알렸다. 그렇다 불현듯 핸드폰이 없었던 어린 시절(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핸드폰을 사용했고, 스무 살에 처음 스마트폰을 가졌다. 참고로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폰 일세대가 출시됐고, 3년 뒤 갤럭시 S시리즈와 카카오톡이 처음 세상에 나왔다.) 친구들과 구두로 약속을 하고 만났었는데, 언젠가부터 핸드폰 없이는 외출이 어려워졌던 걸까 싶은 생각에 우리 지금 당장 만날까? 하곤, 가산디지털단지역 수원방향으로 가는 지하철 플랫폼 10-4에서 몇 시까지 만나기로 했다. 그때 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청 떨렸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나오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혹시 장소를 잘못 기억해서 엇갈리면 어쩌지 긴장하면서 기다렸고, 만났을 때 평소 이상으로 반가웠다. 그렇게 한 약속은 그 시간에 제대로 그곳에 도달해야 한다는 책임이 아무래도 좀 더 무겁지 않았을까. 그날 저녁 우리는 한 번도 핸드폰에 눈길을 주지 않고 서로에 집중했다. 말이 옆으로 샜지만, 이렇게 가끔은 핸드폰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 거다. 



그래서 나는 뭘 할 건가? 

온라인 세계에서 완벽히 벗어나기 위해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노트북도 켜지 않기로 했다. 영어공부든, 프로그래밍 공부든 다 온라인 수업이라 스마트폰과 노트북 없이 6시간 동안 뭘 해야 되나 싶은데 그건 미처 생각해 둔 게 없었다. 노트북으로 인터넷 접속은 하지 않고 워드 프로세서만 켜서 글이라도 써볼까 싶었는데, 그 정도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스마트 기기들을 아예 눈앞에서 치우는 행위를 하지도 않았을 거다. 일단 아무 계획 없지만 첫 번째 로그아웃.




2024년 1월 6일 토요일


1730-1830: 운동 다녀와서 샤워하고, 방청소하고 저녁 식사 준비.


1830-1920: 저녁 먹고, 다이어리와 일기를 쓰고, 엘피(LP)를 정리. 

배경 음악은 레스터 영(Lester Young)의 연주곡이었다. 늘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서 음악을 (뭐든) 틀어두는데, 그렇게 못하니 오랜만에 엘피를 턴테이블에 재생했다. 종종 듣기는 하나, 한 면이 다 돌아가는데 고작 15분에서 20분 남짓이라 오래 듣진 않는다. 그래서 아마 레스터 영의 두 번째 LP는 구매 이후 이날 처음 재생해 봤다. 중고로 산 앨범이라서 유독 잡음이 많이 나는 레코드였지만, 특유의 그 잡음 소리(약간 장작 타는 소리와 비슷)를 좋아한다.


밀린 집안일을 하면 좋을 텐데, (약) 미니멀리스트인 1인가구에게 밀린 집안일이 없었다. 신발 세탁은 바로 얼마 전에 이미 했고, 그릇 정리도 이사 준비 때문에 본집에 대부분 옮겨 둔 상태라 할 게 없다. 나... 뭐 하지? 뭘 할까? 살짝 방황하다가 엘피를 꺼낸 김에 널브러져(?) 있던 레코드들을 포장 속지에 끼워서 앨범 재킷에 넣는 작업을 했다. 물론 몇 장 없어서 5분도 안 걸렸다. 알게 된 사실은 나는 총 여섯 앨범에 10장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아르헨티나에서 사 온 피아졸라 땅고 레코드가 다른 레코드들보다 훨씬 두껍다는 사실이었다.


한 시간반쯤 지나자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잠으로 때워버리면 이거 반칙인데?


1920-2050: 집 앞 호수 공원 산책.

잠도 깨고 시간도 보낼 겸 집 앞 호수공원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핸드폰과 무선 이어폰 없이 산책이라니 나가는 발걸음이 어색했다. 그런데 나가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눈발이 점차 굵어졌다. 집에서 우산을 챙겨 다시 나올까 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오랜만에 눈도 맞아보지 뭐. 이내 시야를 가릴 정도로 펑펑 오기 시작했지만, 기분 탓인지 몰라도 유독 예쁘게 소복소복 쌓이는 눈 속을 걷는 것도 좋았다. 물론 이 눈 오는 풍경을 핸드폰으로 담아야 되는데 아쉽단 생각도 들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눈송이들이 춤추듯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공연 피날레에 내리는 종이 눈꽃 같아서 신도 났다. 이날의 눈을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던 거 같다. 눈이 펑펑 내렸지만 공원에 있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서둘러 돌아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오랜만에 밤에 내리는 눈을 맞아 좋다고 했고, 남자 셋이서 걸으면서도 눈 속을 걷는 사람들이 그들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낭만적이라 했다. 눈사람을 만들러 나온 가족 중 어린 꼬마는 아빠에게 손바닥 가득 눈을 보여주면 반짝반짝 빛난다며 신기해하는 소리도 들었다.


공원 더 깊숙한 안 쪽으로 들어가니 고새 눈이 많이 쌓였다. 오랜만에 눈 밟는 뽀각, 뽀드득, 뽀갸갹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서 걷는 사람들이 내는 눈 밟는 소리와 협주를 하다가 어느새 홀로 산책길에 들어섰는데, 이번에는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억새(사실 정확히는 모름)에 눈송이가 내려앉으면서 쌓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나오길 잘했다. 오랜만에 (2주 전에 한라산 갔다가 눈사람이 된 적이 있었지만, 그때 조난 상황이었다.) 눈 맞으며 걸으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눈이 와서 한 바퀴를 도는데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2050-2130: [로그아웃 일지]에 쓸 내용 공책에 수기로 정리.


2130-2310: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독서.

평소에 독서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한데, 스마트폰이 옆에 있으면 집중력이 두 페이지 이상 넘기 힘들다. 왜 해야 할 것들, 사야 할 것들 포함 잡생각은 독서하는 타임에만 유독 나는지? 책에 관련 내용이 나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멈추고 화장품 쇼핑을 하거나,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찾아보려고 네이버에 접속했다가 옆 길로 새거나, 또 다음 주에 무슨 요일에 운동 갈까? 갑자기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읽었던 부분인데 영 처음 보는 문장이라 다시 앞에서부터 읽는다. 그러니 ]아마 두 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그런데 이 날은 잡생각이 난다고 해도 옆길로 샐 데가 없으니 금방 돌아왔다. 게다가 단순히 스마트폰을 꺼두기만 했을 뿐인데, 잡다한 생각들도 이전에 비해 현저하게 의식에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딴짓 하지 않고 책을 읽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멈춘 건 화장실 갈 때와 턴테이블의 바늘을 옮기기 위해서 일어날 때 외에는 없었다. 


2310-2330: 스트레칭으로 마무리. <끝>



물론 핸드폰을 켜자마자 인스타그램에 접속했고, 밀린(?) 유튜브를 시청하느라 새벽 두 시가 지나서 잤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예쁜 눈을 맞으며 걸었고, 꽤나 몰입해서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6시간이 지루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다. 다음번에는 여섯 시간 동안 뭐 할지 미리 생각해 봐야겠다. 은근히 재밌는 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